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의료대란을 맞아

무어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지난번 의사파업 때에 또다시 이런 불행이 없기를 간절하게 빌었던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또다시 의사파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의사협회가 내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가기로 하였고 대학병원이 외래진료를 하지 않기로 하여 또 한번 의료대란은 오고야 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사람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시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런 문제는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인지, 앞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다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는지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의 한구석을 말씀드려보려 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의약분업이 약의 오·남용을 막고 잘못된 약품거래 관행을 극복하여 보다 바르고 나은 의료제도를 만드는 의료개혁의 하나라는 것은 지금 파업을 하고있는 의사들도 모두 동의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에게 낯설은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등 새로운 용어도 이제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정도로 의약분업은 국민의 관심사, 국가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의사협회의 주장과 정부의 주장은 험악한 대치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을 뿐 사회적 여론이나 공론이 이 문제에 영향을 주고 해결을 돕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극한적 대결과 대립만이 존재하는 아수라장 같은 현실에서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것은 정말 약한 사람들뿐인 것 같습니다. 권위있는 사회원로들이나 도덕적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온 힘들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이런 상황은 참으로 개탄스럽고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 문제가 바르게 해결되려면 열려있고 정정당당한 논의가 있어야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공정하고 의연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자기 집단의 논리에 매여있는 것이 아닌 건강한 목소리가 파업을 지지하는 의사들에게서 나와야하고 파업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두려움이나 숨김없이 주장을 드러내어 그 소리들이 성실하고 진지하게 전달되고 또 나누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강팍하고 소름끼치는 대결을 거둬 치우라고 촉구하고 압박하는 여론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는 의사들이 유연한 대응보다 강력한 투쟁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을 걱정하고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인 주장도 턱없이 횡포한 권력에 의해 짓눌려버려 강고한 투쟁, 흔들림 없는 투쟁이 아니고서는 투쟁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쟁이라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고 변화라는 것은 전과는 다른 것인 만큼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고 평가하며 열린 토론과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제대로 되어나갈 수 있습니다. 토론과 이해가 필요한 때에 결사투쟁을 외치는 것은 민주적인 훈련이 모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의사파업을 두고 의사들과 이야기해보면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남을 설득하는 노력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것을 놀라게 됩니다. 사실 우리사회 어디에도 있는 편가르기식의 논리나 결론을 미리 내어놓고 다른 논의를 거부하는 대응방식이 상대적으로 더많은 교육을 받은 의사집단에서도 다를 바 없습니다. 지역감정처럼 오래되면서 굳어진 편견과는 또다른 이런 집단적인 대응양상은 거의 폭력적으로 집단의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한 전제아래에서만 어느 집단이나 개인도 자기주장을 펼 수 있습니다. 의사파업처럼 집단행동의 피해대상이 일반시민이고 그것도 기본권리로 인정되어야하는 건강권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의사들이 훼손하는 것이라면 “아. 꼭 저래야만 했구나”하는 사회적 공감이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의료대란은 우리사회가 집단의 “집단적 거부”에 부딪히면 전혀 건강하게 합의를 만들어 나가지 못하고 그럴 경우 여론이나 사회의 양심적인 세력도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을 벌거벗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이정도 밖에 되지 못하나하는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 사는 것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사회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려면 그렇게 만드는 과정의 책임과 고통도 우리가 나누어야 합니다. 의료대란을 어떻게 극복하자고 나서는 소리가 시민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시민과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종교계도 또 다른 사회단체들도 모두 진지하게 해결을 위한 참여를 선언하고 나서서 의료대란을 이겨나갈 길을 찾고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의 대란을 넘는 것은 우리사회를 보다 사람 살만한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 내용은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2000년 8월 8일에 방송되었던 내용입니다.

양길승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수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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