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3017

[077] 한미자유무역협정(Kor–Us FTA) 반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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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한미간 교섭 중인 신라호텔 앞에서 한미FTA 졸속추진에 반대하는 1인시위 중이다.

┃ 배경과 문제의식 ┃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통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하 FTA) 협상을 시작할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직후인 2월 3일 한미 양국 협상 대표단은 미국에서 협상개시를 공식선언했다. 협상 대표단이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인 2월 2일 열린 최초의 공청회는 성난 농민들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한미FTA는 거대경제권과의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라는 특징을 지닌다. 한미FTA는 철저한 시장 개방, 특히 강력하고 공격적인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협정으로서 규제완화·민영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영미식 시장제도를 상대국에 이식하는 경제통합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2006년 2월 협상 개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포트먼 USTR(미국무역대표부) 대표는 한미 FTA가 “포괄적인 협정이 될 것”임을 천명했고, 같이 있던 USTR의 한 고위관계자도 “우리가 한국 측과 협상할 FTA는 모든 FTA의 금과옥조”라며 “이번 협정은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FTA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통상입국’을 위해서는 시장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라는 ‘거대경제권’과 체결하는 FTA가 수출을 증대시켜 국민대다수에게 낙수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홍보했다. 또한 한미FTA 같은 ‘선진경제권’과의 높은 수준의 FTA가 외적인 충격을 가함으로써 국내 산업의 경쟁력, 특히 금융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부충격에 의해 낙후한 경제구조를 선진화하자’는 인식, ‘선진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다른 나라보다 하루라도 먼저 체결하는 것이 기회를 잡는 것’이라는 인식은 국내 산업주체나 국회와의 의사소통 없는 일방통행식 정부주도형 협상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고, 짧은 협상기간동안 특정 수출대기업에게 주로 혜택이 주어지는 가혹한 개방조건을 수용하는 기반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협상과정에서 국내의 공공정책 입법권과 사법권을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제약할 수 있는 초헌법적 독소조항을 통상관료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게 방치하는 일종의 백지수표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국가 공공정책에 대해 해외투자가가 국내 사법절차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해외에서 제동을 걸 수 있는 투자자국가강제중재(ISD) 조항, 합리적인 기대이익이 침해될 경우 협정위반 사항이 없어도 제소할 수 있는 비위반제소 조항, 네가티브 리스트 방식의 포괄적 서비스 시장 개방 방식, 한 번 개방하면 다시는 뒤로 물릴 수 없는 역진방지조항 등이 그것이다.

거대경제권과의 FTA 협정의 첫 사례인 한미FTA의 협상·체결·비준 과정은 정부와 통상관료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부른 폐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공청회조차 열지 않고 미국과 협상개시를 선언했다. 한미 정부간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을 때, 이미 한국은 자동차, 스크린쿼터, 약가적정화방안, 쇠고기 수입 등 양국의 주요 통상 현안들을 ‘4대 선결조건’의 형식으로 사전에 미리 양보한 상태였다. 당시 한국 협상팀은 포괄적인 시장개방 협상을 진행한 경험이 없었던 반면, 미국은 15년간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시한을 미국측 일정에 따라 1년으로 미리 정해두고, 미국이 제시한 의제와 조건을 바탕으로 협상에 착수했다. 결국 협상의 구조와 설계, 과정과 결과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미국 측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정부는 미국 의회가 미국 행정부에 허용한 ‘무역촉진권한’(TPA·또는 신속체결권) 시한이 만료하기 전에 협상을 끝내지 않으면, 협상이 장기화되고 불리해 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같은 무리한 협상일정과 방식을 정당화했다. 준비 없는 협상은 졸속 논란을 낳았지만, 재협상을 요구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2008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은 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추가양보, 자동차 수입조건 등에서 미국의 추가개방 압력을 수용했다. 협상이 진행될수록 농업은 물론, 특정 수출 대기업과 특정 제조업을 제외한 적지 않은 산업이 한미FTA로 인해 피해를 보는 반면, 국민대다수에게 끼치는 낙수효과는 많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되었지만, 수출입국이라는 정부의 일방적 홍보 속에 토론의 여지없이 일축되곤 했다.

