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6-05   2992

[만남] 대한민국, 40대, 싱글, 남성, 덩크슛 – 김진 회원

대한민국 40대, 싱글, 남성,

덩크슛

김진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김진. 1970년 생. 혼자 사는 싱글남. 주 1회 참여연대 자원활동. 요리를 배움…….’

칠공년 개띠라……. 내가 이 세대에 대해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교복 자율화와 그 이후 다시 불어닥친 교복 입기 열풍, 그 가운데 완벽하게 끼어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교복을 입어보지 않은 정말 몇 안 되는 희귀한 세대라는 것 정도. 좀 더 객관적인 배경들을 체크해 보면, 경제적으로는 새마을운동이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니 하는 것들이 지나고 어느 정도 절대빈곤의 수준은 넘어선 상황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사회적으로는 87년 민주항쟁이 끝난 직후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 강도가 그전보다 확실히 약해진 상태였으며, 문화적으로는 오렌지족을 필두로 X세대니 신세대니 하는 다양한 신인류가 탄생할 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문화 대통령이라 하던 서태지가 등장했던 것도 이들이 20대로서 한창 젊음을 구가할 때였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인터뷰의 콘셉트를 잡기 위해 키워드를 추려낸다. ‘40대, 남성, 싱글.’ 그리고 그 앞에 붙어 있는 의미심장한 또 하나의 단어 ‘한국’. 하여, 이 글은 40대 싱글 남성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당신은 비혼주의자?


피플TV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그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나는 그런 이유로 오가며 눈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다. 평소 그에 관한 단상은 늘 깔끔한 옷차림에 40대 중반의 나이라곤 전혀 믿기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는 것. 녹음기를 켜자마자 막강 동안의 비법을 제일 먼저 물었던 건 그래서였다. 

“딱히 비법이라 할 건 없어요. 담배 안 피우고, 술 많이 안 마시고, 무리한 다음에는 쉬려고 노력하고, 자외선 차단제는 꼭 바르고. 뭐 그 정도예요. 아참, 주문을 외워요. ‘나는 스물일곱 살이다’라고.” 

주문까지요? 헉! 그 정도면 엄청난 자기 관리라 생각되는데요. 그런 분이 아직 결혼을 안 하신 건 혹시 비혼주의자라서인가요?

“결혼을 안 하겠다, 그런 건 아니에요. 연애도 했었고, 결혼까지 생각한 여자 친구도 있었어요. 결국 잘 되지는 않았지만…….”

자원활동을 하러 올 때마다 간사들을 위한 간식을 잊지 않고 챙겨오는 그를 두고 한 간사는 이렇게 증언했었다. 결혼을 하면 참 좋은 남편이 될 것 같다고. 

“아, 간식이요? 별다른 뜻은 없어요. 제가 보니까 여기서 일하는 간사들 정말 고생이 많더라구요. 그 고생에 대한 작은 정성의 표시에요.”

이렇게 세세한 곳까지 마음을 쓰는 그가 요리까지 배우러 다닌다니 정말 좋은 남편이 갖춰야 할 덕목을 여럿 지녔구나 싶다. 

“요리는 먹고살기 위해 배우는 거예요. 동네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가 있잖아요. 거기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데 한식을 포함해서 중식, 일식 등 커리큘럼도 다양하고 수업료도 싸고 좋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상이 매우 여유로워 보인다. 그럼 일은요? 뭐해서 먹고사세요?

“지금은 조금씩 일하면서 혼자 먹고살 만큼 벌고 있는데, 전에는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15년가량 근무했어요. 가르치는 건 무척 재밌었는데 행복하지는 않더라구요. 강의는 보람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아니에요. 요즘 언론에서 갑을관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학원에도 그런 게 있거든요. 학원 원장이 갑이고 강사들은 힘없는 을이고, 노동자임에도 근로자로 인정을 쉽게 받지 못하는데다 1년마다 재계약해야 하고 수강생이 줄면 도중에 일방적으로 쉽게 해고돼요. 아침 8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주 6일을 일하는 게 말처럼 쉽지도 않고 직업의 수명도 짧고…….”

긴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직장에 있다 보니 남들처럼 취미 하나 가질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았기에 그만둔 일, 그리고 그 이후 일상에 찾아든 여유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싱글로 사는 법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그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그냥 무덤덤해요.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성격이거든요.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딱히 부러운 것도 아니구요. 나이가 들어 열정이 식는 이유는 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도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돌발적인 상황이 생겨 건강을 잃게 된다면 그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해요.”

