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4233

[001] 내부 비리 제보자 보호 활동

1996년 5월 21일 공익제보자 이문옥 전 감사관 승소 축하연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 실태를 조사하다가 업계로비에 밀려 감사를 중단한 사실을 폭로한 공익제보자 이문옥 전 감사관은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되었다가 6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1996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승소 축하 행사가 1996년 5월 21일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렸다.

┃ 배경과 문제의식 ┃

월간 참여사회 2012년 12월 호 <참여연대사 – 공익제보자지원운동>에서 차병직 변호사는 공익제보자 지원운동의 원칙과 방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공익제보자들의 마음의 안전판이 되어 부정과 부패를 발견한 조직의 구성원이 마음껏 호루라기를 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공익제보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익제보자가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를 판단하거나 확인할 수는 없다. 비밀을 폭로하는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중립의 태도를 유지한다. 물론 제보자보다 중요한 것은 제보 내용의 진실성이다. 공익제보지원단은 정보가 진실하면 제보자를 가치중립적으로 보호한다.” 

이렇듯 공익제보자 지원 활동은 무엇보다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다. 참여연대는 창립과 함께 내부고발자지원센터를 두고 그 첫 활동을 파출소에 근무하다 관내업소와 경찰간 비리를 고발한 후 파면된 김석원 경장을 위한 파면처분 취소소송으로 시작하였다.

1994년 10월에는 해병에 부식을 납품하던 옹진축협이 각종 장부를 허위로 조작해 9천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을 참여연대에 제보한 김필우 당시 옹진축협 백령지소장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전개 등의 보호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1997년 2월 옹진축협의 상고취하로 원고 승소의 결실을 맺는다. 이밖에도 인천 슬롯머신 뇌물상납 사건 엄정수사 촉구 및 내부고발자 보호활동(1994. 10), 사회복지법인 혜인원의 횡령을 제보한 정광용 노조위원장 보호활동(1995. 4) 등 내부비리고발자지원센터는 주로 내부고발자 탄압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 지원 활동에 집중하여 사업을 진행하였다. ‘내부고발자’라는 명칭은 이후 부정적이라는 내부 지적으로 ‘공익제보자’로 개칭하였는데, ‘공익제보자’는 내부고발자를 지칭하는 우리나라만의 고유 용어로서 정착하였다. 

내부비리고발자지원센터는 1996년부터는 당시 반부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산하의 공익제보지원단으로 조직 위상을 변경하여 활동하였고, 점점 늘어나는 공익제보에 대한 좀 더 효율적인 지원 대응을 위해, 2013년에는 공익제보지원센터로 분리되어 참여연대의 하나의 활동부서로서 그 위상을 확대 강화하였다. 

┃ 주요 활동 경과 ┃

참여연대는 공익제보자 탄압에 대항하는 직접적인 지원(변론, 고발, 신고, 청원, 성명, 탄원서, 의견서 제출 등)활동을 끊임없이 전개하였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식 대응 공익제보 사건은 총 18건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문옥, 현준희, 그리고 조주형의 경우다. 

이문옥 감사관은 1990년 23개 재벌계열사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이 43%로 드러났는데도, 업계의 로비에 따라 상부의 지시로 감사가 중단되었음을 한겨레신문에 제보하였다. 한겨레는 이를 1990년 5월 11일부터 이틀에 걸쳐 보도하였다. 5월 15일 이 감사관은 보도가 자신의 제보에 의한 것임을 감사원 측에 스스로 밝혔고, 다음 날 검찰은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하였다. 그 후 6년간의 긴 법정투쟁 끝에 1996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기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의 누설에 의하여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위법한 비밀은 비밀로서 보호 가치가 없다는 당시 판결(대법원 95도 780)은 획기적이었으며 이후 공익제보의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 논리로 자리잡았다. 이 감사관은 같은 해 10월 파면처분청구 소송에서도 승소하였는데 참여연대는 <이문옥 감사관 복직축하 및 양심선언자와 함께하는 밤>을 열고 함께 축하하였다. 

