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2523

[069] ‘평택미군기지이전에 관한 정부의 주장 vs 진실’ 보고서 연속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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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평택미군기지이전협상 관련 정부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보고서를 2006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외교안보 이슈는 한국군 이라크 파병과 한미동맹 재조정 협상이었다. 한미동맹 재조정의 사안은 주한미군 주둔 규모와 역할 범위, 기지재배치, 전시작전권 환수 등이었다. 시작은 산재되어 있는 주한미군기지의 통폐합과 이전 문제였다. 노무현 정부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용산미군기지를 한강이남으로 이전하는 것을 추진했고, 대테러 전쟁에 집중하고 있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전세계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 측은 또한 휴전선 이남에 배치된 주한미군이 더 이상 ‘인계철선’으로 기능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는 경기 북부의 미 2사단을 포함한 주한미군 기지의 전면 재배치 계획으로 이어졌고,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평택기지로의 확장 이전을 위한 한미간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사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은 노태우 정부 당시에도 추진된 바 있다. 1990년 6월 ‘용산 미군기지 이전합의서’가 체결되었지만, 1993년도에 당시 김영삼 정부는 1996년까지 이전하기로 했던 용산 미군기지 이전계획을 취소했다. 엄청난 대체부지와 천문학적인 이전비용이라는 미 측의 무리한 요구를 한국 측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0년 3월 미 측이 주한미군 기지의 통폐합과 이전을 한국 정부에 제안함에 따라 2002년 연합토지관리계획(Land Partnership Plan, LPP) 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국회 비준동의 직후 다시 미 측이 미 2사단 재배치를 요구하면서 곧바로 한미양국은 LPP협정 개정 논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03년 5월 한미양국은 미 2사단과 함께 용산기지의 평택이전도 동시에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한미간의 협상 내용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미군기지 재배치 사업은 주한미군 병력 규모의 축소, 소위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하는 주한미군 역할과 활동범위의 변화, 주한미군 주둔경비지원금(방위비 분담금) 규모, 심각하게 오염된 미군기지의 반환문제 등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협상다운 협상을 했다”던 정부는 사실상 미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여, 수 조원 규모의 이전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의 역할에 관한 기존의 협정과 상충되는 문제도 있었다. 용산과 미 2사단 등의 평택 확장 이전은 단순히 공간이동의 의미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평택미군기지의 대규모 확장은 해당 지역주민들의 강제이주와 토지 강제수용으로 이어져야 했다. 첨예한 갈등은 예고되었고, 미군기지 재배치 사업은 노무현 정부 내내 논란이 되었다.

