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3-01-24   2515

[2013/01/16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②] 재판은 사람이 하는 일

2008년부터 ‘한국형 배심제’인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시민들과 함께 재판을 방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중한 참관기를 받아서 함께 볼 수 있도록 게시하고 있습니다. 

 

° 일시 및 장소 :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서울중앙지방법원

° 사건 : 공직선거법 위반

° 글쓴이 : 임유(참여연대 11기 인턴 참가자)

 

서울중앙지법 대법정법원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뉴스를 통해서만 봐왔던 서울중앙지법 건물은 약간 누르스름한 흰색을 띠었다. 세월의 흔적을 음미하며 온갖 사건과 갈등으로 고민하며 이곳을 드나들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가 방청하게 될 재판의 당사자도 저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지 공기가 무거웠다.

 

사실 여태까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재판’이 주는 엄숙하고 둔중한 느낌, 더욱이 재판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일이라는 단순하고 부정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졌던 이런 잘못된 통념을 순전한 나의 잘못으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법에 따라 냉철하게 판단함으로써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할 사법부가 그 의무를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법 권력 역시 당신들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리려 노력하지 않고 부당한 권위의식을 보여줬다는 점. 국민참여재판은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법부는 국민을 향해 조금 더 열릴 필요가 있다.

 

내가 방청한 재판의 피고인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피고인은 지난 19대 총선 강남을 지역구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정동영 후보를 공식 선거기간 전에 자신이 주최한 간담회에 초청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재판의 쟁점은 이것이었다. 피고인은 정동영 후보가 참가한 간담회를 주최했는가 안 했는가. 이를 두고 검사와 변호인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두꺼운 증거서류가 제시됐고, 두 명의 증인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었다. 법률의 그물망에 피고인의 행위를 잡아넣으려는 검사와 끄집어내려는 변호인의 다툼이 자못 흥미로웠다.

 

재판을 보면서 느낀 점 두 가지. 하나, 배심원의 이해를 돕고 그들의 동의를 구하려는 판사, 검사, 변호인의 노력이 눈에 띄었다. 재판장은 재판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했으며 사건의 핵심 쟁점을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줬다. 검사와 변호인은 PPT와 증거서류를 프로젝터 스크린을 통해 배심원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인의 논리가 맞음을 주장했다. 8명의 배심원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증거들을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참여재판은 거기에 참여하는 배심원들에게 굉장히 유익한 재판 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법률 지식이 희박한 배심원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재판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생각보다 어렵고 딱딱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배심원의 동조를 얻으려는 검사와 변호인의 노력이 보기 좋았다. 물론 판결은 재판장의 몫이지만 재판장 역시 배심원의 평의 결과를 상당 부분 반영하기 때문에 배심원의 의중을 무시할 수 없다. 피고인의 행위에 대한 판결과 양형에 국민의 대표로 뽑힌 배심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사법 권력의 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절차다.

 

둘, 재판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닿았다. 물론 사건 자체가 중차대한 편은 아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엄숙한 재판 중에 유머라니. 재판을 보면서 웃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여러 작은 사건이 있었다. 재판 도중 배심원 중 한 명이 잠깐 졸았는데 그를 깨우며 판사가 이렇게 말했다. ‘배심원이 조는 데 책임은 말을 재미없게 한 사람한테 있다’. 재판 도중 자꾸 프로젝터가 꺼지자 ‘오늘따라 사람이 많아서 그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판사의 변명은 눅눅했던 재판정에 약간의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른 한편으로 재판의 인간다움은 법 앞에 선 인간을 더욱 주눅들게 하기도 한다. 검사의 날카로운 추궁에 혼란스러워 하는 증인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법의 무게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거대하고 육중한 무게가 온전히 정의만의 무게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을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나중에 들으니 배심원 8명 중 6명이 무죄, 1명이 유죄로 주장하여 다수결에 의해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피고인이 간담회를 주최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근거에서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정의가 국민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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