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4475

[005] K1 전차 군납비리 진상규명과 예산감축 운동 – ‘자주국방’의 성역에 시민감시의 메스를 들이대다

한국일보 1999년 3월 17일자 K1전차군납비리폭로에 대한 기사

1999년 참여연대의 K1전차군납비리폭로에 대해 국방부는 “외제를 국산으로 둔갑시키거나 특정업체에 특혜를 준적 없다”며 반박했다(한국일보 1999년 3월 17일자). 그러나 참여연대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국방부는 결국 1999년 자체감사를 벌였고, 이후 요약보고서를 통해 658종의 외제부품이 국산부품으로 둔갑되어 고가에 납품되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박정희 대통령 이래 한국군은 자주국방을 기치로 내걸고 무기 국산화와 첨단무기기술도입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무기산업은 ‘방위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이라는 특혜적 법률로 뒷받침되었고 지극히 불투명한 획득관리규정, 완벽한 밀실행정을 보장하는 군사보안업무시행규칙, 정보공개법상의 예외규정 등에 의해서 보호받았다.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 국산화에 대한 맹목적인 강조는 재벌 중심의 군수산업과 해외 무기제조업체, 정치인 및 국방관료들의 세 축으로 하는 거대한 커넥션에 의해 끊임없이 부추겨지고 자주국방이라는 멋진 단어로 미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적 커넥션이 가지는 구조적 비리는 극심한 예산상의 낭비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유휴시설을 양산하여 이들 유휴시설의 가동을 위해 또 다른 낭비적 무기도입계획을 수립하게 되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었다.

정보공개법이 98.1.1 이후 발효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국가안보라는 포괄적인 이유로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독소조항으로 인해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일개 행정규칙에 불과한 ‘군사보안업무시행규칙’에 의해 자의적으로 군사비밀로 분류된 서류들은 국회에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던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제창으로 진행되었던 장기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은 1993년 첫 감사에서 그 부패의 심각성을 드러냈고, 해마다 구체적 비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7년 국방부 조달본부에서 무기구매를 담당했던 공익제보자 박대기씨의 경우 국방부가 외제무기부품을 제작가보다 400배가 비싼 값으로 수입하는 사실을 언론에 폭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무기획득산업 과정의 불투명성과 폐쇄성은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율곡 사업 이후 드러난 가장 대표적인 군납 비리문제는 바로 K1전차 사업이었다. 당시 K1 전차 사업은 88전차라는 별칭을 얻으며 첨단무기 국산화의 상징처럼 선전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K-1 전차는 사실 한국형 제3세대 전차라는 선전과는 달리 미국 M1전차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현대정공이 최종생산자로 표시되어 있지만 설계는 미국의 GDLS사가 맡았고 핵심부품은 미국을 비롯한 4개 나라 7개 업체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 또는 기술도입하여 생산하고 있었다.

K-1전차가 처음으로 양산된 88년 무렵 국방부와 현대정공은 국산화율이 73.2%라고 선전하고 있었지만 이 수치는 그 후 계속 내려가 94년에는 가격기준(외자 대비 내자) 국산화율이 56.5%이며 그 중의 절반이 넘는 30% 가까운 비용이 인건비로 채워져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던 중 1998년 겨울 한 익명의 공익제보자에 의해 K1 전차의 부품 중 상당수가 외제부품이며, 외제부품이 국산부품으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폭리가 취해지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다. 참여연대는 공익제보를 근거로 K1 전차 사업의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어느 무기업자의 제보

1999년 3월 16일, 당시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지원단은 한국형 K1전차의 부품 구매 및 정비와 관련, 심각한 예상낭비 및 비리가 있음을 밝히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는 군과 K1전차 부품 납품업체가 국산장비에 대한 계약상의 특혜 조건을 악용하여 수입품을 국산개발품으로 둔갑시켜 국제시세보다 고가로 납품하는 방식으로 국방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산장비를 개발하여 납품하는 방위산업체는 각종 무기의 독점공급과 면세의 혜택을 누리는 한편, 사후정산제라는 독특한 가격산정방식에 의해 독점이윤을 보장받는다. 군이 생산을 요구한 국산무기나 부품에 대해서는 재료비+인건비+이윤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독점이윤을 사후에 정산받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구조 속에서 업체의 원가절감 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실상의 외제부품이 국산품으로 둔갑되어 사후정산방식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뒤다른다. ① 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수입재료비가 높을수록 이윤이 증가하게 된다. ② 독점공급자(개발업체)이므로 수입재료비를 두고 경쟁을 해야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③ 사실상 개발품이 아닌 부품이 개발품으로 둔갑되면서 인건비, 조립가공비 등을 추가적으로 지불 받게 된다.

 

이런 구조아래서는 업체들이 힘들여 부품을 개발할 이유도, 무기개발에 들어가는 엄청난 인프라와 투자비용을 감당할 절박한 이유도 없다. 외주정비 기술만 습득하고 이에 따른 정비시설만 갖추고 있다면 외제부품을 수입하여 적당히 껍데기를 변형해서 납품하는 것이 남는 장사인 것이다. 무기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해 생겨난 특혜조항이 도리어 국산개발 의욕이 사라지게 하고 가짜 국산품을 만들어 낼 동기만을 유발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구체적 근거 자료를 통해 성능상 거의 동일한 두 가지의 포수조준경조립체 모델이 각각 2,300만 원과 1억 8천여만 원으로 8배의 가격차이로 공급되었다는 사실, 실제 가격이 120만원-130만 원 가량에 불과한 회로판조립체의 가격이 20~30배로 뛰어 3,300만원~3,500만원으로 거래되었다는 사실 등을 폭로하였다. K1전차 사업 비리는 순식간에 여론을 통해 번져나갔다. 그러나 당시 현대정공과 국방부는 군수조달체계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한 오해라고 참여연대의 의혹 제기를 일축했다.

