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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와 공동캠페인을 통해 모은 성금으로 구입한 쌀은 2003년 8월 13일 ‘평화의 배’에 실려 북한 남포항으로 향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참여연대가 대규모의 연중 평화캠페인 기획을 결정했던 2002년, 2003년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전쟁의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시기였다. 전쟁의 세기라는 20세기를 경과하고 21세기를 맞이했지만 지구촌 곳곳에서는 민족 갈등, 종교 갈등, 이념 분쟁 등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사라져갔고 삶의 터전도 파괴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2002년부터 이라크 침공을 예고하고 나섰다. 전쟁의 기운은 한반도에서도 짙어지고 있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한 부시 행정부가 2002년 10월 북한이 핵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미간의 갈등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참여연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시민행동을 전개하고자 연중 캠페인으로 ‘평화를 이야기 합시다’를 기획했다. 캠페인의 목적은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이웃들을 지원하면서 화해와 평화의 기운을 전파하자는 데 있었다. 참여연대 내적으로도 2003년에 발족한 평화군축센터의 활동 기반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캠페인을 통해 참여연대 회원과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실천 캠페인의 전형을 마련하고자 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2003년 총회장에서 ‘평화를 이야기 합시다’ 캠페인을 선포하다

 

캠페인이 연중 모금과 행사로 기획된 만큼 재정지원과 홍보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시 김기식 사무처장과 캠페인 전체 설계와 집행을 책임지고 있던 이승희 기획실장이 동분서주한 결과 캠페인은 SBS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캠페인의 시작을 알린 것은 2003년 9차 정기총회장에서였다. 회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배우 정진영 씨와 개그맨 김미화 씨는 평화대사로서의 활동할 것임을 밝혔고, 캠페인 선포를 알리는 퍼포먼스와 전시, 가두행진 등이 이어졌다. 캠페인의 주요 내용으로 북한 동포를 위한 ‘평화의 쌀’ 구입, 이라크, 아프간 등 세계 분쟁지역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의 손’ 모금운동, 이라크 전쟁 반대 시민행동, 반전 평화를 내용으로 담은 다큐멘터리 상영과 영화제 개최, 반전평화콘서트 개최, 불안정한 한반도를 넘어 평화체제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 심포지움 개최 등이 소개되었다. 전체 캠페인 진행을 위해 웹사이트를 별도로 개설하여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북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한 집중 모금

 

모금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희망의 손 운동본부’를 구성하여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도록 했다. 모금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월드비전, 농협이 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전격 결정하였고, 사회공헌활동이나 대북 지원사업을 해온 기업들도 모금에 참여했다. 모금방식도 방송 ARS 모금을 비롯하여 온라인 모금, 거리 모금, 전국 5000여 곳의 농협 지점에 비치한 모금함을 통한 모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모금에는 많은 시민들이 신용카드와 계좌이체, 휴대폰 결제 등을 이용해서 따뜻한 마음을 보태주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모금을 해서 전달해주는 일도 있었다. 참여연대 회원모임과 평화캠페인단은 직접 거리로 나가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SBS에서 몇 차례 진행한 모금 생방송의 효과가 컸다. 첫 생방송이 있었던 4월 25일 오전,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임진각과 명동 현장에서는 많은 시민들의 모금 행렬이 이어졌다. SBS로 중계된 ‘이라크 난민아동돕기 콘서트’ 주최 측도 이라크 지원기금으로 2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기업의 참여도 이어졌다. 동성제약(대표 이선규)은 이라크 난민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현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항생제 사이프로정(Ciprofloxacin Tablet) 2,800병(5천만 원 상당)을 기탁하기도 했다. 주식회사 롯데리아(대표 김상후)도 전국 매장에서 진행해 온 ‘좋은 세상 만들기’ 캠페인으로 적립했던 성금 2천만 원을 보내왔다.

 

이런 정성들이 모여 총 모금액이 907,235,957원이 쌓였다(분유 100톤, 의약품, 의류지원 등 물품지원을 제외한 액수). 이 모금은 북한 792,235,957원, 이라크 110,000,000원, 아프카니스탄 5,000,000원 등으로 각각 배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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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25일 임진각에서 진행된 모금생방송에 참여한 시민이 평화 비둘기에 소망의 글을 적어 한반도 지도를 채우고 있다.

