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3061

[076] 생명윤리법 제정운동 – 생명공학의 파괴적 질주를 멈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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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 배경과 문제의식 ┃

생명공학에서의 과학적 성취는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로 주목받고 있으며 정부는 해매다 막대한 연구자원을 투입해 이 분야를 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생명공학을 둘러싼 사회적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작물의 생태계 및 인체 위해성 논란, 유전정보로 인한 사회적 차별과 감시, 과도한 특허 부여로 인한 인체의 상업화와 의료 접근권 제한, 인간배아연구로 인한 인간 존엄성 훼손, 부실한 임상시험 등을 둘러싼 논쟁들이 현재도 한창 진행 중이다. 특히 생명공학은 인체를 비롯한 생명체를 연구 및 상업화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윤리적 논란을 피할 수 없으며 사회적 합의와 이에 따라 적절한 규제가 필수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본격화 된 것은 1997년 복제 양 돌리가 출현한 이후이다. 그 동안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가 이제 인간도 복제될 수 있다는 구체적 우려로 다가온 것이다. 이 사건의 뒤를 이어 인간유전체사업이 종료되었고, 인간배아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생명공학의 사회·윤리적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특히 국내에서는 동물과 사람의 이종간 교잡 연구, 인간배아연구, 유전정보의 상업적 이용 등이 아무런 규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적절한 규제를 만들기는커녕 문제가 되고 있는 영역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공학의 위험에 대한 감시와 대안 제시는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사회 내에서 생명공학의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참여연대를 포함해 여러 단체들은 실태조사, 토론회 개최, 다양한 캠페인 진행, 입법청원 등의 방법을 통해 생명공학의 쟁점들을 공론화했다. 복제 양 돌리 출현 이후 윤리 논쟁이 확산되자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움직임이 나타났다. 1997년 7월에 장영달 의원, 1998년에는 이상희 의원이 각각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의 특징은 사회적 우려가 큰 인간개체복제만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주로 연구의 위축을 우려한 과학계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법안들이었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방치되었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별도의 생명윤리법 제정, 인간복제 뿐만 아니라 배아복제까지 금지, 독립적인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설치를 주장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법률 제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더욱 증폭하였다. 2000년 6월 인간유전체사업의 초안 발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유전정보를 통한 사회적 차별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고, 8월에는 황우석 박사의 배아복제 성공 발표가 있었다. 뒤를 이어 불임클리닉에서 냉동 보관 중인 잔여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에 시민과학센터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들은 사회적 합의 없이 비윤리적 연구를 강행한 이들의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본격적인 대응 준비에 착수하게 된다.

┃ 주요 활동 경과 ┃

시민과학센터는 2000년 여름부터 ▲생명안전윤리 법제화를 위한 워크숍 ▲인간배아복제 ‘14일論 토론회’ ▲인간유전정보보호 토론회 ▲유전자 치료 토론회 등을 연이어 개최하면서 각 영역별 현황과 쟁점을 짚어나갔다. 아울러 인간복제만을 다루는 법률이 아닌 포괄적인 생명윤리법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하게 된다. 당시의 연속 토론회는 국내에서 관련 쟁점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던 최초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2000년 10월 국회에 <생명과학 안전 윤리법>에 관한 의견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 청원안은 연속 토론회의 결과물, 관련 학자들에게 받은 자문, 국내외 규제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작성되었다. 이 청원안의 기본 골격과 내용은 향후 시민사회의 입장 형성과 구체적 대안 제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청원안은 ▲인간개체복제 및 비윤리적 연구금지 ▲유전적 차별 금지 ▲유전자 치료 규제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설치를 중심으로 각각의 영역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사항들을 제시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내외 생명공학 연구의 급속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정부와 학계를 대신해 시민단체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관련법률 제정을 촉구했던 것이다.

한편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도 각각 관련 법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복지부는 2000년 5월 보건사회원구원에 생명공학의 윤리와 안전문제에 대한 법안 작성을 요청하였다. 과기부는 산하에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윤리 문제만을 다루는 독자 법률을 준비했다. 과학계, 인문사회, 시민단체 인사 등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2001년 8월까지 총 18회 회의를 개최했고 8가지 주제를 의제로 선택했다. 자문위는 2001년 5월에 공청회를 개최하고 <생명윤리기본법(안)>을 발표했는데 복지부의 공청회 때와 마찬가지로 과학계와 산업계 일부가 강하게 반발했다. 사회적 요구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자문위를 구성했던 과기부도 이런 분위기를 내심 반겨하면서 자문위의 결과는 그냥 참고사항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정부의 입법 노력에 약간의 희망을 가졌던 시민사회는 정부의 소극적 모습에 실망했고 생명윤리법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게 된다.

