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11-10   1681

희망한국 21 : 양극화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의 개혁인가?

지난 9월 26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희망한국 21 – 함께하는 복지” 대책을 내어 놓았다. 이 안에서 3개 분야 22개 정책과제를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향후 4년간 총 8조 6천억원의 신규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사실 빈곤과 박탈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여 ‘복지’를 국정의 전면적인 화두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분명 과거에 비해 고무적이라 하겠다.

사실 현 정부가 빈곤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주요 대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과 2005년에만도 당정 혹은 관계부처합동이나 빈부격차ㆍ차별시정위원회 등을 통해 발표된 여러 기획안들을 볼 수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2004에 발표된 ‘일을 통한 빈곤탈출 정책’과 2005년의 ‘희망한국 21 – 함께 하는 복지’, 그리고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긴급지원과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개선방안의 형태로 나타난 ‘국민에게 다가가는 사회복지서비스 실현’이라는 정책 패러다임 등이다. 어찐 본다면 한 정권이 1년 여의 사이에 복지 슬로건을 몇 번씩 바꾼다는게 좀 우습게 느껴질 지경이다.

이중 ‘일을 통한 빈곤탈출’은 근로빈곤층(working poor)에 대한 문제 심각성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기존의 생계비 지원방식(?)을 넘어 빈곤계층이 근로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시도였다. 근로빈곤층에 대한 의료ㆍ교육ㆍ주거지원 확충, EITC 도입, 사회적 일자리 확충, 자활지원정책 내실화, 창업지원제도 혁신과 강화 등의 5가지 사업 중심이었다.

이번 ‘희망한국 21’은 이는 ‘사회양극화’에 대응하여 사회안전망 개혁에 본격적인 노력을 투입한다는 취지를 발표하며 추진되고 있다. “복지투자가 퍼주기나 낭비가 아니라 사회적 투자로 인식하는 사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복지투자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새로운 접근이라며 경제정책과의 결합을 통해 사회투자적 관점으로 사회정책을 재구조화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향후 4년간 사회안전망 개선보완에 총 8.6조원 규모의 신규투자가 계획되어 있다. 또한 사각지대의 진단과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적정 사회복지지출확보,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 사회안전망 평가 강화, 수요자 중심으로의 복지인프라 혁신 등 4대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 계층에 대한 빈곤예방 및 탈빈곤 강화, 사회안전망 추진체계 개편 등의 3개 분야에 대해 22개 정책과제를 집중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요 정책들의 내용을 잠시 살펴본다면 먼저 기초생활보장의 내실화에서는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판별기준을 120%에서 130%로 상향한 점, 선보호조치를 위한 10만명 대상의 긴급복지지원과 보건복지콜센터 및 긴급지원대상자 발견체계 강화 주민등록말소자에 대한 기초생활보장번호 부여와 보호방안을 들고 있다.

다음으로 차상위 계층에 대한 빈곤예방과 탈빈곤 정책의 분야이다. 여기에서는 의료, 주거, 보육 및 교육, 자활 및 고용지원, 인구특성별 지원, 치매와 중풍노인 및 중증 장애인 특별보호대책이 범주별로 제시되어 있다. 의료급여대상을 차상위 계층 중 아동, 임산부, 장애인에 대해 선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 의료급여 본인부담율 경감, 의료과다이용의 방지를 위한 관리강화 등이 의료서비스 부문에서 제시되었다. 주거서비스 부문에서는 주택공급의 확대, 주거급여의 현실화, 전세자금이용이 용이해질 수 있도록 전세자금 대출금리 인하, 주거복지 활성화를 위한 관계기관간 정책협의 정례화 등이 제시되었다. 보육과 교육 서비스에서는 보육비와 교육비 지원대상을 저소득층 위주에서 중산층으로 확대, 차상위 계층의 고교생 지원, 대학생 학자금 융자제도를 정부보증방식으로 개편하는 것 등이 포함되었다. 자활 및 고용지원에서는 저소득층의 특성(주로 근로능력 관련)별로 대책을 수립한다고 하며 일자리 없는 근로능력자에 대해서는 종합적 자활대책, 취업해 있지만 빈곤한 근로능력자에 대해서는 직업훈련 등 고용서비스 강화와 근로소득보전세제(EITC) 도입 추진, 자활사업 및 사회적 일자리 확대, 고영서비스 강화, 자활사업 대상자 사례관리 강화(자활담당공무원 배치 등)의 방안이 발표되었다. 인구특성별 지원부문에서는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노인수발보장제도 도입, 장애수당 지급 및 장애연금 지급기준 완화, 장애인 직업재활 인프라 확대, 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역사회보호 강화가 제시되고 있다. 치매와 중풍노인 및 중증장애인 특별보호대책의 영역에는 요양시설의 조기확충, 실비시설 이용료 경감, 돌보미 바우처 제도 도입 등이 있다.

