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24-06-27   869

[판결비평] 공소권 남용 검사에 면죄부 준 헌재, 수치는 왜 우리의 몫인가?

2021년 대법원은 역사상 최초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했습니다. 유우성 씨에 대한 ‘간첩 조작’으로 무죄가 선고된 후, 검찰이 자행한 ‘보복 기소’가 공소권의 남용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검사들의 공소권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에 국회는 당시 ‘보복 기소’의 담당 검사였던 안동완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헌재는 안동완 검사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에서 인정한 공소권 남용이 인정되지 않는다거나, 파면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왜 폭력은 언제나 그들의 것이며, 수치는 우리의 몫인가?”라고 물으며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비평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59번째 이야기

헌법재판소의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청구 기각 결정

헌법재판소 이종석(재판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재판관 2024. 5. 30. 2023헌나2 [결정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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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왜 폭력은 언제나 그들의 것이며, 수치는 우리의 몫인가? 형벌권을 손에 쥔 자가 한 개인의 일상을 망쳐놓았다. 법원은 이를 두고 공소권 남용이라 하였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아야 할 사건을 기소하여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2024. 5. 30 선고, 2023헌나2)는 그 검사에게 면죄부를 던져 주었다. 무법의 시대, 맹목의 폭력에 시민의 삶이 무너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낯 뜨거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하다. 유우성 씨는 2013. 2. 국정원이 조작한 증거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2013. 8. 제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2015. 10.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국정원의 간첩조작에 동조했는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고 검찰은 문자 그대로 코너에 몰렸다.

이 순간에 서울중앙지검 안동완 검사는 오래된 사건 하나를 캐비넷에서 꺼냈다. 4년 전에 기소유예로 종결되었던, 유우성 씨의 외환관리법 위반혐의 사건이 그것이다. 안동완 검사는 이를 다시 “수사”하여 2014. 5. 기소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특별한 사정의 변경도 없음에도 기소한 것이므로 이 기소는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6년이 지난 2021. 10. 대법원에 의해 확정되었다. 역사상 최초로 대법원이 검사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것이다.

검사탄핵, 검찰 견제를 위한 유력·유일의 장치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5년 이하 징역(형법 제123조)에 처해질 수도 있는, 매우 중대한 공직범죄이다. 더구나 검사의 경우 검찰청과 국가공무원법의 위반에 해당된다. 이에 국회는 2023. 9. 21. 안동완 검사를 탄핵소추하기로 의결하였다.

당연한 조치다. 검사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일반적인 징계절차로는 단순 해임까지만 가능하고 향후 5년간 공직취임이 금지되는 파면 처분을 할 수는 없다.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검사가 외압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래서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 등의 정치기관에 의해 함부로 파면이라는 불이익을 받지 않게끔 검사징계법에서 그리 정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심판하여 검사를 파면하는 검사탄핵제도는 검찰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가장 유력하고도 유일한 장치가 된다. (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판검사의 탄핵은 대통령이나 총리‧장관들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대통령 등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뿐 아니라, 권력이 막강하여 일반적인 사법과정이나 징계절차로써 징벌하기가 어렵다. 이에 헌법은 탄핵절차로써 이들을 통제하고자 한다. 반면 정치적 독립성이 강조되는 판검사의 경우, 그 신분보장을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성이 담보된 특별한 징계절차가 요구된다. 탄핵절차는 그를 위한 실질적 징계절차로 작동한다. 그래서 신중함이 요청되는 대통령 등의 경우와는 달리, 유사한 직급의 일반 공무원이 파면처분될 사안이라면 같은 비리나 불법을 저지른 판검사의 경우에도 탄핵결정을 내려 파면하는 것이 요망된다.

일본에서 향응접대를 받았거나(1952년) 담당 사건 관련자로부터 골프클럽 1개, 양복 2벌 등을 받은 판사(1972년), 심지어 법원 직원인 여성을 스토킹하고 성희롱하거나(2008년) 여성을 불법촬영한 판사(2013년, 비슷한 사례에서 우리 법원은 겨우 감봉 4개월로 끝냈다.) 등이 탄핵재판소에서 파면결정을 받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뿐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탄핵하지 못했지만, 술 마시고 불법한 판결을 내린 판사(1803년)에서부터 정치적 편향성을 보인 판사(1862년), 부적절한 선물을 받은 판사(1912년), 조세포탈한 판사(1986년), 공직자 재산 신고를 허위로 한 판사(2010년) 등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탄핵하여 파면시켰다.

대법원의 ‘공소권 남용’ 판단, 헌재가 뒤집어도 되나?

검사 탄핵에서 헌법재판소는 실질적인 특별징계위원회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5:4의 표결로, 공소권을 남용한 안동완 검사를 탄핵(파면)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3명의 재판관은 그 기소가 공소권 남용이 아니라고 보았고, 2명의 재판관은 공소권 남용은 맞지만, 그렇다고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은 없었다고 보았다. 정말 그런가?

우선 공소권 남용에 관한 판단부터 보자. 이영진, 김형두, 정형식 재판관은 4년 전 기소유예로 종결한 2010년의 사건과 안동완 검사가 기소한 2014년의 사건은 다르다고 보았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같을지나, 그동안 새로 고발이 있었고, 법위반행위도 그 범위나 결과가 조금씩 달라졌기에 수사를 재기할 만한 사정변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가 사정들은 공소권 남용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도 이미 고려한 사실이고, 그것은 너무도 경미하여 두 사건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대법원도 검찰 측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같은 입장임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헌법재판관은 사실관계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자기 스스로 다른 판단을 해도 되는가이다. 답은 부정적이다.

