월간복지동향 2008 2008-04-20   1136

[[동향2] 다국적 제약회사는 백혈병치료제 한알에 금보다도 비싼 6만9천원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다국적 제약회사는 백혈병치료제 한알에 금보다도 비싼 6만9천원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약제비 적정화방안 1년의 평가와 한계-




이정례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
(sideshow@hanmail.net)


지난 3월 12일 오전 10시 삼성역에 만성백혈병환자와 에이즈 감염인들이 모였다. 그들이 먹어야 살 수 있는 약을 높은 약값을 요구하며 5년째 약을 팔고 있지 않는 로슈사와 알약 한 알에 금값보다 비싼 6만9천원을 요구하며 정당한 가격이라 우기며 건강보험 등재를 요구하는 비엠에스사, 두 다국적 제약회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환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100미터 거리를 두고 고개를 뒤로 90도 꺾어야 쳐다볼 수 있는 그들의 빌딩 앞에서 연이어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은 많은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를 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보건복지가족부가 “지킬 건 지켰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한미FTA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7년 7월, 다국적 제약회사의 등쌀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약제비를 잡겠다며 내놓았던 ‘약제비 적정화 방안’ 실행 1년이 되어서야 그 실효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그 첫 시험대가 3월 14일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백혈병 신약치료제인 ‘스프라이셀(비엠에스사)’이다. 스프라이셀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이라는 약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약효를 볼 수 없을 때 먹는 약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임상시험 중에 있다.


백혈병환자들, 높은 약값 때문에 또 거리로!

백혈병환자들이 높은 약값 때문에 거리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 ‘글리벡’이라는 혁신적인 신약이 개발되어 국내 시판을 앞두고 환자들은 목숨을 걸고 다국적 제약회사(노바티스사)와 설전을 벌여야 했다. ‘글리벡’은 백혈병을 죽음의 병에서 약 먹으며 관리하는 만성질환으로 변모시킨 백혈병 환자들에게는 꿈의 치료제였다. 그러나 문제는 제약회사가 요구하는 약값이었다. 한 알에 2만 7천원, 하루 6알을 먹어야 하니 하루 약값만 16만2천원, 한 달에 무려 486만원! 병원을 다니며 다른 치료와 검사를 병행해야 하는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치료약이 있어도 먹지 못할 판이었다. 이에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다국적 제약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점거농성도 벌이며 힘겨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투쟁의 성과로 현재 스프라이셀 약값인하싸움에 앞장서 활동하는 ‘한국백혈병환우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높은 약값을 받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위도 마다않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스프라이셀 약값 결정과정은 지난 글리벡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방적으로 높은 약값을 요구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통상압박을 두려워하며 다국적 제약회사의 눈치만 살피고 뭐 특별할 것 없는 빈약한 협상무기를 가진 정부 당국, 그들 사이에 환자들이 있다. 그러나 글리벡을 두고 싸우던 2000년에는 글리벡 이외의 백혈병치료제가 없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타고시나, 보스티닙과 같은 다른 백혈병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등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작년에 만들어진 ‘약제비 적정화 방안’으로 약값 결정이 선진7개국(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의 평균조정약가라는 터무니없는 기준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 간의 협상으로 약값이 결정된다는 것이 다른 차이점이다. 그러나 작년 7월 약제비 적정화방안 발표를 앞두고 ‘신약만이 살길’이라며 신약개발을 방해하는 그 어떤 정책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협박하던 그들이 이제는 ‘약제비 적정화방안’ 자체를 무력화시키려하고 있다. 지난 1월, 60일간의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협상을 파투 놓고 통상압력에 호락호락한 보건복지가족부에게 결정권한을 넘겼다. 스프라이셀 약값결정을 위해 모인 약제급여조정위원회가 열리는 지난 3월 14일, 환자들은 환자도 당사자라며 위원회에서 환자들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며 요구했다. 그리고 약을 빨리 보험등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값을 적정하게 책정하여 보다 많은 환자가 먹을 수 있고 건강보험재정에 무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약제비 적정화방안’이 무엇이길래?

보험약값이 실제 약값보다 높다는 것은 관련 업계에서는 통하는 상식이다. 보험약값보다 실제 거래되는 가격은 낮다. 보험약값과 실거래가격 사이의 차이가 의료기관과 제약회사 간의 검은 거래를 만드는 주범이다. 보험약값을 적정가격으로 인하하겠다며 2000년 의약분업과 함께 의약품실거래가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간의 뒷거래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번 높게 책정된 보험약값은 떨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는 사이 건강보험은 재정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국민들은 매년 4~8%의 보험료 인상을 감내하며 재정적자를 메워야 했다. 건강보험 약제비가 5년 새 두 배로 뛰는 사이에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약제비 적정화방안’이다. 2010년까지 건강보험 약제비를 29.2%(2005년 기준)에서 24% 이하로 감소하여 건강보험재정안정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용효과적인 약만 선별하여 보험급여하는 방식(Positive List)을 도입하고 신약의 약값 결정 시 외국의 비싼 약값을 참조하여 결정하는 방식을 건강보험공단과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의약품 적정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처방행태·약품비 등 관리방안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약제비 적정화방안’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신약 약값 결정 시 선진7개국의 약값을 참조하여 산정한다는 기준이 삭제되었지만 이미 보험에 등재되어 있는 의약품의 경우, 여전히 그 기준이 남아있어 높은 약값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높은 약값은 이후 보험에 들어오는 신약의 약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완성의 ‘약제비 적정화방안’, 높은 약값 계속 유지된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 했던 ‘스프라이셀’이 그러한 경우이다. 신약을 만든 제약회사는 스프라이셀의 약값을 이전 치료제인 ‘글리벡’ 하루 투약비를 기준으로 한 개 알약 값을 6만9천원으로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2002년 희귀의약품으로 시작하여 보험에 등재된 글리벡은 1알(100mg)에 23,135원으로 약값이 정해진 이후 한번도 약값이 인하된 적이 없다. 환율이 인하되어 수입가격이 떨어지고 이후에 사용량이 4배 이상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년마다 정기적으로 약값을 재평가하게 되어있어 글리벡은 작년 약가재평가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약값은 전혀 조정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선진7개국 평균조정약가를 비교해보니 약값이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수준을 가지고 있는 대만의 경우, 글리벡 조정약가는 14,561원/정으로 우리나라 글리벡 약값의 약 63%수준이다(그림). 여전히 선진7개국 약값 기준이 남아있어 높은 약값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스프라이셀이 글리벡의 약값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처럼 다음에 보험등재될 백혈병 신약은 이렇게 높게 책정된 글리벡과 스프라이셀 약값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약값의 고공행진을 막을 수 없다.



환자가 먹을 수 있어야 ‘약’이다!

약은 환자가 먹을 수 있어야 치료제로서 가치가 있다. 비싼 약값 때문에 환자가 먹을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약이 아니다. 환자의 건강할 권리를 침해하고 의약품 접근권을 막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약제비를 적정화하여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 시키고 국민의 건강보장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한 근본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이번 스프라이셀 약값을 환자가 먹을 수 있도록 결정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가격 흥정을 하는 도박판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