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3997

[012] 최초의 국회 밀착감시, 국정감사모니터연대 활동 – 시민감시를 거부하는 국회,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도화선이 되다

2000국감시민연대가 만든 국회의원 평가지표

2000국감시민연대는 국회의원 평가지표를 별도로 만들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모니터링에 나섰다.

┃ 배경과 문제의식 ┃

1999년은 1997년 말에 시작된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곪게 만들었던 개혁 과제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이다. 1999년 정기국회는 국가부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을 집중 추궁하고 사회개혁의 전기를 마련해야 했지만, 여전히 국회는 당리당략과 정쟁에 얽매여 있었다. 국민들은 국회를 개혁의 병목지대, 개혁의 최우선 대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여야는 1999년 초반부터 여당의 환란청문회 단독 개최를 필두로 옷 로비 및 조폐공사 파업유도 관련 청문회, 수사기관의 도감청 의혹 등 휘발성이 강한 정치 현안들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게다가 총선을 몇 개월 앞두고 열리는 정기국회인지라 더욱 내실 있는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이 국회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거나 견제하지 않으면 더욱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정기국회 기간 중에 열리는 국정감사를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기로 결의하였다. 국정감사는 의정활동의 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시민단체들은 국정감사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태도도 동시에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국정감사는 1972년 유신헌법 때 폐지되었다가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부활했지만,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국정감사는 의례적 행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의원들은 국정감사를 충실히 준비하지 않았고,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보좌관들이 써주는 질의서를 읽는 등 부실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국회의 태도가 이러하니 정부 또한 제대로 대응할 리가 없었다. 자료제출 거부, 형식적인 답변, 후속조치 및 보고의 부재 등은 매년 단골로 제기되는 문제점들이었다. 

┃ 주요 활동 경과 ┃

1999년 9월 8일, 경실련, 녹색연합,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여성연합, 참여연대, 환경련 등 40여 개 시민단체는 ‘국정감사모니터시민연대(약칭 국감시민연대)’를 구성하고 의원들의 국정감사 활동을 상임위별로, 의원별로 평가하여 발표할 것을 결의했다. 발족과 함께 166개 정책과제를 내놓았고, 9월 28일에는 가산점 10점, 감점 10점으로 구성된 의원평가 기준을 공표했다.

국회의 반응은 170여 명에 이르는 각 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모니터요원을 발표할 때만 해도 비교적 협조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감 모니터 결과가 발표된 10월 1일 이후 상황은 돌변했다. 각 상임위에서 “시민단체가 무슨 근거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을 평가하고 점수와 등급을 매기느냐”고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10월 2일 아침, 보건복지위의 국민연금관리공단 국감을 모니터하려던 참여연대 박순철, 이은경 간사가 국감장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재정경제위원회도 비밀투표를 거쳐 18:3으로 방청을 불허했고, 국회의장은 시민단체들을 선거법 상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고발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국감시민연대는 재차 방청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방청을 불허하는 상임위마다 모니터요원을 파견해 방청을 시도했지만 상임위원장실은 답변을 회피했고, 면담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에 국감시민연대는 국회의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1일 BEST/WORST 의원 선정 사업을 포기하고라도 방청권을 얻어낼 것인가를 놓고 장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이게 되었는데,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방청을 허가 받는다면 기본권의 침해를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방청 투쟁’을 선택하였다.

