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4134

[007]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활동 – 부도덕한 고위 공직자를 낙마시키다

참여연대 발표에 대한 문화일보 사설(1998. 2.20)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 참여연대가 ‘절대로 등용되어서는 안 될 사람 104인’을 지목 발표한 것에 대한 문화일보 사설(1998. 2.20).

┃ 배경과 문제의식 ┃

이제 장관이 임명되면 인사청문회를 거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이 통용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인사청문회는 임명직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국회의 검증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방지하고 합당한 인물이 등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때문에 후보자의 전문성이나 정책 능력, 정치적 관계 뿐 아니라 도덕성과 직무 이해충돌 문제도 검증한다. 따라서 비윤리적 인물이나 부패연루 인사가 등용될 가능성을 줄이고 고위공직자들의 ‘청렴 경력’을 관리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후보자 입장에서도 인사청문회를 정당하게 거친다면 그만큼 능력과 자질, 성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되므로, 공직 수행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첫 구성 내각이었던 박희태 법무부 장관, 박양실 보사부 장관, 허재영 건설부 장관 등이 땅 투기 의혹과 자녀의 국적 문제 등으로 임명 1~2주 만에 중도 하차하는 등 고위공직자 부실 검증 인사로 큰 곤란을 겪었다. 이에 고위공직자 인사의 ‘사전검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여론을 받아들여 1997년 대선에서 인사청문회 실시 공약을 내걸었고, 집권 이후인 2000년 상반기 국회법을 개정하고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했다. 2000년 6월 이한동 국무총리에 대한 헌정사상 첫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 주요 활동 경과 ┃

참여연대에서 처음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목소리를 낸 곳은 사법감시센터다. 1996년 10월 12일 사법감시센터는 <검·경 중립화를 위한 법 제도개선 공청회>를 주최하면서 실질적인 검찰권 행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방안 중 하나로서 검찰총장의 임기를 철저히 보장하되, 임명 시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제시하였다. 사법감시센터는 법 개정안 제출에 그치지 않고 신임 지명된 대법관, 대법원장,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자체적으로 검증 평가하는 등의 활동으로 시민에 의한 인사검증을 자체 시도하였다.

한편, 맑은사회만들기본부는 공직자 부패 이력 검증에 초점을 맞추어 인사검증 이슈에 접근하였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2월 19일, 맑은사회만들기본부는 신정부에 등용되어서는 안 될 부정부패인사 리스트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절대로 등용되어서는 안 될 사람 104인’을 지목 발표하였다. 104인의 명단은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특히 여권(자민련 포함)인사, 구 여권 인사, 전직관료 세 그룹으로 나눠 언론검색 등을 기초로 각종 부패비리사건 관련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여 확정한 것이었다. 참여연대로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이 때 처음 제시한 ‘부패전력자 우선 배제’라는 기준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 낙천낙선 대상 선정에서 활용되는 등 참여연대 뿐 아닌 정치, 관료사회에서 우선 검증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부패이력 검증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송자 교육부 장관의 기업 사외이사 활동이다. 2000년 8월 7일 송 장관이 임명되자,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그가 1998년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후 1999년까지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한 실권주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18억 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시세차익 규모는 16억 7천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회사 돈을 빌려 실권주를 인수한 다음 그 중 일부를 매각하여 빌린 돈을 되갚는 방식으로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주식 3천 주를 확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참여연대는 송 장관이 당시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던 한일은행과 주 거래 관계에 있던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1998년 취임해 겸직함으로써 증권거래소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송 장관은 임기를 한 달도 못 채운 8월 29일 사임하였다. 이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위법하고 부도덕한 행실이 드러난 것이다.

자연스럽게 국무위원 전체로 인사청문회를 확대하고 좀 더 종합적인 인사검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졌다. 2003년 다시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인사청문 대상이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까지 확대되었으나, 국무위원까지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2005. 1. 5~2005. 1. 10)이 취임 6일 만에 서울대 총장 시절 판공비 유용 및 아들 국적포기 의혹 등으로 사임하고,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2004. 2. 11~2005. 3. 9)까지 임기 중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임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자, 마침내 2005년 7월 국무위원 전체로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는 국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렇듯 인사청문회가 정착되자, 묻힐 뻔했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지난 부정이 드러나 참여연대가 임명철회나 퇴진 요구 캠페인을 하는 경우도 점점 많아졌다. 가장 극명한 예는 2013년 초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다. 이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1월 내정되어 인사청문회장에 섰다. 그런데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지난 행적들에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헌법재판관 재직시 매월 300~500만 원씩 총 3억 2천만 원의 부서 특정업무경비를 개인계좌로 입금시키고, 해당 계좌의 돈을 신용카드 대금결재, 개인보험료 납부, 자녀유학비, 개인 경조사비 등에 쓰는가 하면, 증빙서류는 하나도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문제였다. 참여연대는 이 사안을 분석하여 “수표 등으로 공금을 수령한 행위를 ‘보관’으로 본다면, 이 공금을 다시 개인계좌로 입금 이체한 행위는 횡령죄의 적용사유인 ‘불법영득 의사’가 있었다고 보이고, 또 공금 인출사용 뒤에, 사유와 금원 사용처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면 그 금액은 불법영득의 의사로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대법 2003도 2807)에 따라 횡령죄가 성립” 한다며, 2월 6일 서울중앙지검에 이동흡 후보자를 횡령죄 혐의로 형사고발하였다. 결국 이 후보자는 2월 13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지 41일 만에 사퇴하였다.

┃ 성과와 의미 ┃

인사청문회가 없던 시기에는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면 부패 사범들까지 용인되었다. 인사청문회는 자칫 감정적이고 독단적으로 흐를 수 있는 행정부 수장의 인사권을 시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검증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이래 십여 년의 지난한 세월을 거쳐 비로소 정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사청문회 도입과 대상 확대를 촉구해 온 참여연대의 역할이 컸다. 정부에 새로운 인사가 발탁되면 참여연대의 인사 검증과 청문회 모니터링 활동도 진행된다. 명확한 문제제기에도 해명 없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국민여론이나 국회 의견과 무관하게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2014년 6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은 안대희, 윤창극 두 총리 후보자의 잇단 낙마를 거론하면서 “검증 기준이 너무 높아 통과할 사람이 없다”며 인사청문회를 탓했다. 이를 기회 삼아 새누리당은 인사청문회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안대희, 윤창극 두 총리 후보자의 경우, 인사청문회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낙마했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잇단 인사 참사를 낳을 만큼 허술했다는 방증일 뿐이다. 인사청문회가 두렵다면 철저한 사전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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