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23-12-27   290

[판결비평] 애플의 한국인 차별,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법원은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고, 이 사실을 사용자에게 알리지 않아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결했습니다. 동일한 내용의 소송에 대해 한국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2심까지 항소한 7명에 대해 각 7만 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소비자 전체에 대해 6억 1300만 달러(약 7,969억 원), 칠레 법원은 또한 25억 페소(약 37억 원)를 인정했습니다. 애플은 한국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지만, 미국 법원의 소송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판제도의 차이가 가져온 합법적 차별에 대해 한범석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비분과 실행위원)이 비평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50번째 이야기

아이폰 고의 성능 저하로 인한 애플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심

2심 : 서울고등법원 제12-3 민사부 박형준(재판장), 윤종구, 권순형 판사 2023.12.6. 선고 2023나2012591 [판결문 보기]

한범석 변호사

한범석 변호사 /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비분과 실행위원

2016년 10월 경 아이폰 6 – 7시리즈에서 전원 꺼짐 현상이 발생하자, 애플은 이에 대응하여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CPU) 및 그래픽 처리 장치(GPU)의 최고 성능을 제한하며 관리하는 기능을 담은 업데이트를 2017년 1월 배포했다.

애플이 아이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서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의혹으로 아이폰 사용자 63,767명이 2018년 4월 제기한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2023년 2월 “이 사건 업데이트로 인해 아이폰이 훼손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그리고 1심을 제기했던 아이폰 사용자 63,767명 중 7명 만이 항소를 했고, 2023년 12월 2심 재판부는 ‘애플의 성능 저하 미고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여 7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국가별 너무나 다른 배상액

이 사건을 진행한 소송대리인은 ‘소송 과정에서 애플이 원고 측에 입증책임이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법원의 문서 제출명령에 불응하면서 핵심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사실상 강제할 수단이 없어 패소하였다’고 했다. 이로 인하여 1심 소송에 참여한 대부분 피해자들이 항소를 포기하였고 단 7명 만이 항소에 참여했다.

동일한 사안에서 소비자에게 미국은 6억 1300만 달러(7,969억 원·환율 1300원 기준), 칠레는 25억 페소(37억 원) 배상이 인정된 것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과 미국 등과의 소송 제도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제도)”와 “집단소송제”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위한 “증거개시제도” 도입

민사소송법상 소를 제기한 원고가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증명 책임을 지는데 개인이 국가나 대기업에 자료를 요청해도 이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송을 포기하거나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증거를 갖고 있는 기업이 자진해서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 법원 등에서 활용되는 ‘증거개시제도’는 민사소송이 시작되기 전에 재판의 증거자료를 상대방에 제출해야 하는 절차로, 제출 요청을 거부할 경우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불성실한 자료 제출에 대해서도 강한 제재가 이뤄진다. 미국의 연방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증거 개시 절차에서 당사자가 증거 제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 법원은 당해 증거에 그 내용이 있다고 판단하고, 더 나아가 제출을 거부한 당사자가 증거를 향후에라도 당해 소송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때까지 소송을 중지한다. 제출을 거부한 당사자에게 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거나 심지어는 제출 의무 불이행을 법정 모독에 해당하는 것으로 취급해 형벌을 부과하고, 변호사가 공모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변호사에게 제재를 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법안이 나온 배경은 개인이 국가·기업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때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거의 편재다.

소비자의 집단적 피해에 효율적인 피해 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

이 사건과 같이 과학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첨단 기술 분야는 소비자의 보편적 인식과 이해 범위를 한참 벗어나고 있으며 정보와 기술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기업들은 유리한 고지를 이미 선점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해소하기 위한 증거개시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단소송제”는 동일한 피해를 입은 다수의 소비자 중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나머지 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는 형태이다. 판결 결과는 대표자 및 동일한 피해를 입은 모든 소비자에게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것으로 피해자 전부가 아닌 일부가 전체 피해자를 대표해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제”로 일부 피해자가 승소하면 관련 당사자 전부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쳐 손해배상액이 눈덩이처럼 커지므로 조정 과정에서 애플을 압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 발달에 따라 소비자 피해는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발생할 가능성이 전보다 많아졌다. 동일한 원인으로 발생한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모든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면 사회 전체 차원에서 볼 때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집단소송제도는 이와 같은 문제를 동일한 사건으로 처리해 소송 경제의 장점을 살리고 소비자 피해 구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이다. 기업이 소송을 제기한 소수 소비자에게 소액만 손해배상하여 큰 부당이득을 챙기게 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이렇듯 기업의 위법 행위를 억제하는 측면에서도 집단소송제도는 중요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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