협정문 초안이나 협상결과는 국회에 온전히 보고되지 않았다. 협상기간 동안 정부의 통상협상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한을 가진 국회는 국문으로 된 협상자료를 제공받지 못했다. 2006년 5월 1, 2차 협상 동안 한국측이 제출한 협정문 초안을 공개하라는 국회의 요구에 영문으로 메모도 불가능한 열람의 형태로만 국회에 공개하였고, 2007년 4월 2일 한미간 FTA협상이 최종 타결된 이후에도 역시 국회특위와 통외통위에 한해 영문본만 비공개열람하는 등 국회와 국민에 대한 정보공개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협상은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협정문 최종안이 국회에 제출되기까지 영어로만 진행되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최종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번역오류’라는 웃지못할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한미FTA는 그 시작부터 격렬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2006년 2월 협상개시 선언 후, 첫 협상이 시작된 6월부터 이듬해 한미 행정부간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까지 격렬한 반대시위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허세욱 씨 등이 이에 항의해 분신하여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2008년 4월 정부가 미국의 요구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대폭 완화하자 이를 계기로 최대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일어났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해 온 시장개방과 미국식 제도로의 전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져가는 가운데, 2010년 12월 한국정부가 한미FTA의 가장 큰 성과라고 자랑해오던 자동차분야에 대해 추가로 양보한 것을 계기로 한미FTA의 비준여부가 주된 정치쟁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2011년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국회비준을 앞두고, 사법부의 법관들이 한미FTA가 공공정책 입법권한은 물론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 동의가 늦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하여 한미FTA가 비준동의되더라도 투자자국가강제중재(ISD) 조항에 관하여 미국과 재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여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강행 통과되었지만 그 후에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야당과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시위가 지속되었다. 한미FTA는 2012년 3월 15일 발효됐다.

┃ 주요 활동 경과 ┃

참여연대는 통상 정책을 모니터하는 전문부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일차적으로 한미FTA가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국민의 의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한미FTA 협상에서 다루는 쟁점들이 참여연대가 국내에서 추진해온 경제, 사회, 정치적 과제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참여연대는 2006년 3월 28일 발족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여 이 기구의 대국회 협력과 정책분야 실무를 담당하는 한편, 민변 등과 함께 한미FTA의 쟁점에 대해 조사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의 FTA협상과정을 모니터했다.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우선 한미FTA 협상개시가 선언된 2006년 2월부터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까지의 시기, 둘째,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하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일어난 시기, 셋째, 2010년말 자동차 분야 추가양보를 반영하여 수정된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국회처리와 발효에 이르는 2009년에서 2010년 3월까지의 시기가 그것이다.

<1기>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협상 기간

참여연대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여 일련의 1대규모 시위에 참여하는 한편, 참여사회연구소와 정책실을 중심으로 한미FTA의 성격과 쟁점에 대한 조사연구에 착수했다. 6월 9일 민변과 함께 한미FTA에 대한 국회의원 워크숍을 개최하고, 이어 7월 3일 한미 FTA 추진에 대한 민변과 참여연대의 공동의견서를 발표하였다. 이 의견서는 1부에서 한미FTA에 대해 △FTA의 일반 개념과 한미FTA의 성격 △한미FTA 추진의 준비 부족 및 절차 문제 △한미FTA의 외교안보적 문제 △한미FTA 추진의 경제적 필요성 주장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미 FTA를 통한 국내 세력관계의 재편 등으로 구분하여 비판하고 특히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주창하고 있는 ‘선진통상국가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의견서는 금융서비스, 투자, 분쟁해결, 교육, 보건의료, 농업 및 위생검역, 덤핑 규제, 지적재산권 등 협상 각 분야의 쟁점과 우려사항에 대해서도 적시하였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협상에 항의하는 한편, 이에 대한 국회의 의정활동도 모니터했다. 특히 국회 한미FTA 특위 구성과 활동을 집중 감시하면서 국회의 분발을 촉구했다. 국회특위활동을 중간평가한 이슈리포트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7월 2차 협상에서 양국간 양허안이 오고가기까지 국회에 양허안 초안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물론, 심지어 3년간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의 대국회협력 담당단체로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열린우리당 김태홍 의원 등 여야의원 49명으로 구성된 ‘한미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이하 연구모임)’과 범국본 정책자문단과의 협력사업 실무를 담당했다. 연구모임은 2007년 2월 국회의원 60여 명이 참여하는 ‘한미FTA 졸속체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이하 국회비상시국회의)’로 확대되었고 이들과 함께하는 정책자문단은 2007년 5월까지 60명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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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발족한 한미FTA반대범국민서명운동본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획득한 득표수인 12014277보다 1개 더 많은 서명받기 도전에 나섰다.