 

당시 민간차원 최대 규모의 대북 쌀지원, 모니터링 위해 대표단 직접 방북하기도

 

북한에 대한 지원의 경우는 모금액으로 쌀과 분유를 구입하여 영아소와 탁아소 어린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하였다. 쌀과 분유는 배를 통해 북한의 남포항으로, 혹은 중국 단동에서 열차에 실려 보내졌다. 북한으로 보낸 쌀은 총 3000톤 규모로 세 차례에 거쳐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시 민간차원의 쌀 지원으로는 최대 물량이었다. ‘희망의 손 운동본부’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분배합의서를 체결하고, 대표단이 두 차례 방북하여 직접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모니터링 하기도 했다. 희망의 손 캠페인을 통해 모아진 성금은 이라크에도 지원되었는데, 월드비전을 통해 이라크 북부 모술지역에 총 1억 1천만원 상당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주로 초중학교의 식수대와 화장실 복구, 아동대상 위생교육 실시에 지원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한국JTS에 500만원을 전달하여 학교 보수공사 지원과 어린이 학교용품을 지원하도록 했다. 당시 한국 JTS에서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는 학용품 1세트(가방, 연필, 필통, 노트 등)의 가격은 3달러였다.

 

6월에서 7월까지는 방송을 통해 다큐멘터리 <전쟁보고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정전 50년을 말한다> 등 기획물들이 방영되었다. 정전협정 50주년이 되는 7월 27일에는 반전평화콘서트가 개최되었다. 8월에는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제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했다. 영화감독 김동원, 영화평론가 이효인 등이 영화선정위원으로 참여하여 분쟁국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쟁 이후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을 담은 영화 10여 편의 상영을 결정했다. 상영된 대표작들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다큐멘터리 <아프간의 봄>, 이만희 감독의 걸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이었다.

 

동북아비핵지대 구상을 처음 내놓은 국제심포지엄

 

캠페인의 마지막 기획으로 11월에는 <한반도 위기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향하여>를 내걸은 국제심포지엄이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해외 발표자로 윌리엄 페리 미국의 전 국방장관,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대사,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리언 시걸, 일본 평화운동가 히로 우메바야시 씨 등이 참석했고, 국내에서는 오재식, 이삼열, 박순성, 박건영 등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가했다. 국제심포지엄으로는 보기 드물게 일요일에 개최되었지만, 20층 국제회의장은 많은 청중들로 꽉 차 있었다. 기조연설에 나선 페리 전 국방장관은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과 동북아 국가들이 협력하는 지역안보포럼으로의 발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히로 우메바야시 일본 피스데포 대표는 북핵 문제 해법은 북한의 핵포기만이 아니라 동북아지역이 비핵지대로 전환되어야 가능하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동북아비핵지대 구상은 한일 평화운동의 주요한 의제로 자리 잡고 있다.

 

시민과 회원이 주도하는 캠페인

 

온-오프라인에서 반전평화캠페인을 주도적으로 전개할 회원캠페인단도 조직되었다. 이들은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반전평화행동을 비롯해 각종 거리캠페인과 모금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집행하기도 했다. 평화특강 등 캠페인이 기획한 행사들을 홍보하고 참여하기도 했다. 캠페인 전용 사이트(www.peace2003.net)에는 분쟁지역에 대한 소개와 정전 50년 관련 인터뷰와 기고, 모금현황 등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가 축적되었는데,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직접행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회원 네티즌들은 ‘클럽투게더’(club together)라는 별도의 커뮤니티를 구성하기도 했다.

 

 

┃ 성과와 의미 ┃

 

‘평화를 이야기 합시다’ 캠페인의 눈에 띄는 성과는 현물을 포함해 11억 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하여 분쟁 지역 어린이들을 지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식량난에 처해 있던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는 평화의 쌀을, 몇 년 이상 제재와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에게는 학용품과 식수지원, 위생개선 등의 구호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다. 특히 북한에 지원된 쌀의 규모는 36만 명의 어린이들이 한 달간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정도였다. 당시까지 대북 쌀 지원은 정부 주도하에서 차관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졌었는데, 참여연대의 경우는 민간이 주도한 대규모의 쌀 지원 사업이었으며, 직접 방북이나 분배합의서 서명 등을 통해 분배 모니터링도 강조했다.

 

무엇보다 ‘평화를 이야기 합시다’ 캠페인은 기존의 참여연대 활동방식과는 다른 색다른 시도였다. 국내 현안을 중심으로 권력감시와 정책 모니터링에 집중했던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한반도와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전쟁과 공포 분위기 조성에 저항하고, 시민 평화행동을 기획, 전개한 것은 참여연대 운동에서 하나의 변곡점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참여연대가 평화와 군축을 주요 활동의 한 축으로 삼고, 적극적인 현안대응과 정책대안 마련에 나설 수 있었던 기반이 된 것이 바로 평화캠페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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