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2917

[078]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 어둠은 촛불을 이길 수 없습니다

078_1.jpg

2008년 6월 광화문 광장의 1백만 촛불을 막아선 거대한 콘테이너벽. 시위 참가자들은 ‘명박산성’이라 희화화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높거나 찬반입장이 갈리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의료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경쟁과 서열화를 더욱 격화시키는 교육 정책 등이 그러했다.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부는 2008년 4월 19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광우병 발생 위험성이 매우 높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전면적으로 수입하는 것으로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 지었다. 이른바 전형적인 ‘묻지마 수입’이었다. 그동안 광우병이 대부분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도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 수입만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선물로,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권을 송두리째 포기해버렸다는 비난여론이 거세졌다. 2008년 4월 29일에는 MBC PD수첩에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소규모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서명운동이 전개되어 100만 명이 넘는 서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5월 2일 안티이명박 카페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과 중·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은 순식간에 모여들어 청계광장은 2만여 개의 촛불로 가득 찼고 곧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무책임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그렇게 2008년 국민촛불집회는 시작되었다.

┃ 주요 활동 경과 ┃

<광우병 위험 국민 대책회의> 결성

5월 2일부터 연일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를 지원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은 5월 6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 국민대책회의(이하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였다.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는 당시 참여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등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결성되었는데, 순식간에 전국의 1,700여 단체가 참여하는 연대기구로 확대되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연대기구가 결성될 정도로 시민단체, 풀뿌리 단체, 시민들의 참여열기가 뜨거웠고, 곧 참여단체는 1800여 개까지 늘어났다.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는 100여 일간 계속되었던 국민 촛불집회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참여연대는 국민대책회의 상황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당시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을 비롯해 다수의 상근자들을 국민대책회의에 파견하는 등 조직적 역량과 비용을 집중 투입했다.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연일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졌는데, 특히 광화문 일대 거리는 엄숙한 시위현장이 아니라 축제의 현장이었고 해방의 공간이었다. 쏟아져 나온 이슈만큼 즉흥적인 퍼포먼스와 놀 거리가 넘쳐났다. 정부는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콘테이너벽을 만들어 청와대로 촛불이 옮겨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를 ‘명박산성’이라 희화화했다. 시민들은 겹겹이 쌓인 컨테이너 벽을 넘어갈 것인가를 두고 길거리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명박산성’은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두려움의 몸짓이었던 것이다. 상근자들도 회원들과 함께 매일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빼곡히 막아서는 경찰들과 차벽 때문에 통인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촛불단체, 시민들에 대한 법률 지원

촛불집회가 연인원 수백 만 명의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저항으로 전개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두 차례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정부는 점차 물리력을 총동원하여 집회를 강제진압하고 참가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단체들과 시민들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대책회의에서 활동하던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과 안진걸 팀장이 구속되었고, 여러 상근자들이 기소되었다.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이 있던 참여연대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경찰에 연행되거나 기소된 시민들에 대해서 참여연대는 민변과 함께 지금까지 변론을 맡고 있다.

 

또한 정부와 경찰은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그리고 주요 실무자들을 상대로 수 억 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촛불집회로 피해를 보았다며 경찰이 제기한 소송은 참여연대 변호사들의 성실한 변론 끝에 1심에서 기각되었다. 또 보수 시민단체들이 주변 상인들을 독려하여 영업행위에 피해를 보았다며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주요 실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참여연대 변호사들이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하였다. 촛불집회 당시 서울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하다 공권력의 천막 철거에 맞섰던 시민들이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도 참여연대는 변론을 맡아 무죄선고를 이끌어냈다. 2009년 집시법 상 야간옥외집회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중단되었던 수많은 촛불시민들에 대한 재판이 6년이 지난 2014년 다시 재개되었다. 참여연대는 이들에 대한 변론 지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078_2.jpg

2008년 6월 6일부터 서울광장에서는 촛불 릴레이 3박 4일 MT도 있었다. 참여연대도 부스를 차리고 회원들과 함께 촛불 사진찍기, 집회에 사용할 양초컵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 성과와 의미 ┃

2008년 수많은 시민들의 촛불행렬은 대통령의 두 번의 대국민 사과뿐만 아니라 한미간 재협상을 이끌어내 결국 30개월 미만의 미 쇠고기만 수입하는 것으로 수입 조건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러한 직접적인 성과 외에도 촛불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이후 각종 네티즌 모임과 시민조직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세력으로 형성된 이들은 경부대운하 백지화, 주요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민영화) 정책의 백지화에 나서고, 방송독립(공정성) 사수, 언론개혁, 비정규직 문제 등에도 적극 나서게 되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확인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지와 행동은 기존 시민사회운동진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8년 촛불은 ‘활동가’와 ‘단체’를 중심으로 운동을 조직하고 사업을 배치해왔던 기존의 운동단체보다 ‘뿔뿔이 흩어져있는 개인’이라고 평가받던 시민·네티즌들의 주도성이 빛을 발했던 사례였다. 이들은 엄숙하거나 비장하지 않아도 즐겁고 창발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며,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현상이었고, 참여연대 스스로도 보다 많은 시민참여와 소통을 모색하게끔 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적 판단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수천여 명의 시민들이 연행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참여연대는 2008년 당시 촛불집회의 실무를 진행하다 기소된 안진걸 민생희망팀장(담당 김남근 변호사)을 통해 재판부에 “야간 옥외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부득이한 경우 관할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위헌”임을 확인받기 위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당시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이를 받아들여 2009년 5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야간집회 금지는 위헌(헌법불합치)이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2010년 6월부터 야간집회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었고, 국민의 기본권 신장이라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참여연대는 식품안전을 비롯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문제에 보다 적극 대응하게 되었다. 2006년부터 병의원의 항생제 남용 문제에 대해서 문제제기 해왔던 참여연대는 촛불집회 이후에는 발암우려물질인 ‘브론산염’을 과다 함유한 생수 제품을 비공개한 정부 당국에 맞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소송은 결국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2009년부터는 친환경 무상급식과 안전 급식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미국 측이 지속적으로 쇠고기 수입 조건의 완화를 압박하고 있어 참여연대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한 감시와 대응을 지속하고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2012년 ‘광우병 위험 감시와 식품안전을 위한 국민행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고 있다.

┃ 같이 보기 ┃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