 

이후 참여연대는 3월 한달 간 국방부를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K1전차 부품 납품비리와 관련한 질의서를 발송하고 국산무기체계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K1전차 부품 구매 계약서 등 납품비리 의혹 관련 서류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시민이 고발할 수 있는 군납비리 제보 창구를 개설했다. 군의 권위주의적 비밀주의에 균열을 내기 위한 참여연대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정부 정보독점의 사각지대를 파헤치다

참여연대는 공개질의서와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과는 별도로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표준가격 목록인 연방조달목록(Federal Logstics)과 군납 업체 간 조달 실적을 정리한 Haystack의 구매자료들을 조사하였고, 이를 토대로 K1전차 사업 비리의 증거를 포착했다.

 

우선, 참여연대는 국산표시 외국부품의 폭리구조를 밝히기 위해 미국의 M1A1전차 정비매뉴얼과 한국의 K1전차 정비매뉴얼을 상호비교한 후 두 전차의 포수조준경에 동일하게 사용된 미국산 부품들의 실제가격을 조사해보았다. 예를 들어 포수조준경에 사용되는 부품의 국제고유번호인 재고번호(stock number)를 연방조달목록에서 검색하면 미군이 최근 수년간 구매한 실적이 가격과 함께 조회된다. 같은 방법으로 한국군이 지난 90년대 수리부속으로 구입한 동종 부품의 계약서를 찾아보면 양국군이 같은 부품을 어떤 가격으로 구매했는지 비교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한국군은 정비매뉴얼이나 부품계약서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제보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방식의 비교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양국 구매실적을 비교한 결과, 한국군은 동종부품을 미국이 공개하고 있는 조달가격보다 2배~3배 가량 비싼 가격에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부품의 경우 6배~10배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국방부가 25달러에 사들인 볼트가 실제로는 3.92달러에 불과하며, 이는 국방부가 지불한 가격의 6분의 1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참여연대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국방부는 결국 1999년 자체감사를 벌였고, 이후 요약보고서를 통해 658종의 외제부품이 국산부품으로 둔갑되어 고가에 납품되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 국방부는 후속조치로 해외부품들의 단순한 조립품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개발한 주요 부품으로 납품되어온 포수조준경, 엔진, 변속기 등의 국산식별번호(재고번호 stock number)를 외국산 식별번호로 변경하고, 기존의 특혜도 철회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방부, 군납비리를 인정하다

국방부가 셀프 개선을 하겠다고 밝힌 이후, 참여연대는 국방위 소속 박승국 의원과 더불어 2000년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군의 후속 조치에 대한 보고를 요청했다. 보고자료 검토 결과, 군은 658개의 가짜 국산부품 중 단 10개 부품에 대해서만 국산품 인정을 철회하고 미국산으로 표기방식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의 658개 부품 가격이 여전히 미국제 또는 독일제 보다 월등히 높게 책정된 문제도 발견되었다. 참여연대는 K1전차뿐만 아니라 K1A1 전차, K9 자주포 각 부품들의 실질 국산화율과 도입가격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문제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K1A1전차나 K9자주포 부품 수입 과정에서 한국 국방부가 국내업체에 지불한 가격이 미국정부가 구매한 가격의 2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밝혀냈다. 이번에는 미국 국방조달청(Defence Logistics Agency)의 웹사이트를 통해 가격을 비교 확인했다. 예를 들어 K9 자주포의 엔진과 변속기는 모두 국산부품으로 간주되어 비싼 가격에 납품되고 있었는데, 국방부가 밝힌 국산화율은 고작 각각 8%, 33%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엔진은 독일로부터 완제품이 고스란히 수입되고 있었고 변속기의 경우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하여 겉모양(하우징)의 일부만을 개조한 후 납품되고 있었다. 하지만 각각 모두 국산품으로 둔갑하여 실제 해외직수입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납품되어 왔던 것이다. 결국, 국방부는 이번에도 국산으로 둔갑한 외제부품을 비싼 가격에 사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성과와 의미 ┃

국방부 장관은 국방위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조사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특별조사단을 구성하여 이 문제를 조사하기로 약속했다. 국방위는 국방위 산하에 무기 국산화와 관련된 조사소위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2000년 가을 국정감사 이후 국회는 K1A1 신형전파 부품 구입비 200억 원과 자주포 구입비 200억 원, 총 400억 원의 예산삭감을 결의하였다.

군납비리와 관련한 정보를 군이 독점한 상황에서도 참여연대는 군의 손이 미치지 않는 해외의 국제가격 기준까지 조사하여 군납비리 의혹을 집요하게 파헤쳤고, 그 결과 K1 전차 사업 비리를 부인해온 국방부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었다.

이는 ‘국민 앞에 그 어떤 비밀의 장벽도 존재할 수 없다’는 참여연대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이를 통해 군 역시 시민의 민주적 감시의 예외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입증되었다. 한편, 무기도입 비리를 파헤쳤던 경험은 안보권력에 대한 시민감시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져 이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발족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K1 전차 사업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는 공익제보자의 역할이 컸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다시피하는 밀실 행정구조에서 부패 문제를 파헤치기란 쉽지 않다. 어두움이 깊은 만큼 빛은 더욱 밝은 법. 참여연대의 활동은 불투명한 행정 구조, 특히 군과 같은 민주적 통제의 성역을 감시하는데 공익제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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