범국본과 연구모임은 협상대책을 논의하기에 인원과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국회내 한미FTA특위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협상결과 미공개 등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국회의 협상 개입 권한과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협력했다. 또한 12월 한미FTA 중간평가토론회를 개최하고, 이를 보고서로 발간하여 “한미FTA 협상을 지속할수록 국내 갈등과 불이익만 초래하므로 더 늦기 전에 한미FTA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7년 들어 참여연대와 범국본은 한미FTA가 단순히 수출입 관세를 없애는 협상이 아니라 국내 법률을 자동으로 개정함으로써 공공정책 주권에 개입하는 협상이라는 점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1차 양허안이 교환되던 2006년 7월까지 한국정부는 협상에 따른 법령개폐를 당연한 것처럼 보고하고 있었던 반면, 미국은 협정으로 인해 단 1개의 국내법률도 바꿀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통상교섭본부는 2006년 8월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한미FTA로 인해 자동으로 개폐될 법률의 자료를 요청하자 그때서야 뒤늦게 상충법률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참여연대와 최재천 의원실, 그리고 범국본의 정책자문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미FTA 17개 분야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쟁점들은 국내 법률 총 1163개 중 약 15%에 달하는 160개 이상의 법률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2007년 4월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그 목록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 협상과정에서 국회는 법안의 개폐에 대한 고유권한을 행정부에 백지위임한 꼴이었다. 2012년 발효 직전 정부는 최종적으로 23개의 법률이 개정된다고 발표했다. 조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범국본 정책자문단의 실무단체로서 참여연대는 또한 투자자국가강제중재(ISD), 비위반제소 등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국회와 국민에게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월 14일 개최한 ‘ISD가 국내 부동산 및 공공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토론회’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협상이 이미 진행되고 있던 2006년 6월 법무부는 ‘한미FTA 협상 국제투자분쟁 분야 대응방안’에서 투자자국가강제중재제도(Investor-State Dispute, ISD)가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한미FTA 협상 초기 외교부에 ISD의 삭제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무부는 ISD가 ▲외국투자자에게만 정부상대 국제중재제기권이 보장되어 내국인 투자자에 대한 불평등이 초래될 위험이 있고 ▲우리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조치가 국제중재재판소에 의해 인용될 경우 입법권과 사법권이 침해되는 초헌법적 상황이 발생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또한 “거대자본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의 경우 제도적·관행적 장애를 제거하고 특정 정부를 길들이기 위해(taming effect) 승소가능성 낮은 경우에도 중재를 제기하는 경향이 있어 정부의 공공정책권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법무부는 ‘미국-호주 FTA 체결’례와 같이 ISD 자체의 삭제를 요청했지만 통상교섭본부는 독단적으로 ISD를 한미FTA 협상안에 포함시켰고 이후 국회에서 이를 배제하려는 논의에 대해서도 국제관행을 들어 거부하였다.

