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3-01-24   1776

[2013/01/16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①] 왜 시민들이 법을 불신하는가

 

2008년부터 ‘한국형 배심제’인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시민들과 함께 재판을 방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중한 참관기를 받아서 함께 볼 수 있도록 게시하고 있습니다. 

° 일시 및 장소 :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서울중앙지방법원

° 사건 : 공직선거법 위반

° 글쓴이 : 장윤정(참여연대 11기 인턴 참가자)

 

서울중앙지법 대법정담대한 포부를 가지고 국민참여재판 방청기를 쓰겠다하여 다른 이전 국민참여재판 방청기를 여럿 읽어보았으나 대부분이 재판뿐 아니라 법원 방문 자체가 처음이라는 분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 방청기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진부한 표현으로 서두를 열 수 밖에 없었다. 전혀 창의적이지 못한 이 방청기의 시작처럼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법정 역시 사무적이고 재미없는 무채색과 마호가니 색의 조화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와 이전 재판으로 인해 삼십분 가량 늦어진 상황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기소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던 터라 대선이 끝난 지 약 한 달 가까이 지났음에도 그 영향력이 아직까지 미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라면, 내가 가졌던 것과 같은 시민과 법 사이에의 거리감은 사실 서로의 작은 노력과 관심으로 좁힐 수 있으며, 국민참여재판이 그 벽을 허무는 데에 가장 적극적인 방법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샹들리에만이 무채색의 일색인 법정 안에 주황빛 조명을 비추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이와는 정반대로 긴장되고 무거운 분위기에 재판은 시작되었다. 

 

재판이 시작되고 판사는 오늘 국민참여재판의 순서와 유의사항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재판의 피고인 외에도 다른 두 피고인이 동시에 기소되었으나 두 사람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인으로만 출석했으며 판결은 모두 같이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는 소개가 이어졌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 당시 공식선거운동기간이던 3월 29일 서울 대치동 한 식당에서 온라인 모임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하 미권스)의 회원 약 30명 정도가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당시 강남을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가 참석했으며 정동영 후보의 이름이 들어간 광고물을 식당에 부착했다.

공직선거법 256조에 따르면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주는 모든 다수인을 모이게 하는 연설, 대담, 토론회 등을 후보자가 아닌 경우 개최할 수 없으며 시설물 설치 등 그 밖의 광고물, 상징물의 배부, 판매, 제작이 금지되어 있다고 명시되어있다. 이 간담회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선관위로부터 조사가 이루어졌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강남지역의 모임을 개최한 주최자이고, 광고물을 개시했다는 것이며 피고인의 주장은 참석 사실은 인정하나 단순 참석일 뿐 개최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주된 쟁점은 개최를 공동피고인들과 공모하여 개최한 것으로 공모범위가 인정되는지(앞서 함께 동시에 기소된 두 피고인은 개최한 사실을 인정한 상태였다.),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는지 광고물 게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 지였다.

 

재판에 앞서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의 논점의 차이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던 간사님의 말을 계속 상기했다. 처음부터 상반된 두 입장에서는 사건을 어떤 부분을 두고 중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명백한 차이를 보였다. 검사측은 앞선 두 피고인에 대한 선관위의 문답서와 진술 조서, 강남 미권스 온라인 까페에 게시된 글과 사진, 선관위 직원과의 전화통화 녹취록 등을 증거로 제시했는데, 본건 간담회를 취재했던 방송 동영상과 캡처는 피고 측에서 사전에 조서 상에 증거로 등록이 되지 않았으므로 이는 채택되지 않는 모습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증거에 대한 검사 측의 설명과 해석이 끝나고, 변호인 측의 순서로 넘어갔다. 변호사는 등장하면서 배심원들에게 ‘공판 중에 제시된 이 증거들의 객관적 사실관계만 늘어놔도 피고인이 얼마나 억울하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가를 알 수 있으실 거다.’라는 서두로 말을 시작했다. 그 순간 재판은 무죄의 분위기로 한껏 기울어졌고 이어지는 검사 측의 증인심문에서 사변적인 신변잡기의 늘어지는 꼬투리 잡기로 예상보다 재판은 훨씬 더 길어졌다. 조금은 노골적이여 보이기까지 한 나의 이 표현이 개인의 감정적 해석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그 자리에 있었던 배심원, 방청객들이 불충분한 물증으로 유의한 증거라고는 이전 함께 기소된 두 피고인의 증언이 전부인 것 같은데 단순히 심증이 충분하다고 해서 기소되었던 걸까하는 의문을 이때부터 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이런 모임 정도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이런 재판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폐쇄적인 선거법에 놀랐다. 이후 검사 측의 증인심문에서 방청객들과 심지어 배심원까지 조는 상황에 판사가 이들을 깨우는 상황까지 전개되었으니 앞선 나의 표현이 거칠더라도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왜 피고인은 자신이 이길 것이 뻔한 싸움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을까? 로 넘어간다.