현준희 감사원 주사는 1996년 4월, 효산그룹 콘도 허가과정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다 석연찮은 이유로 중단되었다고 민변에서 양심선언하였다. 현 씨는 기자회견에서 “효산이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으로 사업허가를 받은 사실과 그 결과 효산은 지가 상승과 부대시설 사업수익으로 수백억 원대의 부당이득을 얻게 됐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갑자기 사건을 다른 국(局)으로 이송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고 결국 감사가 중단되었으며 이는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다” 라고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의 기자회견 이후 효산 사건은 재조사에 들어갔고 건설공사도 취소되었으며, 제일은행이 효산에 특혜 대출한 사실 등이 밝혀져 현씨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또한, 검찰 수사 결과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이 수천만 원을 받았고 김영삼 대통령과 차남 김현철 씨의 측근들이 연루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감사원은 현 주사의 주장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폭로해 공직자 품위와 감사원 명예를 손상시켰으며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외부에 누설했다는 이유를 들어 파면조치를 하였고, 검찰은 그를 구속하였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23명의 공동변호인단을 구성, 긴급 법률지원에 나섰고, 그가 감사 중단 지시자로 지목한 감사원 간부에 의해 현 주사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건에 대해서도 김창준 변호사 등이 지속적으로 법률지원을 진행하였다. 이 건은 1996년 1심 재판 이후 무려 12년의 지난한 법적 투쟁 끝에 승리했다. 그러나 파면처분취소소송은 재심 청구 후 다시 패소해 그의 고난은 완전하게 끝나지 못했다.

조주형 대령은 F-X 사업의 시험평가를 책임지고 있는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으로 2002년 3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특정기종의 선택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위해 시험평가 과정과 그 결과의 보고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조 대령은 군형법 상 군사상 기밀누설 및 형법 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가족과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1월 초 F-X사업의 책임자인 국방부의 최 모 획득실장이 F-15기가 선정되지 않으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큰일이라는 압력성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조 대령 육성 녹음테이프를 공개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양심선언이라는 말보다는 공익제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나만해도 그 당시 공군, 더 나아가 국익을 위해서는 도움이 된다는 소신 때문에 제보를 하게 된 것이고, 공군장병들에게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왜냐하면, 공군 내에서는 이미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약 10년이 지난 2011년 월간 참여사회와의 인터뷰에서 조주형 대령이 회고한 말이다. 

조 대령은 40여 일 동안 수사를 받고 4월 16일 F-X 기종선정 발표 직전에 기소됐으며, 군사법원에서 군사기밀 누설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공군참모총장에 의해 징역 1년 6개월로 감형된 이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 항소,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되었다. 2004년 2월 13일 대법원 2부는 “시험평가 결과 라팔이 F-15K보다 우수하다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해준 것은 군사기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하였다. 참여연대는 2002년 3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경실련 등 8개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F-X(차세대 전투기)사업과 관련한 의혹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변호인단을 꾸려 법률지원에 나서는 한편, 국방부 장관에게 F-X사업 4대 의혹 48개 질의를 전달하며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2003년에는 풀리지 않은 의혹과 진실을 말한 조 대령 그리고 시민사회의 노력을 모아, F-X 시민백서 『종이비행기』를 출판하여 그에게 헌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조 대령의 희생으로 국방부는 미 보잉과 벌인 F-15K 가격협상에서 2억 달러를 깎게 되어 그의 공익제보가 전혀 헛되지 않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고향인 진천에 귀농해 살고 있다. 

┃ 성과와 의미 ┃

공익제보자 지원 운동은 초기에는 공동변호인단 구성 등을 통한 민·형사 소송 대리, 비리혐의자 형사고발 등 직접적인 법률지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 투쟁 이외에는 별다른 행정적 구제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이후 청렴위, 현재 국민권익위로 조직변화)가 출범하고, 2004년 공공분야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부패방지법과 2010년 민간분야까지 포괄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사건 신고와 보호조치 신청 등 제도적으로 보장된 절차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이는 그 이전의 공익제보자들의 자신을 내던진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참여연대가 창립 이후 여러 활동을 통해 내부고발자가 조직을 배신한 밀고자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공익’제보자라는 인식을 만들어 낸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전히 보호 범위 등의 한계가 있지만 2004년 부패방지법, 2010년 공익신고자보호법, 2013년과 2014년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 공익제보지원조례 제정 등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참여연대의 제도개선 노력 또한 꾸준히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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