 

협상 타결을 앞둔 3월 7일 참여연대는 한미FTA 관련 전문가 54인이 한미FTA 협상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채점표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전문가들이 매긴 한미FTA 협상 종합점수는 -4.25점(최악 -5~최선 +5 기준)으로 최악에 가까웠다. 그 근거로는 ‘투명성 결여됐다’는 의견은 89%(48명), ‘국민 합의 부족하다’ 100%(54명), ‘미국이 정한 시한 내 타결해서는 안된다’ 98%(53명) 등이 선택되었다.

 

범국본은 4월 2일 협상이 타결되자 통합협정문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한편, 4월 24일 60여 명의 전문가들과 더불어 한미FTA 협상 종합평가 및 분과별 평가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통합협정문은 5월 25일에나 공개되었다. 국회비상시국회의와 정책자문단은 ‘국회가 반드시 검증해야 할 한미FTA 75대 주요 과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9월 7일 한국정부 협정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에는 국회의원 82명(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의원 포함)의 명의로 한미FTA 국정조사 요구서를 공동발의하는 작업을 지원했다. 국정조사는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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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외교통상부 앞에서 진행한 한미FTA 반대 기자회견.

<2기>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 완화에 대한 촛불집회 기간

2008년 4월 18일 이명박 정부가 한미FTA 협정의 4대 선결조건 중의 하나였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 연령제한 등을 대폭완화하는 등 수입조건을 완화하는데 합의하자 5월부터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되었고 이에 자극을 받아 한미FTA저지범국본과는 별도로 참여연대를 포함한 17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하여 활동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상세히 소개하였으므로 자세한 기술을 생략한다)

<3기> 한미FTA 추가협상 및 국회 비준동의 기간

2008년 이후의 주된 변화는 2007년 체결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구 열린우리당)이 야당이 되었고, 한미FTA 재협상으로 당론을 변경한 것이다. 우선은 이명박 정부에서 이루어진 추가양보가 원상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한미FTA가 지닌 ISD 등의 독소조항에 대해서도 재평가한 결과였다.

 

2010년 12월 한미 통상장관회의에서 FTA 자동차 부문 등 추가협상이 타결된 것과 관련하여 국내 비판여론이 고조되는 것을 계기로 범국본은 미 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한미FTA의 부당성과 한국사회의 비준 반대 여론을 알리기 위한 시민사회단체-국회의원 공동 방미단을 구성하여 2011년 1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을 방문하였다. 참여연대도 방미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2월에는 참여연대와 범국본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한미FTA 전면 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가 구성되었다. 이어 4·27 재보궐선거에서 야4당이 공표한 정책합의를 근간으로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이 참여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공동 기획단(9월 이후 한미FTA야당공동정책협의회로 개칭)’이 구성되었다. 기획단은 “한미FTA 추가협의 사항 폐기, 독소조항에 대한 전면적 검증 실시, 입법·사법권 침해 사례 방지를 위한 법률적 검토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국본을 대신해서 참여연대는 한국진보연대와 함께 이 협의회에 참여하여 원내 대응 전략을 함께 모색했다.

 

5월 들어 미국 무역대표부가 미 의회와 FTA 통합협정문에 대한 마무리 협의절차를 시작한 후 한국정부는 돌연 국회 외통위에 제출되어 있던 비준동의안에 ‘번역오류’가 있다며 동의안을 철회하고 6월 새 비준동의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후 9월 국회 외통위에 제출하였다. 번역오류는 사실상 한미간 합의된 협정문의 해석차이까지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시민단체와 국회는 정오표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10월 들어 미 행정부과 미 의회에 ‘한국 등과의 FTA 이행법안’을 제출했을 때, 한미FTA의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났다. 미국의 한미FTA 이행법에 따르면, 한미FTA 협정문은 미국법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고, 또 주의 법률이나 규정이 한미FTA에 위반되더라도 그 적용을 무효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 헌법에 따르면 한미FTA는 일종의 조약으로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거나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게 된다. 미국법은 한미FTA 협정문보다 우선하고, 한국법은 FTA 협정문에 종속되는 것이다.

