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6-13   1550

[여는글] 우리 삶 속에서 만나는 과거

우리 삶 속에서 만나는 과거

 

글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슬픈 5.18 

 

올해 5.18 추모 행사는 어느 해보다도 슬펐다. 5.18 항쟁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무책임한 주장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계열의 종편이 여과 없이 방영하였고,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금지로 정부와 광주 시민사회는 별도의 행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국민들은 구한말과 일제 치하에는 민족의 독립,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불완전한) 민주화 이후, 특히 국민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체계가 발전하면서, 이전의 계급적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또한 온라인 매체와 같은 개인화된 의사소통 체계가 발달할수록 사생활로의 은둔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접하니, 과거 청산이 나 개인과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 친구 이레네 스트로일Irene Streul을 소개한다.

 

Liquidation of Będzin Ghetto

 

 

내 친구 이레네, 그녀의 과거 청산 작업

 

나는 이레네를 1978년 11월, 내 지도교수의 세미나에서 만났다. 독일어도 제대로 못하고 어리버리한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 왔고, 우리의 우정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내가 서독으로 유학을 간 1978년에 동독에서 망명하였다. 오페라 감독인 남편은 그녀와 아무 상의도 없이, 공연 차 들른 스톡홀름에서 서독으로 망명하였다. 그녀는 3년여를 국가보위부와 싸워서 망명을 허가 받았다. 본에 있는 그녀의 집 거실에는 동베를린에서 싣고 온 피아노와 호마이카 장식장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레네는 우리 둘 다 서독 사회에서는 이방인이라 생각하여, 친구들 중에서 유일한 외국인인 나와의 우정을 특별히 아꼈다.

 

1990년 통일 이후 정부는 시민들이 자신과 관련된 옛 동독 국가보위부의 자료를 열람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가까운 지인이 스파이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그녀는 몇 년 동안 신청할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어느 여름에 이레네를 방문하였을 때 나는 신청을 권유하였고, 이듬해 여름 그녀는 족히 1,500장은 되어 보이는 누런 갱지의 국가보위부 사찰 기록을 식탁 테이블에 얹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문서를 통해 막연히 예측한 대로 남편 망명 이후 외로운 시절, 가장 의지했던 친구가 그녀를 사찰했음이 드러났다. 

 

이레네의 다음 작업은 어머니가 임종 전에 주신 아버지의 편지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1944년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한 장교인 아버지가 일찍이 나치당에 가입한 사실은 그녀에게 늘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4남매를 홀로 기른 당당한 어머니지만, 아버지의 나치 전력과 관련된 집요한 질문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함구하였기에, 진실을 향한 이레네의 집념은 더 불탔던 것 같다. 그녀는 아버지가 보낸 모든 편지를 컴퓨터에 쳐 넣었고, 그 내용을 분류하여 큰 모조지에 도표로 만들었다. 지난 십여 년 사이에  활발해진 ‘아래로부터의 군사사’ 연구가 수행한 전선 편지의 분석 결과에 그녀 아버지의 경우도 근접하였다. 아버지의 편지에는 집안과 자녀 문제 그리고 아내에 대한 애정 표시는 많았지만, 정치적 내용이나 나치에 대한 찬미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통해 나치 시대를 다루는 일상사가들은 ‘악의 평범화’라는 테제를 만들어 내었다. 

 

작년 여름, 이레네는 새로운 과거 청산 작업에 착수했다. 요즈음 독일에서는 전사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에 대한 심리 분석이 유행하고 있다. 그녀 역시 정기적으로 심리학자를 만나서 자신에 대해 증언하면서, 자신의 일생을 시기별로 나누어 글로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거의 완성된 자서전 류의 글 묶음을 내게 보여주면서, 전쟁과 아버지의 전사가 자신의 삶에 드리워 온 트라우마를 성찰하려 하였다.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 파경에 이른 자신의 결혼 생활에까지 미친 상처를 계속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겨진 편지의 존재를 형제들에게 말해야 할지, 그리고 편지들을 어디에 보관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나는 이를 형제들에게 알린 후, 병사들의 편지를 수집하는 뮌헨의 기록 보관소에 보낼 것을 충고하였다.

 

 

일상에서 만나는 과거사와 우리

 

요즈음 대학의 한국 현대사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써오는 과제물을 내주는 교수들을 접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과거 청산과 자신의 일상적 삶과의 연계성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권장할 만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학생 개개인의 가족사를 읽어 본 선생들도 일상 속에서 만나는 현대사를 통해 새로이 역사 공부를 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한국 현대사 강의는 줄어들고, 이를 컴퓨터나 영어회화와 같은 실용과목으로 대체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음. 전공인 독일사 연구를 통해 우리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성찰을 얻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기를 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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