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6-03   1225

[역사] 교과서 프로젝트, 이웃을 경계하라

교과서 프로젝트, 이웃을 경계하라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좋은 이웃이란 없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오랜 이웃이다. 고대로부터 미운 정 고운 정 쌓으며 함께 동아시아의 역사를 엮어왔다. 덕분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고목의 뿌리처럼 머리와 마음 속 깊이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있어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고정관념을 대대로 전수하는 대표 선수다.  

 

교과서는 이웃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전근대사에서는 중국이 단연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다. 그리고 중화제국의 주인공인 한족의 편이 되어 오랑캐인 북방 민족을 차별한다. 일본 역시 오랑캐일 뿐이다. 근현대사로 오면 주인공이 서양으로 바뀌고 서양화의 정도에 따라 문명과 미개를 나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국은 이제 반半문명, 혹은 미개한 나라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경험 탓인지 근현대사는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에 따라 배열되고 일본과 중국은 늘 위협적인 존재로만 그려진다. 이렇게 민족주의적 색채가 다분한 교과서에는 이웃과의 나쁜 기억이 넘쳐날 뿐, 좋은 추억거리를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중국, 문명에서 오랑캐로


교과서 속의 중국은 양극단의 얼굴을 갖고 있다. 전근대 역사에서 중국은 말 그대로 중화제국으로 대접받는다. 중국 지역에 세워진 나라가 동아시아의 최강자라는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을 때조차 ‘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서 힘을 겨뤘다’고 가르친다. ‘중국=문명’이란 인식은 곧 한족의 입장에서 북방민족을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 오랑캐로 비하하는 차별로 이어진다. 고려 시기 침략자였던 거란, 여진, 몽고는 응당 소탕해야 마땅한 오랑캐일 뿐이다. 청은 중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차지했지만, 교과서는 만주족의 나라라고 폄하하며 호란에서의 패배가 굴욕적인 항복이요 오랑캐에게 당한 수치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청의 융성 역시 한족의 문화를 제대로 전수받았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동아시아 세계의 주인공이 중국, 정확히는 한족에서 급작스럽게 서양으로 바뀐다. ‘문명=중국’에서 ‘문명=서양’으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서구중심주의의 영향과 함께 오늘날 ‘중국=오랑캐’라는 사고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문명에서 오랑캐로의 극적인 반전은 아편전쟁 패배 이후 중국이 추락하는 제국이자 근대화의 낙오자로 인식될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교과서가 중국 사회주의 정권을 반공적 잣대로 ‘주변국을 호시탐탐 공산화할 기회를 노리는 위협적 존재’로 묘사하여 더욱 중국에 대한 멸시감을 부추긴 탓도 적지 않다.        

 

 

일본, 잠재적 적국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교과서 속의 반일 의식은 굳건하다. ‘왜’는 7세기 후반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꾸었다. 하나, 16세기 말에 발발한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은 여전히 임진왜란이고 일본군은 왜군이라 불린다.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역사 교과서가 왜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대를 가르치면서 일본을 비하하는 왜라는 용어를 거침없이 쓰고 있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 전파를 설명할 때는 왜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가 존재했던 삼국 시기의 경우, 왜가 아닌 일본으로의 문화 전파라는 문구를 쓰고 있다. 한일관계에 대한 일방적이고도 무리한 해석의 절정은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파했다는 대목이다. 17세기는 서양에서 과학혁명이 진행되면서 산업혁명을 잉태하던 시대였다. 그 시절에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전파했다는 성리학과 도자기 기술을 선진 문화라고 주장하는 건 결단코 무리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본은 이런 나라다. ‘고대부터 선진 문물을 전해 주었건만 왜란을 일으키고 그 후 용서하고 다시 선진 문물을 전해 주었는데, 운 좋게 서양과 타협하여 근대화에 좀 성공했다고 다시 침략을 감행한 배은망덕한 존재! 그것이 왜놈이다.’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양이 동아시아 세계를 흔들어 놓을 때, 서양보다 ‘개 같은 왜적 놈’을 먼저 경계한 『용담유사』의 가사처럼 교과서 속의 일본은 잠재적 적국이다. 그 적대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을 탄압과 수탈에 혈안이 된 약탈자로만 가르치면서 절정을 이룬다. 해방 이후에는 사실상 일본이 교과서에서 퇴출된다. 다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특수라는 어부지리로 경제 부흥에 성공한 나라라는 타율적 이미지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이 일본의 침략 행위를 부정하거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망언을 남발하면서 한국인과 중국인을 분노케 하고 있다. 역사 전쟁의 배후에는 역사 교과서를 통해 전수되는 이웃 나라에 대한 경계와 적대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웃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만을 전파하는 교과서 프로젝트로는 평화로운 동아시아 공동체를 열어 가기 어렵다. 평화는 좋은/나쁜 기억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함께 웃고 울고 분노하며 서로 기억의 우군이 되려는 노력 속에 찾아온다. 한중일 간의 쉼 없는 역사 대화가 절실한 이유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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