10월 7일, KBS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감방청 허용에 관한 공개토론은 시민단체들의 의정감시 활동의 정당성을 확인해 준 계기가 되었다. 방청불허 입장을 가진 3명의 국회의원과 국감시민연대의 3명의 토론자가 한 시간여의 공개토론을 거친 후 ARS설문을 실시한 결과, 조사인원의 약 95%에 해당하는 6만 여 시민이 방청 완전 허용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개토론 후에도 9개 상임위는 끝까지 회의 방청을 불허했고, 실제로 방청이 제대로 보장된 상임위는 농림해양수산위, 환경노동위, 문화관광위 등 세 곳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1999년 국정감사는 불완전한 평가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시민들의 의정감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2000년 낙선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에도 시민단체들은 국감시민연대를 결성해 활동했다. 14개 상임위에 대해 총 200여개의 정책과제를 선정.발표했고, 전년도에 제기되었던 전문성 시비에 대비해 각 단체의 전문가를 총 동원해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으로 250여명의 모니터 및 평가단을 구성했다. 또 활동이 일방적이라는 비판을 수용하여 발족 후 각 당과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고, 국회의원 평가지표에 대해서도 공식, 비공식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조직했다.

2000 국감시민연대는 국감이 모두 끝난 후 30명의 상위의원과 19명의 하위의원을 발표했는데, 이를 위해 6가지 지표를 사용했다. 총 100점 중 개혁성과 전문성에서 위법부당사항, 법령정비사항, 예산관련 사항 등에 대한 문제제기 능력에 30점, 이에 대한 정책대안 제시능력에 30점, 전년도 국감지적사항에 대한 처리여부 파악 및 시정처리결과 파악 능력에 10점, 일문일답 진행 능력에 10점을 부여했다. 또 특정 집단이나 지역을 대변하는 발언을 하는지에 대한 공익성에 10점, 국감장 출석 및 피감기관 답변청취 여부 등을 보는 성실성에 10점을 배정하였다.

국감시민연대는 국정감사에 대한 사전준비와 의원들의 참여가 개선되었고, 비교적 특정집단과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던 모습이 줄어들었으며, 사회적 현안에 비교적 충실해진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정부자료에만 의존하는 평이한 질의, 대중적 관심 사안에 대한 중복질의, 일문일답을 활용하지 못한 점, 너무나 많은 피감기관으로 인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점, 정책대결이 아닌 정략적 대결의 장이었던 점, 증인 불출석에 대한 미대응 등은 비판했다.

┃ 성과와 의미 ┃

두 차례의 국감시민연대 활동은 국회의원에 대한 의정 평가는 유권자의 참정권과 직결된 기본권이고, 국회방청 역시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기본권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투표권은 갖고 있지만 그 동안 내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파악하고 평가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민들에게,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평가를 시도한 것은 신선하기도 했고, 자극이 되기도 했다.

또한 국회의원을 감히 시민(단체)들이 평가할 수 있느냐는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 역시 의미가 크다. 1999년에 국감시민연대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의정평가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저항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공정성과 전문성 등을 꼬투리 삼아 시민단체의 의정 평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논리를 폈고, 국회 회의장 출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평가의 기준과 근거가 분명한 이상 그런 것은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오히려 시민단체들의 ‘방청 투쟁’을 지지해주었고, 의원들의 오만한 태도는 이듬해 총선에서 유권자 심판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선거혁명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

이 활동으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국회의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요구가 모아졌다. 국회 내 각종 회의 공개, 소위원회 속기록 작성, 인터넷이나 TV를 통한 의정활동 중계, 입법지원기구 신설 등은 국회개혁을 위한 의제가 되었고, 이 의제들은 시민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를 통해 2005년부터 입법적 결실을 맺게 되었다. 참여연대 등은 1999년부터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피감기관을 감사하는 일정 때문에 국감이 형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상시 국감을 제안해 왔는데, 국회는 2014년 들어서야 비로소 국감을 2번에 나눠 시행하는 분리국감을 시도한다.

국감시민연대는 부문별로 전문성을 더 강화하고,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두 번의 활동을 끝으로 발전적 해소의 길을 택했다. 그 후 참여연대는 지금까지 매년 국감 때마다 각 활동기구가 제안하는 국감 검증과제를 발표하고 의원들에게 질의를 요청하는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방청한 후 평가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활동이 시민을 방관자나 관객이 아닌 정치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과정이고, 나아가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작은 시도라고 믿고 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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