형사재판과정에서 발견된 범죄사실은 다른 국가기관이 함부로 부인해서는 아니 된다. 유무죄판결의 권위를 위해서뿐 아니라, 권력분립에 따른 국가기관 상호 간의 불간섭 원칙을 보아도 그러하다. 부득이 그 사실관계를 부정하거나 달리 판단하려 할 때에는 충분한 증명이나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저 3인의 헌법재판관은 ‘두 사건’이 어디가 다른가만 언급했을 뿐, 그 다른 정도와 왜 자기들은 법원의 판단을 따르지 않는지에 대한 논증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보면 안다(I see, I know)”는 식으로 강변할 뿐이다.

더 문제적인 것은 판단의 과정이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과 검사가 대립각을 세우며 서로 공격과 방어를 통해 사실관계를 찾아간다. 실체적 진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그렇지 못하다. 여기서는 탄핵소추한 국회의 대리인과 피소추인인 검사가 서로 공방을 벌인다. 정작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유우성 씨는 완전히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정변경에 관한 공방에서 검사 측의 주장은 있지만 유우성 씨는 그에 반박할 수 없다. 결국 이런 탄핵심판절차를 통해 법원이 발견한 실체적 진실을 뒤집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이 세 재판관의 판단이 법리적으로도 옳지 않음은 이 때문이다.

공소권 남용, 파면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면 공소권 남용은 맞지만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그 법위반의 정도가 파면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고 본 이종석, 이은애 재판관의 판단은 어떠한가?

두 재판관은 법리의 미로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직권남용의 행위보다는 그러한 “죄”를 찾는 데 열중한다. 당시 공소권 남용에 관해 참고할 만한 법원의 선례가 없었고,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어 처벌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 그리고 유우성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서 검사가 허위증거를 제출한 사실이 밝혀져 세간의 비판을 받자 그에 대한 보복 겸 검찰의 위신 세우기 목적으로 기소한 것이라는 청구인 측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직권남용의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직권 남용의 고의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도 없었다는 점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문제는 이 두 재판관이 하는 일이 형사재판이 아니라 탄핵심판이라는 헌법재판이라는 점이다. 형사재판과는 달리 탄핵심판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은 요하지 않는다. 종래 법원의 판단에 의하더라도 참조할 판례가 없었다고 해서 공무원이 한 직무가 위법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성실하게 법리를 검토하였는가이다. 아울러 이 두 재판관이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안동완 검사가 직권남용“죄”를 저질렀는가의 점이 아니라 직권을 남용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였는가의 여부다.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죄”의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법원의 몫이다), 탄핵이라는 징계조치의 대상이 되는 ‘위법한 행위’의 존재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우리 형법이 금지하는 일반명령-‘직권을 남용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말라’-을 위반하였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재판관의 중대성 요건에 대한 판단은 더욱 실망스럽다. 안동완 검사가 “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도로 법률을 위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공소권을 남용하기는 하였으나, 때마침 서울고법이 공소권 남용을 이유로 공소를 기각하였기에 유우성 씨에게는 국가형벌권이 행사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고, 또 그로 인해 입은 정신적 손해는 국가배상으로 해결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판단이다.

탄핵요건으로서의 중대성은 그 위법성으로 인해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된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국가기관 특히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경우 신뢰성의 판단은 직무행위의 내용뿐 아니라 그 외관으로부터 파생되는 신뢰 여부도 포함된다. 안동완 검사가 “적극적인 의도”를 가졌건 아니건 관계없이 그 행위 자체로서 국민들의 눈에 더 이상 그 검사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인식되었다면 탄핵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에 대한 판단은 이미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먼저 했었다. 국회는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안동완 검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사라졌음을 공식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두 재판관이 이에 반하는 판단을 하려면 그만큼의 논증이 있어야 했다. 이 사건 결정에서처럼 마치 자신들이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리인인 것처럼 처신해서는 아니 되었다는 말이다.

또 유우성 씨에 대한 피해가 적었다는 판단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비록 외환거래법위반혐의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하여 법정에 출석하여 스스로를 방어하고 변명해야 하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헌법재판관들이야 평생을 법대에 앉아 재판당사자들을 내려만 보았기에 별로 힘들지 않았는지 몰라도,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재판에 연루되어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서민들은 그 자체로 일상이 뭉그러지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이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은 유우성 씨에게 국가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우성 씨가 겪은 피해는 어떤 형식으로도 전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 통제 의무 저버린 헌재, 검찰공화국 도래한 현재

안동완 검사의 공소권 남용으로부터 비롯된 이 사건 탄핵심판은 인용결정 즉, 그를 탄핵하여 파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어야 마땅했다. 그의 행위는 검찰청법,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하였을 뿐 아니라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하기도 한다. 아울러 가뜩이나 검찰의 반성이 요구되었던 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에 즈음하여 발생한 공소권 남용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국민의 검찰에 대한 신뢰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사건이기도 하였다. 탄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기어코 그 기대를 저버렸다.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에는 검사의 법위반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그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적절히 작동한다면 검사의 법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도 어느 정도 방지하거나 회복될 수 있다”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낙관론으로 검찰을 견제하고 통제하여야 할 헌법재판소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검사의 법위반을 제대로 통제”한 적이 없었다. 그를 위해 만들어놓은 수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적절히 작동한다”는 가설 또한 제대로 이행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의 검찰공화국이다. 아니, 어쩌면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검찰과 한통속이 되어 버린 사법관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의 전조일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악을 인식하게 되는 특질을 상실”하게 만든 것이 제3제국의 악이라고 단정했듯이,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바로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너는 살인할지어다’라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맙소사,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그 악의 자리에 가 좌정해 버린 것일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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