┃ 주요 활동 경과 ┃

2004년 1월 한미 양측은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이하 용산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개정협정안을 타결지었다. 협상 결과 이전부지와 이전비용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용산에서 83만평과 미 2사단 부지를 반환받는 대신 평택의 350만평을 새로 내주기로 했다. 이전비용은 부지매입비 1,919억원에 건설비 3조 7,652억원을 더한 3조 9,571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제시되었다. 이전비용은 반환되는 기지를 팔아서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동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부가 협상결과를 왜곡, 호도하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하며, 협상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재협상을 촉구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정부가 주한미군 기지이전이 마치 한국 측 요구에 의한 것으로 호도하였고, 사회적 합의와 비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서둘러 처리하면서 ‘국익’에 부합하는 것처럼 주장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정부는 협상결과를 성과로 포장하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축소, 왜곡하기도 했다. 그 해 협정안에 대한 국회비준 절차를 앞두던 11월 참여연대는 민변, 평통사와 함께 협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의원 전원에게 발송했다. 같은 달에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 전원에게 협상 내용과 과정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위해 국회 청문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로지 선거만 쳐다보고 있던 국회는 최소한의 책임도 외면하고 결국 용산기지이전협정과 LPP개정안을 동시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것으로 평택미군기지이전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참여연대를 포함해 시민사회단체들은 2005년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를 발족시키고 본격적인 저항활동에 돌입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전국 각지의 활동가들이 평택 대추리로 모여들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을 포함해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매일 촛불집회를 열고, ‘평화를 택하라, 평택’을 구호로 내건 평화대행진과 문화제를 개최하며 정부의 강제집행을 거부하고 잘못된 협상을 바로 잡을 것을 요구했다. 저항은 2006년 1월 20일 한미 외교장관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함으로써 더욱 거세졌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평택범대위 활동 이외에도 참여연대는 2006년 2월 정부의 졸속적이고 부실한 대미협상에 대해 감사원에 정책감사를 청구했다. 구체적인 감사요구 사항은 1)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관련, 외교부 각서 교환의 절차적 정당성, 타당성 문제 2) 외교부, 국방부 협상 태도 및 방식이 대미협상에 미친 부정적 효과 및 영향에 대한 축소왜곡 의혹 관련 3) 외교부, 국방부에 대한 NSC의 정책조정 및 업무 파악의 문제점 관련 4) 전략적 유연성과 용산기지이전-평택기지 제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부인식의 문제점 및 그 영향에 대한 대국회보고의 고의적 축소왜곡 의혹 관련 5)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절차적 결과적 문제점 및 이에 대한 대국회보고의 고의적 축소왜곡 의혹 관련 6) 오염된 미군기지의 정화책임 관련 등이었다. 그러나 100일이 넘도록 감사실시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던 감사원은 “군사안보에 관한 한미간 협상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그 내용이 국가 기밀 및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감사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감사원의 인식과 업무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원은 당시 진행 중이던 반환기지 환경치유 부담에 관한 한미간 협상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는데, 이미 상황은 ‘반환기지 환경복구 부담은 전적으로 미국 측에 있다’던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을 때였다.

2003년부터 한미간 협상을 모니터하고, 미 국방부, 회계감사원(GAO), 국무부 등의 자료들을 뒤져왔던 평화군축센터 박정은 팀장은 두 차례 미군기지이전협상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정부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보고서는 2006년 4월 발표한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이전에 대한 정부의 주장 vs 진실 10가지>였다. 보고서는 미 측 자료를 근거로 용산기지 이전은 한국 측 요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전액 부담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반환기지 환경치유는 미 측이 부담한다는 정부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협상에 나섰던 미 측은 각종 자료를 통해 한국이 제공하는 방위비분담금 등을 포함해 이전비용의 90% 이상을 한국 측에서 부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미국 측에서 부담하기로 한 미 2사단 대체시설과 용산기지 대체시설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주한미군은 이미 이라크, 아프간 등 해외 군사활동을 위해 쉽게 드나들고 있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주장 역시 한국 측의 기대사항일 뿐이었다. 한미간 협의과정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지 오래였다.

다음 달인 5월에는 두 번째 보고서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이전에 대한 정부의 주장 vs 진실 Ⅱ- ‘5100만평 반환에 360만평만 제공’ 논리의 허구>를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상당부분 사용하지 않는 공여지였거나 산야였던 기존의 경기 북부 미군기지 부지 면적과 옥토로 알려진 평택 대추리, 도두리를 단순 비교할 수 없으며, 이전에 당연히 반환받았어야 할 공여지들을 마치 미국 소유 토지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협상결과 2008년까지 주한미군 12,500명이 감축될 예정이고, 미 2사단 일부는 경량화된 신속기동군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지상군 중심의 대규모 공여지가 사실상 불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평택에 제공되는 부지 중 용산기지 대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 미 2사단과 공군부대 확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이 용산기지이전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대규모 경찰력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하여 토지 강제수용에 나섰다. 보호해야 할 현존 군사시설이 없는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해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는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단행하였다. 미군기지 예정지에 한국군이 직접 철조망을 치게 하고, 민간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서게 하였다. 2000여명의 경찰들도 미군기지 예정지 와 대추리 인근부터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갈등이 정점에 이르던 2006년 5월 4일, 평택미군기지 이전 확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구심점으로 삼고 있던 대추분교는 포크레인으로 처절하게 초토화되었다.