2001년 7월 생명윤리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면서 ‘조속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 촉구 공동캠페인단’(공동캠페인단)이 출범하였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사무국을 맡은 공동캠페인단은 33개 단체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 환경, 여성, 보건의료 단체 등 69개 단체가 참여하는 조직으로 커졌다. 이후 공동캠페인단은 집회, 공동성명 발표, 의견서 제출 및 기자회견, 내부 간담회, 100만인 서명운동, 대중 홍보물 배포, 인터넷 사이트 제작 등을 통해 생명윤리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같은 해 생명윤리법 제정운동의 일환으로 시민과학센터가 독자적으로 조사 발표한 ‘국내 인간유전정보 이용 현황’과 ‘배아관리 실태’ 보고서는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실태 조사 자료로 평가받기도 했다.

2002년 복제인간이 태어날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규제할 법률이 없어 부담을 느꼈던 복지부는 7월 15일에 2000년부터 준비해오던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에 대한 두 번째 공청회를 개최했다. 복지부의 ‘배아복제 금지’ 조항에 당황했던 과기부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복제금지및줄기세포연구등에관한법률(안)>을 국무조정실에 제출했다. 이 법률안은 배아복제를 허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과기부 산하에 구성돼 활동했던 자문위의 결정사항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다. 부처 간의 이해다툼이 본격화되고 사회적 물의를 빚자 국무조정실은 복지부를 주관 부처로 결정하고 과기부와 협의할 것을 주문했다. 복지부는 9월 관련 법률안을 입법예고 했는데, 이 안은 배아복제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되 국가생명윤리자문위가 허용할 수 있는 내용과 유전정보와 같은 생명공학의 다른 영역에 대한 규제도 담고 있는 포괄법 형태였다. 이후 공동캠페인단은 ‘생명윤리법제정 긴급 토론회’, ‘인간복제 실험 규탄 기자회견’, ‘생명윤리법 제정 촉구 대회’, 1인 시위, 100인 선언문 발표 등의 활동을 펼쳤다. 결국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연말에는 국회에 독자 법률안을 입법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1월 복건복지부 장관은 그 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체세포 복제’를 선별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인간개체복제 성공발표, 인간복제금지만을 다룬 법안의 국회 상정, 복지부장관의 입장 표명 등의 일련의 추세는 생명윤리법의 내용이 기존의 사회적 합의와 다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1월 10일 시민과학센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해, 기존의 사회적 합의가 반영된 생명윤리법 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것과는 별개로 인간배아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었다. 국내연구진에 의해 인간 배아줄기세포와 쥐의 배아를 융합하는 실험이 진행된 것이다. 2003년 2월 6일 생명윤리법 정부 단일안이 발표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논란이 되었던 ‘배아복제연구’는 허용했다.

4월 30일 정부 단일안이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처로 넘어갔고 10월 15일 복지부는 정부 내 심의 과정을 마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법률이 전무한 상황에서 정부가 관련 법률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나름대로의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법률안이 이렇게 후퇴한 것은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면서 타 부처의 이해관계가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황우석 박사를 위해 체세포 핵이식(이종간 이식)을 명시적으로 허용했고,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로 바뀌면서 7개 정부 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포함되었다. 또한 국가 기관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경우에는 연구시설 및 내용 등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했다. 2003년 12월 17일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이 원안 그대로 국회 복지위원회를 통과했고 29일에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성과와 의미 ┃

생명윤리법의 제정은 정부의 일방적 생명공학 육성정책 아래서 관리와 감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생명공학 연구 및 임상 분야를 규제하는 법률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생명공학을 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생명공학육성법>이 만들어진지 꼭 20년 만의 일이다.

생명윤리법 제정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생명공학의 다양한 영역을 두루 담은 포괄법 여부와 인간배아복제 허용 여부였는데, 포괄법 형태의 법률이 만들어진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시급했던 인간개체복제를 금지했고,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인간배아에 대한 관리 규정을 두었다. 또한 그 동안 유명무실했던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고, 상징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유전정보를 통한 차별과 당시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던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를 규제했다.

생명윤리법 제정은 인간 존엄성과 환경적 가치를 고민했던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요구와 참여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정책 영역은 과학자들과 일부 관료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고, 시민사회의 개입도 거의 없었다. 특히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생명공학 기술의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생태계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인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윤리법 제정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문제제기 뿐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을 진행했다. 다양한 토론회를 통해 쟁점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배아와 유전자 검사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으며, 입법청원을 통해 구체적인 법 조항까지 제시했다. 정부나 학계에서 해야 할 역할을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단체가 생명공학쟁점에 대한 법적 윤리적 사회적 연구까지 수행한 것이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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