세 번째로 사회안전망 추진체계의 개편 분야에서는 사회안전망 추진체계의 효율화를 위해전달체계의 개편과 지역주민서비스 통합체계 구축, 읍면동 사무소를 주민복지문화센터로 단계적 확대개편,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등 지역사회협의구조 활성화, 수요자 접근성의 제고 등 전달체계의 개편방안과 미신고 복지시설의 지원관리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실효성 확보와 평가체계의 구축을 위해 사회보장심의위원회 확대개편, 지자체 복지수준 평가, 차상위계층 실태조사 등이 제시되었다.

이번 희망한국 21에서는 이상의 3대 분야 외에 ‘도덕적 해이 방지대책’에서 부정수급 점검강화와 조건부 수급제도를 더욱 엄격히 시행하는 것 역시 주요한 분야(?)로 나타나고 있다.

당정에서 발표한 동 대책의 내용을 도식화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희망한국 21』 시행에 따른 취약계층 지원 변화

– 생략

하지만 솔직히 이번 희망한국 21의 비전과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희망’만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번 종합대책은 사회양극화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에는 사실상 기존 제도들의 점진적 확대방안이라 할 수 있으며 새로 도입되는 제도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는 점들이 있다.

먼저 4년간 8조 6천억이라는 신규투자의 엄청난 금액을 홍보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미 중기계획에 반영되었던 부분과 지방정부의 부담액이 4조 8천억이었고, 이번 계획으로 추가 부담하게 되는 중앙정부의 부담은 3조 8천억 정도이다. 포장과 홍보에 치중한 듯하다.

이러한 취약점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사각지대 발생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부양의무자 범위 축소 없이 부양능력 판정기준의 완화가 대책이 되고 있다. 차상위 계층에 대한 개별적 급여의 필요성이 보이고 있지만 중요한 의료급여의 영역에서 장애인, 아동, 임산부 등에 대해서 선별적인 급여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가장 많은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분야인 차상위계층에 대한 각종 지원은 대부분 이전부터 논의된 것이거나(물론 그 경우에도 개선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기초수급대상의 장애인에 대한 수당을 고작 1만원 인상한 것은 그간의 논의를 보았을 때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심지어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책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도간 연계나 공공 인프라를 통해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도 이번 ‘희망한국 21’은 그렇지 못하여 통합적 복지 서비스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복지혜택보다는 복지제도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사회양극화’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사회양극화, 즉, 상대적 빈곤의 구조적 심화 과정에 대한 대책이라기에는 여러 관련 대책의 부분적 개선방안들을 그냥 나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의 빈곤 상황에 대해 사회적 배제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통합적인 탈빈곤 전략을 많이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는 전략간 종적 횡적 연결이지 여러 관련된 프로그램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열거와 통합은 다르다. 그런데 희망한국 21은 여러 프로그램을 나열하고 있으나 공공 인프라를 통한 네트워킹(통합)이라기 보다는 열거인 듯 하다.

이번 희망한국 21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EITC의 도입 논란에서 나타난 바와 마찬가지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에 대한 전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과 ‘복지’는 강제노동유인과 마찬가지의 조악한 workfare 개념에 입각해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빈곤 문제는, 근로빈곤의 문제를 포함하여, 노동동기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유연화에 따르는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일자리의 문제이다. 이를 노동동기 혹은 사실상 빈민의 도덕적 해이의 방식으로 치환해서는 곤란하다. 빈민을 노동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선별하여 급여에 노동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인 workfare의 연계방식은 현실적으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대개는 빈자에 대한 ‘도덕적 해이’ 논란과 복지전반의 후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보다는 차라리 유럽에서 제기되었던 바 work이 아니라 right to work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탈빈곤 정책의 기조는 사실상 빈민이 일하도록 하는 유인한다는 방식인데(이번에도 EITC 제도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며 도덕적 해이 문제도 희망한국 21에서는 별도의 란을 할애할 만큼 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명시되고 있다) 이는 “일하지 않아 빈곤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인식에서 ‘사회양극화’에 대해 적절한 프로그램이 도출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지나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나쁜 일자리’의 양산을 경계하고, 자활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필요에 대해 모색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모색과 초점이 없이 근로유인을 고민하는 한은 희망한국 21이 우리사회 빈곤대책으로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사회적 일자리와 자활사업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점진적 확대의 수치는 너무나 전시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종합선물세트’라는 포장의 과자판매방식이 있었다. 커다란 상자에 여러 가지 과자들이 잔뜩 들어있어 받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무척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했었다. 하지만 기실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나씩 낱개로 판매되는 것에 비해 가격에서 특별한 메리트도 없고 잘 팔리지 않는 것들을 크게 모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희망한국 21을 보면서 그 예전의 ‘종합선물세트’라는 향수(?)를 경험하게 된다. 분명 내용보다는 포장에 더 신경 쓴 물건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남기철 /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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