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직속 조사본부의 ‘윗선 없는’ 수사결론, 근거도 타당성도 없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안보실 외압 의혹, 독립적 조사와 수사 필요
어제(8/21) 국방부 조사본부(이하 조사본부)는 해병대 사망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본부는 대대장 등 2명에게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고, 1사단장 등 4명은 사실관계만 정리해 경찰에 이첩하고 2명에 대해서는 이첩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애초 해병대 수사단(이하 수사단)이 1사단장 포함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에 비해 피의자와 피의사실이 대폭 축소된 것이다. 특히 ‘사단장 빼라’라는 외압 의혹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의혹의 핵심인 임성근 사단장 혐의를 삭제했다. 국방부의 행태는 후안무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경찰은 맹탕에 그친 조사본부의 결론이 아니라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 보고서 원안을 토대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가 가장 핵심 수사대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안보실의 수사 외압 의혹 또한 조금도 해소되지 못한 만큼, 국정조사나 제3의 기관에 의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군인 사망사건을 민간에서 수사하도록 개정된 군사법원법 시행 이후 군 내에서 민간으로 이첩된 6건의 사건 중 5건은 혐의를 기재했고, 나머지 1건도 경찰과 협의해 비공개했다. 아예 혐의를 적시해달라는 경찰의 사전 협조요청도 있었다.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는 민간경찰에게 적법하게 이첩된 것이다. 따라서 국방부에게 민간 경찰에 이첩된 사건을 회수할 법적 권한은 어디에도 없고, 애초에 조사본부가 각 군 수사기관의 상급기관도 아닌만큼 민간 이첩 대상 사건의 수사결과를 재검토할 권한도 없다. 설령 장관이 이를 지시했다 하더라도 이는 대통령령 상의 권한일 뿐, 수사의 독립성과 민간 이첩의 신속성을 보장한 군사법원법을 넘을 수 없다. 더군다나 조사본부가 사단장 등 4명의 혐의사실을 제외한 것은 노골적인 윗선 봐주기이자 막무가내식 사건 축소일 뿐이다. 특히 국방부는 이첩 보류 이유에 대해 혐의사실을 적시할 경우 경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재검토를 거친 국방부 조사본부의 결과물에서도 대대장급 2명에 대해서는 혐의사실이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의 앞뒤도 맞지 않고, 내용도 법적근거도 없는 조사본부의 ‘은폐 보고서’야 말로 국방부의 ‘윗선 비호 증거물’에 다름아니다.
이 와중에 어제(21일) 국방부 관계자만 참석해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는 군 수뇌부의 무책임과 무능력, 몰염치는 물론 군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 경찰의 무분별함까지 드러냈다. 군사법체계가 권력의 무차별적 개입으로 유린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국방부 장관, 차관, 법무관리관 등 국방부 관계자들의 답변은 억지 논리의 반복일 뿐 의혹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심지어 국방부장관은 이첩 보류를 명령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없는 군인이 죄인이 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고, 이는 장관의 직무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궤변이다. 아무리 미사어구로 치장할지언정, 법률상 근거 없는 이첩 보류 명령의 본질은 법치주의에 반하는 불법적 지시이자 수사 독립성 침해일 뿐이다. 장관은 오히려 산하 군 수사기관의 수사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자리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어제 국회에서 거듭 인정한 바와 같이 국방부 조사본부나 수사단의 수사결과는 초동수사로 기속력이 없고 피의자와 피의사실은 민간 수사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기속력이 없는 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에 대해 장관이 법리 검토를 요청할 이유도, 조사본부의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도 없었다. 국방부장관보다 더 윗선의 개입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그럼에도 국회에서 국방부장관과 차관 등은 국가안보실의 외압 의혹을 거듭 부인하고 이첩 보류 명령의 정당성만 강조했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박정훈 수사대장의 외압 의혹 제기를 ‘선동’이라며 폄하하기만 바빴다. 그러나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수사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사태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에 더해 독립된 기관의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미 국가수사본부에 고발이 접수되었지만, 국가안보실 등 윗선의 개입 여부 진상을 밝히기 위해 공수처 등의 수사도 진행되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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