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비평] 미군 기지촌 ‘위안부’ 소송과 판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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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도 역사입니다. 국가의 인권침해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국가가 성매매를 위한 ‘집창촌’을 적극적으로 운영 · 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있는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미군 기지촌을 운영, 관리하던 공무원들이 위법한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해 여성들의 존엄성을 침해했다고 확인했습니다. 아픈 역사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의 소송이 갖는 의미를 중앙대 이나영 교수가 짚어보았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24번째 이야기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 3심 [판결문 보기] : 대법원 제2부 재판장 조재연 · 민유숙 · 이동원(주심) · 천대엽 대법관, 2018다224408 손해배상(국)

판결비평 필자 이나영 중앙대 교수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난 2022년 9월 29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여성인권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미군 기지촌 ‘위안부’ 제도에 대한 한국정부의 책임을 최종 인정하고 원고 측인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던 것이다. 당사자 소송 8년 2개월,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결성 10년만의 쾌거다.

당일 관련 단체들과 소송 당사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미군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책임, 즉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권침해 사실을 대한민국 사법부가 공식적이고 최종적으로 인정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임을 선언하고, “1심과 2심에 이어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 및 운영 등 성매매를 조장하고 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제적 성병관리의 위법행위를 자행하였음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국가의 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이 재판은 2014년 6월 25일, 122명의 미군 기지촌 ‘위안부’ 원고들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햇살사회복지회, 두레방 등 단체와 연구자들), 새움터, 국가배상소송공동변호인단이 제기한 국가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시작되었다. 원고들은 1957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내 각 지역에 소재한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미군 상대 성매매에 이용되었던 여성들을 일컬으며, 피고는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여 성매매를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는 국가, 대한민국을 지칭한다. 당시 원고인단은, 국가가 ① 불법적인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 ② 불법행위 단속 면제와 불법행위 방치, ③ 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 ④ ‘애국교육’ 등을 통한 성매매 정당화·조장 등의 행위를 했으며, 이러한 행위가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 또는 ‘성매매의 중간매개 및 방조’에 해당하여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1인당 1000만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취지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1심 판결은 2년 6개월이 지난 2017년 1월 20일,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2부는 ①, ②, ④ 주장을 배척하고, ③ 주장 중 1977년 8월 19일 이전 강제 격리수용을 통한 성병치료행위는 위법행위로 인정하여 이에 해당하는 일부 원고들(총 54명)에게 각 500만 원씩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는 한편, 1977년 8월 19일 이후의 강제 격리수용행위는 적법하다고 보아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하였다. 강제 격리 수용과 이에 따른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만 배상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국가 책임을 크게 제한한 것이다.

원고와 피고 모두 각각 패소 부분에 대해 항소함으로써 2심이 진행되었고 1여년이 지난 2018년 2월 8일,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 고법 민사22부는 “국가의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기지촌 위안부였던 원고들을 상대로 성매매 정당화·조장행위와 위법한 강제 격리수용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원고들 전원(그간 5분이 돌아가셔서 2심 당시에는 117명만 생존해 계셨다.)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하였다.
그러나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 상고함으로써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당시 원고 측은 2심 판결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공무원들의 불법행위 단속 면제 및 불법행위 방치에 대해서는 원고들의 진술만으로 공무원들이 위법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하였고, ‘국가의 보호 의무 위반 주장’ 또한 원고들이 국가에 적극적으로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일부 원고들이 “국가의 강제 성병치료와 위법한 격리수용에 대해 원고들의 피해가 동일함에도 시기에 따라 피해의 경중을 구분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2심 재판부의 일부 패소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4년 6개월이 지난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이 2심 판결을 최종 확정했던 것이다.

국가의 인권침해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상고의 이유처럼 몇 가지 지점에서 한계와 아쉬움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첫째, 기지촌 성매매 운영, 관리, 정당화 과정에 국가가 개입했고, 이로 인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는 점이다. 둘째, 공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들이 직접 피해경험을 법정에서 진술하고 이를 신뢰할만한 증거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침묵 당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공적인 장에서 들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물론, 한국 사회가 한 뼘이나마 성장하게 된 것은 이번 소송 전 과정에서 가장 큰 의미라 할 것이다. 셋째,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인권가치의 확인과 국가 책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법정은 인신매매금지 및 타인의 매춘행위에 의한 착취금지에 관한 협약이 규정한 체약당사국의 의무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반한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면서 시민의 인권을 보호할 국가의 책임을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자발/강제’라는 이분법을 넘어 성매매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구조라는 사실, 이로 인해 여성들이 입는 피해를 인정했다는 사실, 그러한 중대한 인권침해적 범죄행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도 큰 함의를 지닌다.

이 판결은 사실 1986년 두레방에서 시작된 현장단체의 역사와 여성인권단체들의 연대인 <기지촌여성인권연대>(2012년 발족)의 꾸준한 활동, 무엇보다 피해생존자들의 용기가 결합된 결과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함께 성장한 한국 진보여성운동의 동력과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이 한국사회 전반에 끼친 시민의식 제고와 성평등한 인권감수성 증진도 그 배경에 있다. 덕분에 상당수의 시민들은 ‘개인의 선택’ 혹은 ‘협소한 의미의 강제적 인신매매’라는 프레임의 허구를 깨닫고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성매매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무겁고 커다란 문 하나를 힘차게 열어젖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현장단체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의회에서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고, 6월 22일, 파주시 의회에서도 유사 조례가 통과된 바 있다. 그러나 상위법 부재, 대법원 판결 부재, 피해자 기준 모호, 수급중복 등의 이유로,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인정한 국가책임을 근거로 이제 입법부와 행정부가 나서 진상규명과 법적 배상을 위한 법·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피해의 직접적 고통과 남겨진 트라우마, 사회적 낙인과 배제 속에 인격권을 침해당했던 수많은 미군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상식이 되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최종 판결이 지체되는 사이 유명을 달리하신 24분의 명복을 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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