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5-23   794

[살림]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 행복편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행복편

 

도시여자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한번은 말이야. 서울로 가는 전철을 타려고 춘천역에 갔어. 서울에서 온 어떤 남자가 춘천역에 내리면서 옆 친구에게 말하는 거야. “야~ 좋구나. 사람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지.” 순간 난 내가 ‘이곳에 살아서 좋은가?’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어. 사실 이런 질문 종종 받거든. “행복해?”, “도시 떠나니 좋니?” 내 대답은 말이야, 글쎄…….

 


퍼즐의 맛

 

얼마 전이야. 농번기가 시작되어 남자는 정신없이 바빠. 해가 뜨는 동시에 밭으로 나가고, 해가 져 어둠이 깔려야 내 눈앞에 나타나. 혹시 흡혈귀가 아닐까? 해가 떠 있는 동안 관에 들어가 몸을 피하고 오는 괴물 말이야. 눈은 벌겋고 온몸은 땀범벅이지. 씻고 밥 먹고. 그다음에 퍼즐을 시작해. 자다 깨보면 새벽 2시까지 할 때도 있는 거야. 난 걱정을 넘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지. 제발 좀 자란 말이야.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이 거친 산골에서 여리고 예쁜 나를 혼자 살게 할 셈이야? 어?
나흘째 되는 날 자정. 난 거실로 나갔어. “안 자?” “응. 금방 잘 거야.” “언제?” “이거 하나만 더 맞추고.” 참 내……. 난 데리고 들어가려고 작정하고 계속 잔소리를 하며 기다리기로 했어. 그러면서 나도 퍼즐 몇 개를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기를 시작했는데, 이럴 수가. 어쩌다 하나가 맞춰졌는데, 그 짜릿함이 너무 기분 좋은 거야. 퍼즐이란 게 참 묘한 것 같아. 맞을 것 같은데 안 맞고, 안 맞을 것 같은데 맞고. 혹ㅋ시나 해서 대입했을 때, 쩍 하고 맞춰지며 전체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그 맛이란. 이 재밌는 것을 그동안 혼자서만 했단 말이지? 흥!
남자는 전체 그림을 보아가며 퍼즐 조각을 맞추는데, 난 몇 개의 조각을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다가 맞추는 직관력을 발휘했지. 남자가 나보고 천재래. 그 칭찬에 기분이 좋아 미친 듯이 퍼즐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나 참 단순하지?
두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난 계속 같이 하자고 했어. 하지만 남자는 도저히 피곤해 더 못하겠다고 하더군. 난 배신자라 욕을 퍼부었지. 그날부터 남자와 나는 ‘우리’가 되어 500피스, 1,000피스를 넘어 4,000피스 세계지도 퍼즐까지 도전하고 있어. 4,000피스는 좀 어렵더군. 올가을까지 천천히 맞춰볼 작정이야. 다 맞추면 이 퍼즐은 어떡하지? 다시 분해하기 아까운데 말이야.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어머, 사람은 이런 데서 살아야 해!

 

행복이 뭘까? 거창한 행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을 주는 감정을 행복감이라고 부른다면, 혹시나 말이야, 퍼즐처럼……, 저걸 언제 다 맞추나 싶지만 어쩌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조각이 ‘탁’ 맞을 때, 답답한 응어리가 ‘훅’ 하고 해소되는 그 느낌 있잖아. 바로 그 순간, 아쉽게도 그 기분은 금방 꺼지지. 하지만 노력하면 또 가질 수 있는 느낌이잖아. 그 찰나의 순간이 행복감이 아닐까. 또한 그 순간을 가지는 자신만의 방법을 두 개, 또는 세 개, 더 나아가 많이 알면 알수록 행복한 사람일 거고.
난 요즘 행복감을 주는 찰나의 순간 하나를 간곡히 바라고 있어. 바로 배달이 되는 야식이야.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으로는 아무 음식도 배달되지 않아. 난 오늘도 마당 한구석에 있는 향긋하면서도 쌉싸래한 엄나무 순을 따서 남자가 농사 지은 참기름, 이웃 어르신이 직접 담근 된장에 조물조물 무치고, 뒷산에서 딴 두릅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데쳐 먹었어. 몸 안의 혈액이 깨끗해지는 소리가 들려. 하지만 뇌의 한구석에서는 조미료 가득 들어간 양념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달라고 아우성이야. 물론 양념치킨은 내가 직접 만들면 되고, 맥주는 미리 사다놓을 수 있지만,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고 싶을 때가 있어. 배달 음식이 ‘짠~’ 하고 현관문을 들어오는 행복감을 난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을까? 게으르고도 게으른 난 또 꿈을 꾸지. 도시로 가고 싶어!!! 가끔 서울에 도착하면 외치지. “야~ 좋구나. 사람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하고.

 

도시여자 춘천의 별빛산골교육센터에 산골유학 온 도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낸 지 벌써 4년. 마음만은 성격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전히 도시여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