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역법관제, 폐지가 능사인가

지역법관제, 폐지가 능사인가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C%9E%84%EC%A7%80%EB%B4%89_01.jpg얼마 전, 전 재벌그룹 회장에게 지역 고등법원이 선고한 ‘일당 5억원’짜리 노역 결정이 이른바 ‘황제노역’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곧 일부 언론은 지역법관제를 국민 법감정과 큰 괴리를 보이는 고액 환형유치 선고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대법원도 상반기 중에 지역법관 축소와 사실상의 폐지 방안을 내겠다고 공표하고 나섰다.

물론 법조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지방에서 지역법관들의 권세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지역법관을 신청하면 서울과 지방을 2~3년 주기로 오갈 필요 없이 최소 10년간 신청 지역 고등법원 관할구역에서 법관으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실주의가 팽배한 한국적 특수 현실에서 학연이나 지연까지 가세해 지역법관과 그 지역 유지들 사이에 끈끈한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적 인연이 그 지역 유지들과 관련된 지역법관의 소송사건들에서 일부 편파성을 띤 판결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역법관제가 이번 황제노역 판결의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직접적 원인은 환형유치제도가 별다른 기준 없이 너무 많은 부분을 판사의 재량에 맡기고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환형유치제도란 피고가 벌금을 내지 못할 때 벌금 납부 대신 노역장 유치를 명하는 제도다. 얼마 동안 노역장에 유치할지, 하루 유치 금액은 얼마로 산정할지가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법관 재량 때문에 ‘일당 5억원’짜리 노역장 유치 결정까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거액 노역장 유치 결정은 비단 지방뿐만이 아니라 서울지역 법원의 이른바 경판(京判)들에게서도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판들도 재벌 총수들의 하루 환형유치액을 1억원, 3억원으로 산정해 선고한 경우가 있었다.

원래 2004년에 지역법관제를 시행할 때에는 두 가지 중요한 취지가 있었다. 첫째, 지역법관제는 판사들이 서울과 수도권을 편중 희망하는 현실에 대한 고육책이었다. 판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 법원 근무를 선호한다. 2~3년에 한번씩 법관의 경향 교류를 실시하는 대법원으로서는 지방에 남아 지역법관으로 일하겠다고 나서 준 지역법관들이 오히려 고마웠을 것이다. 지역법관들이 있었기에 법관 인사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법관제는 우리 법원이 추진 중이고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행될 법조일원화의 연착륙을 위한 중간단계적 장치로서의 역할도 했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법조일원주의란 10년 이상의 변호사나 검사 경험을 가진 법조인들 중에서 판사를 뽑아 국민들로 하여금 경륜 있는 판사들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10년의 법조 경험을 쌓은 40살 전후의 중견 법조인들에게 판사 임명장을 주면서 2~3년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또 지방에서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라면 누가 흔쾌히 임명장을 받으려 하겠는가. 지역법관제도는 이러한 2~3년 주기의 근무지 이동 현상을 완화시키는 기제로서 작동하면서 앞으로의 법조일원화 안착의 기반을 조성하는 역할도 한다. 외국의 경우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처럼 전국의 판사들을 2~3년 주기로 순환 전보시키는 나라가 없다. 판사 임용부터 정년 때까지 한 지역의 법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대법원은 지역법관제 폐지를 재고해야 한다. 지역법관제의 장점을 살리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정확한 제도적 보완책을 연구하고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역법관과 지역유지들의 유착 문제는 철저한 감찰제도의 도입과 지역사회 내의 감시와 견제 장치를 통해 해소하면 될 일이다.

 

 

* 이 칼럼은 2014년 5월 12일 ‘한겨레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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