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0-03-24   1657

개혁이라는 이름의 야만

한상희 건국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전 소장

한상희 교수이제 그들의 거짓과 야만이 드러났다. 그들이 애써 강조하던 법치와 법질서는 자신들의 권력욕과 이해관계를 은폐, 엄폐하기 위한 허사였다. 법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신들의 권력을 확인하는 수단이며, 질서는 국민의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폭력의 다른 말이었을 뿐이다. 최근 한나라당의 법원 ‘개혁’안은 이런 기만의 절정이다. 사건 폭주를 빌미로 대법관 수를 늘리고 합리적인 법관인사를 명분으로 법관인사위원회를 변형하며, 판결의 공정성을 내세워 양형기준법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안이 하나같이 집권자의 의지가 법원을 관통하게끔 한다는 데 있다. 법원의 조직과 인사, 판결이라는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모두 정부와 여당의 영향권 속에 포획하는 것이다.

얼마 전 신영철 대법관 사태로 드러났던 사법의 정치화가 이제 노골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한나라당의 이 안은 과거 권위주의체제 하의 권력행사 방식을 그대로 ‘버전 업’한다. 이전에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등이 행사하는 물리적 폭력을 통해 국민을 다스렸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폭력은 법의 외관으로 치장한다. 총력안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법질서로 대체되고 무자비한 최루탄이 가차 없는 법집행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법의 이름으로 폭력을 갈음하는 검찰이 존재하였다. 중정, 안기부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검찰은 이제 “법질서를 저해”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기만적인 한나라당 법원 개혁안

그러다 세기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면서 이 주도권은 서서히 법원으로 이동한다. 공소장을 베껴 쓰는 역할에 머무르던 법원이 자기 목소리로 시국사안을 판단하기 시작하였다. 참여정부 시절 공판중심주의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법권력이 검찰로부터 법원으로 이전하면서 양측의 권한 싸움이 공판의 주도권 다툼으로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갑갑한 쪽은 힘의 정치를 잊지 못하는 현 집권층이다. 한편으로는 청와대·국회로,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법원으로 술술 흘러야 할 권력의지가 차츰 법원 쪽에서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PD수첩·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해서 일부 전교조 사건에 이르기까지 무죄 선고가 속출하고, “좌파 대청소”로 사람들을 내쫓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정이 빈발하면서 그들의 권력은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다. 더구나 과거 일사불란하게 처리되던 “잡아넣어”라는 말조차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로 걸러질 수 있는 제도 아래서는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의 안은 이를 겨냥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해 쉽사리 장악되는 검찰과 달리 대법원이 버티는 한 법원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철 모르는’ ‘젊은’ 법관들은 더욱 그렇다.

사법부 장악 완벽한 시나리오

하지만 인사권은 이들을 다스리는 즉효약이 된다. 승진에 목 매는 그들의 특성상 법관인사위원회를 장악하고 수뇌부 격인 대법원을 조작해낼 수만 있다면 전체 법관들을 한 궤에 묶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법원을 불신하는 국민정서를 긁어내는 저급한 포퓰리즘까지 동원하면 사법부 장악을 위한 완벽한 시나리오가 성립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법원 ‘개혁’안이 기만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법의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또다른 형태의 폭력을 만들기 위함에 다름 아니다. 물론 우리 사법부의 폐쇄구조를 생각하면 대대적 개혁작업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나, 이런 요청이 조악한 정치술에 바탕한 한나라당의 법원 ‘개혁안’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법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절실한 것은 법의 이름으로 법을 부인하는 그들의 가면을 벗겨내고 법치를 내세우며 권력을 전횡하는 그들의 야만을 뿌리치는 일이다.

(이 글은 2010. 3. 24.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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