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벗어나기

안녕하세요? 청년참여연대입니다.

드디어 지난 1월 4일!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참가자는 총 15명인데요,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아주 적극적인 청년들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직접행동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지난 1월 5일, ‘공정’을 주제로한 김만권 정치철학자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2021년, ‘공정담론’이 청년을 둘러싼 뜨거운 화제였는데요, 과연 다르게 살고 싶은 청년들은 공정, 능력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번 시간의 후기는 공활 26기 안소영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공정한 세상을 넘어 부정한 세상 후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 안소영

 

불공평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적었기 때문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재화를 배분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기서 도태된 사람들이 능력주의의 철폐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공평과 공정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김만권 정치철학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공평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요소의 개입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분노한다. 나는 부모의 능력도 개인이 받아들여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주어진 상황이라면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하는 게 맞는데 개인의 힘으로 이를 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의 변명이라 생각했다. 불공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스스로 설득되지 않았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 강연 중 질문하는 참가자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 강연 중, 질문은 언제나 환영!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하자. 마음에서 올라오는 몇 가지 질문을 적는다.

첫째,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 한가?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매우 가변적이다. 재화를 얼마나 벌어들이는지에 따라 능력의 정도가 평가된다. 벌어들이는 재화의 양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요소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따라서 능력주의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모호하다.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평가하는 일시적 기준은 될 수 있지만 사람 자체를 줄 세우기에는 터무니없게 조악하다.

둘째, 그 기준은 인간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는가?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재능이 있다. 능력주의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재능을 이용해서 재화를 벌고 있지만 능력주의는 아직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다. 편협한 몇 개의 기준만을 가지고 능력을 평가하는 아주 낡은 생각이라 동의할 수 없다.

셋째, 애초에 사람을 줄 세울 수 있는가?

수많은 재능을 분야별로 나누고 또 쪼개서 줄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넷째, 그렇다면 왜 사람을 줄 세워왔는가?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빠르게 사람을 평가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라 단 몇 개의 가치만을 중요하다 믿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써 작동한다. 하나는 재화를 얻는 실질적인 작동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판단 방식이다.

첫 번째 방식인 재화를 얻는 실질적인 작동방식으로써의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라 재화를 차등분배하므로 그야말로 공정하고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돌려 최초의 엘리트가 등장 했던 시기를 상상했다.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아주 오래전일 것이다. 저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양의 재화를 가지고 있었다. 능력이 좋은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졌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는 더 많은 기회를 가졌다. 이것은 돈보다 더 중요했다. 법을 만들거나 이를 집행하는 권한을 얻은 그들은 사회를 유리하게 빚어갔다. 시간이 가면서 엘리트는 더 엘리트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 계급 사회처럼 태생적 요인이 계층을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생겨났다. 숨은 혈통이 존재하는 셈이다. 누구도 피로 사람의 계급이 결정된다고 말하진 않지만, 재력이나 힘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세습되기 때문에 실은 피로 세습되는 것과 비슷하다. 능력주의는 자신의 능력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극소수의 모범생의 예시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계층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한 집단이 원하는 쪽으로 세상이 흘러간다. 법, 사회문화, 정치, 제도같은 모든 것들이 한 집단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진다. 국가는 개개인의 약속이 모여져서 만든 것이고 인간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것에 의해 불공평하게 흘러간다면 문제가 있다. 사람이 불쌍해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시혜적인 이유가 아니라 국가가 유지되고 건강하게 존속되려면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두 번째 방식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방식으로서의 능력주의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이 능력주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첫 번째 방식으로서 제대로 작동하면 제 역할이 끝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능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사람의 급을 나누었다. 타인을 평가하는 칼은 양 끝이 뾰족하다. 검을 잡은 이도 칼날을 피할 수 없다.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는 스스로를 평가하는 잣대와 동일한 것이다. 능력이 없다고 판별된 사람들은 무력감을 학습한다고 했다. 능력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능력은 한낱 재화를 분배하는 기준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권리를 동일하게 갖고 태어나며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스스로를 생명 그 자체로 존중하는 연습이 선행되어야 다른 사람들도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날카로운 칼날은 점점 무뎌져서 결국 뭉뚝한 끝으로 변할 것이다.

능력주의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기회의 균등에만 집중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빠르게 개선될 수 있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을 맞추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자체에서 벗어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획일화된 기준으로 능력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것을 멈추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을 넘어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를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면 협소한 잣대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는 능력주의는 줄어들 것이다. 모두가 같은 가치를 향해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줄을 세울 필요가 없어진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졸업 후 취업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루트를 걸어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해 시장을 만들고 재화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들이 만든 시장도 빠르게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 개인이 다양성을 이용해 재화를 얻는 개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능력주의로 줄 세우기는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 옥상에서 단체사진

2022년 청년공익홛동가학교 26기 화이팅!


문의 02-723-4251 youth@pspd.org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6기 후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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