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2945

[019]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라’ 캠페인 – 투표시간 연장 등 참정권 확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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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중순부터 열흘 남짓 진행된 ‘투표시간 연장 입법청원 캠페인’에 1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여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공직선거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선거의 경우 89.2%(13대), 81.9%(14대), 80.7%(15대), 70.8%(16대), 63%(17대)로 꾸준히 하락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최고 60%(17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투표율을 보이기도 했으나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경우 46%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OECD 국가 대부분의 투표율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긴 했으나 한국의 투표율 하락폭은 선두권에 자리할 만큼 낮아지고 있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표자의 민주적 정당성과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위험할 정도로 낮은’ 투표율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위기인 것이다.

참여연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헌법과 공직선거법, 근로기준법이 국민의 투표권 행사 보장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한 실태조사나 정치권의 제도 개선 논의는 거의 전무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할 권리에 대해 시민들의 큰 관심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9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투표시간을 오후 8시까지 연장하는 법안이 새누리당의 반대로 통과 직전에 무산된 일이었다. 투표할 권리를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하는 새누리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터져 나왔고 다음 아고라 게시판의 ‘투표시간 연장 청원’에는 순식간에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이 모였다. 부재자 투표소 확대, 재보궐 선거에서 2시간 유급 휴가 보장, 투표시간 연장을 비롯해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 선거 시기 유권자 표현의 자유 보장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 온 참여연대는 대통령 선거 시기에서 ‘투표할 권리’를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만들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한 달 만에 15만 시민들,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라’ 청원 서명

2012년 10월 16일 참여연대, 민주노총, 투표권보장2030공동행동,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한국진보연대 등 전국 20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선거일 유급휴일 지정, 투표시간 연장’을 기치로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을 결성했다. 국회 다수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이 사실상 투표시간 연장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황에서 법안 처리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은 시민들의 의지를 표명하는 핵심 수단으로 ‘입법 청원 캠페인’을 진행했다. 10월 18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 페이지, SNS, 거리 서명전이 연일 진행되었고 시민 모임들의 자발적인 서명전도 곳곳에 서 벌어졌다. 청원 서명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상황실이 위치한 참여연대에는 가족과 친구, 회사 동료들의 서명을 함께 받은 시민들의 팩스, 등기 우편 등이 전해졌다. 열흘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1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의 서명이 모였다. 11월 1일,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은 총 95,746명의 청원인(온라인 서명 16,801명, 오프라인 서명 78,945명)의 서명을 들고, 57명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국회에 입법청원을 제출하며 11월 15일까지 국회가 투표시간 연장안에 대한 국민여론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은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각계 인사 선언, 시민 콘서트, 선관위 사무총장 면담을 이어갔고 ‘투표는 성의의 문제’라고 폄하하며 입법 논의를 거부한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위원 지역사무소 앞에서도 동시다발 1인 시위 등 입법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11월 15일에는 1차 청원 이후 취합된 서명을 모아 2차 청원안(온라인 서명 26,673명, 오프라인 서명 24,404명)도 제출했다. 11월 말까지 가능한 방식을 통해 국회에 입법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를 교체하고 법안 통과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졌던 행정안전위원회 위원까지 교체하는 등 끝내 법안 논의를 거부했다. 이와 함께 당시 박근혜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반대 입장이 명확해지면서 사실상 선거 전 입법은 어렵게 되었다.

현행 법규 하에서 투표권 최대한 보장하도록 촉구

투표시간 연장안 처리가 무산되자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은 그나마 존재하는 법규를 최대한 활용하여 투표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에도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 있지만, 특히 근로기준법은 제10조에서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그 밖의 공민권(公民權) 행사 또는 공(公)의 직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두고, 이를 위반했을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고용상의 불안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투표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요청하고 실제 투표권이 제한되는 사례를 제보 받아 근로기준법 안내 공문을 발송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1월 말, 개설한 ‘투표권 보장 신고센터’에는 선거 당일까지 약 400여 건의 제보가 접수되었다. 백화점·마트 등 각종 도.소매업체, 자동차 부품·정보통신 기기 부품·화학공업 제품 제조업체, 인쇄·출판업체, 컴퓨터·전기 및 통신 수리업체, 병원 등 보건업체,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 서비스업체, 건설업체 등으로 다양한 사업장에서 투표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들을 전해왔다.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도 다양했다. 정상 근무, 장시간 근로, 교대제, 원거리 출퇴근 등으로 인해 투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 있었고, 선거 당일 지역·해외출장을 지시하거나 선거 당일 워크숍 등 회사 행사를 계획한 경우, 선거일 정상근무 대신 대체 휴무일을 약속한 경우, 투표시간을 요구하자 연차 휴가 사용을 권유하는 경우 등도 있었다.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은 제보가 접수된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안내 및 투표권 보장 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유선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제보가 접수된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선거일 정상 근무가 예상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투표권 보장을 요청하고, 전국 16개 광역시·도와 서울시 25개 구청에 ‘관급공사 선거일 공사 중지 또는 조기 종료’와 ‘관내 대형마트·백화점 등 사업장에 투표권 보장 촉구 행정안내’ 등을 요구했다. 또한 각 사업주가 투표권 보장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주무 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고용노동부에도 관련 법규 홍보와 안내 등에 나서도록 촉구했다.

┃ 성과와 의미 ┃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된 투표권 보장 캠페인은 15만 여명의 청원과 국민 다수의 찬성 여론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기업이 근로기준법의 공민권 보장 조항에 대해 인식하도록 한 것은 큰 성과였다. 투표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라는 사회적 요구와 언론 취재, 기업의 이미지 등을 고려한 일부 사업장은 선거일을 휴무일로 변경하거나 업무 시간을 조정하였고 (주)CJ푸드빌과 같은 대표적인 외식·유통업체는 200여개 매장 직원들에게 법규를 안내하고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오기도 했다. 사업주의 자발적 인 참여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선거일 휴점 또는 개·폐점 시간 조정을 자발적으로 선언하는 ‘투표하는 가게 선언’에는 126개 마트·완구점·소규모 병원 등의 사업주가 참여해 직원들의 투표권 보장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의 노력을 이끌어낸 것도 주요 성과다. 선거관리위원회는 TV광고에 투표권 보장에 대한 짧은 문구를 삽입하는 등 홍보활동을 진행했고, 고용노동부는 12월 17일부터 19일까지 ‘근로자 투표권 보장 지원반’을 운영하여 제보 사업장에 유선으로 안내하는 등 부족하나마 투표권 보장을 위한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무엇보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행한 투표권 보장 캠페인의 가장 큰 성과는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유권자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투표시간 연장을 중요한 공약의 하나로 제기했고, 새누리당 역시 ‘선거 이후’에 종합적 방안을 논의하자는 전향적 입장을 보였다.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의 핵심 요소인 ‘투표할 권리’가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의 확산은 향후 제도 개선 논의에서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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