 

범국본 정책자문단은 10월 들어 2011년 상황에서 재조명한 한미FTA 분석 특별 보고서를 발간하고 국회 외통위에 한미FTA 끝장토론을 제안하여 이를 관철했다.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이어진 끝장토론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미FTA의 독소조항들을 국회와 국민들에게 알리는 중대한 돌파구가 되었고 국회비준동의 반대 촛불집회가 대규모로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회동의가 늦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15일, “발효 후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조건부 재협상입장을 밝혔다.

 

야당의 태도는 오락가락했다. 10월 30일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ISD를 포함한 비준안 처리를 약속하는 여야합의안에 사인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로 이를 번복했다. 11월 10일 민주당 강봉균, 김성곤, 박상천, 신낙균 의원, 한나라당 홍정욱, 황영철, 현기환, 주광덕 의원 등 여야 8인 의원은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FTA 발효와 동시에 ISD 유지 여부 및 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를 시작한다고 약속할 경우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겠다”는 문구에 합의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야당의 미온적인 태도 속에서 11월 22일 정부여당은 비준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처리하고 말았다.

 

하지만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이후에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야당과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시위는 잦아들지 않고 더욱 격렬해졌다. 한미FTA 비준동의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낙선시키자는 운동이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범국본은 총선을 앞두고 한미FTA 비준동의에 책임이 있는 총 160명의 국회의원 명단을 발표했다.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정부에 대한 감독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입법주권과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자유무역협정에 거수기 노릇을 자처한 것을 기억하고 심판하자는 취지였다. 여기에는 재협상없는 비준동의안 처리에 동조했다고 판단되는 야당의원 7명의 명단도 포함되었다. 명단선정에는 참여연대의 의정모니터 자료가 활용되었다.

┃ 성과와 의미 ┃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 일부 통상관료들을 제외하고는 한미FTA가 경제개방협상일 뿐만 아니라 제도통합 협상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국민들, 심지어 정부부처와 국회의원들조차 FTA 체결이 국내 법률 수십 가지가 자동으로 개정되는 것을 의미하며, 향후에도 국내 공공정책의 입법권과 사법권이 제약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협상이 이루어졌다. 한미통상교섭본부가 추진해온 거대경제권과의 동시다발 FTA 협상은 사전에 충분한 여론조성이나 국내협상 없이 정책결정권자로부터 선포되거나 매우 짧은 시간에 독단적인 방식으로 타결되어, 결과적으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2011년 10월 뒤늦게 제정된 통상절차법은 통상협상 정보와 협상이 미칠 영향에 대한 국회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 통상관료의 독단을 제어할 일부 장치를 포함하고 있으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제출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고, 정부의 정보공개의무에 예외규정이 많다. 무엇보다도 국회입법권을 침해하는 법개정사항 등에 대한 사전보고제도가 명시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 이에 대한 개정이 불가피하다.

한미FTA 협상 개시에서 발효까지 6년 여의 사회적 갈등과정에서, 자유무역협정과 통상입국론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갈등과정에서 자유무역협정이 협정의 결과로 인한 이익과 손해가 계층별로 매우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외교행위라는 점, 협상으로 얻고자 하는 국가이익이 단순히 총량적으로 규정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 이해당사자들과의 합의 없이 결정되어져서도 곤란하다는 점이 더욱 확연해졌다. 초기에 관망하던 여론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세계경제위기, 그리고 2011년 비준동의안을 둘러싼 독소조항 논란 등을 거치면서 더욱 비판적인 인식, 더욱 적극적인 항의행동으로 전환되었고 2012년 발효 이후에는 자발적인 낙선운동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집권 시절 한미FTA 등 거대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본격화하는데 책임이 있는 야당의 모호하고 미온적 태도로 인해 비판적인 국민여론을 대변할 구조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한미, 한EU FTA에 이어 사실상 한일 FTA효과를 가지는 TPP, 한중FTA, 한-호주, 한-캐나다FTA 협상 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국회는 여전히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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