관련하여 2006년 5월 참여연대는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이전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참여연대와 <한겨레 21>이 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83.6%는 “기지이전 비용 및 내역을 검증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민 82.2%는 “평택 미군기지의 용도가 변경되고 이전비용이 대폭 증액될 경우, 기지이전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평택기지 확장에 대한 시민사회운동의 저항은 2007년에도 계속되었다. 참여연대는 기지이전사업 전반과 방위비 분담금, 기지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실시를 다시 청구하기도 했다. 반환기지 정화는 미 측이 책임진다던 정부의 주장이 허구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미군기지이전 사업은 2008년 방위비분담금 협정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 동안 한국이 제공해 온 방위비 분담금 1조 1193억원을 미 측이 2사단 기지이전비용으로 축적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관련하여 평화군축센터는 <이슈리포트- 방위비 분담금 실태와 ’퍼주기‘ 논란의 진실>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군기지이전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2008년-2012년 동안 한국 국민들은 매년 최소 2조 9천억 원 이상을 미군주둔경비로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불합리한 분담금 책정과 ’퍼주기‘에 가까운 협상의 재검토를 촉구 했다. 참여연대는 전세계 미군기지 재배치 현황과 쟁점에 대해 한국과 독일사례를 살펴보는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책사업’을 앞세워 강행된 미군기지이전사업의 중단은 없었다. 선제공격과 기동타격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세계군사 전략을 뒷받침하는 전진기지를 마련해주는 일은 계속되었다.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세금이 투입되었고,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토론이나 합의 시도는 없었다.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뒷전이었다. 오염된 반환기지의 복원도 전적으로 한국의 몫으로 남았다. 시민사회의 무수한 문제제기는 국회와 감사원이라는 병목지점에서 번번히 좌절했다. 사법기관과 공권력은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억누르는 데 동원되었다. 정부의 무능력과 거짓말, 국회의 무책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던 미군기지이전사업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남긴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성과와 의미 ┃

2003년 평화군축센터가 발족하면서 직면한 한국사회의 모순 중 하나는 불평등한 한미관계였다. 동맹의 대가는 컸다. 동맹은 두 여중생을 장갑차에 깔려 죽게 한 미군들을 단죄할 사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고,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도록 했으며, 간척지를 일구어왔던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미군의 골프장으로 만들게 했다. 국가안보와 한미동맹 앞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일구어 낸 생명의 들녘에 콘크리트를 퍼부어 군사기지로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했다. 과거 국가의 요구에 따라 두 번씩이나 살던 곳에서 강제로 떠밀려온 이들을 또 다시 쫓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미세력, 외부 불순세력들이 미군 철수를 위해 준동하는 것이라는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색깔론이 등장했고,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노림수라는 억지도 등장했다.

이처럼 적나라한 한미동맹의 민낯을 마주한 평화군축센터가 미군기지이전에 관한 한미간의 협상을 집중 모니터하며 대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군기지이전사업을 중단시키지는 못했지만, 형편없는 한미간의 협상결과를 시민들에게 알리는데 유효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했다. 기지이전 저지활동을 뒷받침하고,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재협상을 압박할 수 있었다. 비록 재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신화에 가까운 한미동맹의 실태를 드러내고 군사안보만이 능사인 정부 정책에 끈질기게 도전했다. 거대한 이념이나 사상과는 관계없이 공권력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연행되고, 대추리 분교가 참혹하게 무너져내리는 것을 본 시민들이 평화적 생존 권리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 활동으로 이어졌다.

미군기지 재배치가 시급하다며 협정을 서둘러 체결하고 강제대집행까지 진행되었지만 애초 2008년 완료하겠다던 기지이전사업은 2014년 현재까지도 완료되지 않고 있다. 기지이전사업 비용만 이미 10조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2014년 현재, 주한미군이 경기 북부와 서울 잔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미군기지이전사업에 대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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