 

점심식사를 위한 휴정이 끝나고 두 피고인이 증인으로 출석한 심문이 이어졌다. 한 사람은 미권스의 평회원이였고 다른 이는 미권스 강남지역 모임의 운영자였다. 두 사람 모두 처음 선관위의 조사를 받았을 때 모임의 주최는 자신이 아닌 피고인이라고 했으나 이 진술을 모두 그날 번복하며 피고인은 간담회의 개최와 무관하게 참석만 했을 뿐 주최는 자신들이 하였다고 밝혔다. 현재 증언과 조서가 다른 이유는 선관위로부터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고인이 두 사람에게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라,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위기를 느낀 듯 검사는 공격적인 질문들로 증인을 압박해갔다. 간담회 개최 계획에 대해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논의하는 것이 상식적 통상적이지 않은가. 피고인이 그런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 본인이 개최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 아닌가. 정동영 후보 사무소 개소식 때를 들은 대로, 기억나는 대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지 마라…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검사의 어조는 한결같이 듣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어투와 논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인정 가능한 심정이다. 이해가지 않았던 것은 질문의 내용이었다.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잦으며 어렵지 않은 20대의 나에게 검사의 질문들은 이해하기 힘든 것들 이었다. 모임을 주도하고 개최하는데 결정적으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기준의 차이가 그 이유인데, 정동영 후보가 도착했을 때 어떻게 있었는가, 먼저 나가 맞이했는가, 당시 식당에서 자리는 어디에 앉았는가, 건배를 주도한 사람은 누구이었는가 등. 실제 온라인 모임을 해보면 모임을 개최 하는 것은 각자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되고 누구 하나 크게 주도하는 사람 없이 다같이 어울리는 분위기가 통상적인데, 전통적인 모임인 동창회나 좌담회 등의 형식에 익숙한 듯 그런 모임들의 기준을 본건 간담회에 적용하는 검, 판사의 질문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기존 사법부가 가지고 있는 관습과 권위와 국민들이 가진 보편적 가치들이 충돌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길고 길었던 증인심문이 끝나고, 재판 시작 때 피고의 신상정보를 확인할 때 들었던 이 후 약 8시간 만에 다시 피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피고인신문 차례였다. 피고인의 말인즉슨 초기 진술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은 검찰과 선관위의 조사로 불안해하던 나머지 두 피고인들을 대신하고 또 강남지역모임 내의 문제에서 미권스 전체로 문제가 번질 수 있으므로 미권스 운영자로서의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이지 세 사람이 모두 기소된 현재에서는 굳이 거짓으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번복하게 되었다고 했다.

검사측은 그렇다면 초기 검찰조사에서 이런 정황들에 대해 설명했다면 굳이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어도 되었을 일은 그땐 진술거부권 행사로 일관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재판 내내 침착한 어조를 지키던 피고는 다소 격앙된 말투로 거칠게 대답했다. 검찰 출두 명령에 불응해 집 앞에서 체포되었던 피고는 출근 전에 있던 검사를 기다리며 잠시 소파에 앉아 기다리겠다고 담당 공무원에게 말하자 어디 죄짓고 온 사람이 편히 앉아 기다리겠다는 거냐- 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불쾌해진 피고는 잠시 후 검사가 도착한 뒤 이러한 일들에 대해 설명했고 검사는 감히 여기가 어디인줄 알고 그랬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차례 피고와 언쟁이 오가고 결국 유치장에 반나절을 갇히게 된 피고는 다시 검사 앞에 앉았으나 도저히 사건의 정황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반나절이 아니라 몇 시간이었을 수 있고 검사의 말은 피고인의 설명과는 다를 수 있다. 피고의 말만 들었으니 지극히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이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에 반하는 이러한 검사의 태도와 처사는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재판 시작 때 배심원들에게 마치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듯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던 무죄추정의 원칙을 사법부, 그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 사례는 비단 이번 재판 뿐 아니라 수면아래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피고인의 심문까지 모두 마치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배심원들의 평의가 있었다. 놀랍게도 만장일치가 아닌 한 명의 유죄와 나머지 모든 배심원들이 무죄를 선택했다. 평결 역시 주최사실을 인정한 두 피고인에게는 벌금 70만원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던 오늘의 피고인은 무죄가 되었다. 오전 11시 삼십분에 시작했던 재판은 저녁 10시 30분이 되어서야 길고 길었던 끝을 맺었다.

 

피고인의 최후 변론에서 했던 이야기가 매우 인상 깊게 남는다. 당시 선관위로부터 집중적인 모니터링의 타겟으로 느껴졌던 미권스의 운영자로서 4월 총선이라는 상황이 더해져 예민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선관위와 검찰을 불신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든 자신의 도의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며 통감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해 왜 이러한 불신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은 국가권력에 무조건적 방어기제와 미리 자신을 예단하는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하면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시민들이 좁게는 사법부, 국가권력에 대해 갖는 불신과 반목은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병리적 현상이지 않은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방청을 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고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늘 소수의 전문가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법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한걸음 더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국가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의 품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에 앞으로 더 많은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법이라는 칼날 앞에 늘 위축되어왔던 시민들이 이젠 그 칼날을 쥐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법이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그 현실화가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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