혼자 사는 가구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란 예측은 어쩌면 이미 확정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스웨덴의 1인 가구 비율은 무려 47%에 육박하며 한국도 25%에 다다른다. 결혼과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의 대답이 자연스럽게 건강 문제로 넘어간 것은 어쩌면 혼자 살아가기라는 이 시대적 당면 과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울메이트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과 연애도 해보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내가 찾던 소울메이트라면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을 고민할 거 같아요.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좋으면 누군가와 같이 박물관과 숲, 공원, 바다 등을 돌아다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건강 다음으로 싱글족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아마도 외로움 아닐까? 어떠세요?

“저는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은 아닌 거 같아요. 요즘은 심심할 틈이 별로 없어요. 직장인이 아니다 보니 아침 식사도 여유롭게 만들어 먹고, 인터넷 뉴스도 보고, 야구 시즌엔 중계방송 챙겨 보고, 요리 학원에서 배운 것도 혼자 만들어 보고……, 하루가 금방 가요.”

얼마 전 직접 담근 백김치의 맛이 환상적이었다며 자랑도 잊지 않는 그에게 앞으로 꿈꾸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돈을 많이 모아서 사회사업을 꼭 하고 싶어요. 제가 외우는 주문이 사실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100억을 모으자’에요. 지금은 가진 게 없지만 저는 낙관하고 있어요.”

주문이 더 있다고요? 

“내 마음은 항상 평온하고 여유있고 자신감에 차 있다, 불우한 노인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꼭 하겠다 등 9가지의 주문을 시간이 날 때마다 외우곤 해요.”

그가 외운다는 주문들 안에 그가 꿈꾸는 미래가 들어 있었다. 물리적인 현실로만 보자면 혼자 살고 있는 그가 매일 연습해야 하는 것은 ‘혼자서도 잘 살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틈이 날 때마다 연습하고 또 준비하는 것은 비장한 홀로서기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연습 중이다. 

 

세상일에 간섭하기 

 

작년 대선 이후 멘붕에 빠져 전국을 돌며 1인 시위를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그가 요즘 열심히 듣고 있는 강의가 있다. 바로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시민정치학교 수업이다. 

“대부분의 강사들이 지난 대선과 요즘의 한국정치에 대해 정당과 정치인의 책임을 많이 강조하더군요. 근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유권자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봐요. 어떤 지도자를 뽑느냐는 결국 유권자들의 선택인데 지도자의 실정도 문제지만 그런 지도자를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은 있는 거죠.”

2008년,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는 참여연대에 가입했다. 

“NGO에서 일하던 친구가 좋은 시민단체가 있다며 참여연대를 언급한 적이 있어요. 잊고 있다가 2008년에 MB 하는 걸 보니 뭉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참여연대가 떠올랐어요. 또 그때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기도 해서 가입했죠. 예전에는 가입한 당에 당비 내고 시민단체 후원하고 투표 꼬박꼬박하고 그러면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직접 뭔가 행동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민단체들 중 참여연대는 조직된 힘이 느껴져요. 여기에 뭉치면 변화의 가능성이 더 커질 것 같았죠. 그래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자원활동을 시작했어요.”

그가 피플TV에서 하는 자원활동은 참여연대의 영상 기록물들을 디지털화하고 스크립트 요약본을 작성하는 것이다. 

“자원활동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재밌지는 않지만, 그 영상들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시민정치학교에서도 그렇고.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건 보수층들은 훨씬 더 극성스럽고 결집력이 강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럼 우리도 그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앞으로 더 극성스러운 회원이 되려고 해요. 여당 지지자들이 표를 끌어모으는 것처럼 저도 올해는 지인들의 참여연대 회원 가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대선 직후, 제1야당 민주당이 보여준 무능력에도 화가 났고 문재인, 안철수에게도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서도 정권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안정국이 더 강화되지는 않을까, 교육 현장에서 이념 교육이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이 든 그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서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시민정치학교 앞에는 ‘나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제 더 이상 정치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만의 일일 수 없다. 주거의 형태가 싱글이라고 해서 삶 또한 싱글 라이프인 것은 아니다. 여기, 세상일에 더 많이 간섭하기로 마음먹은 대한민국의 40대 싱글 남성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주문을 외워보자 

 

그가 주문을 외운다고 했을 때 불현듯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이승환의 ‘덩크슛’. 노래가 발표된 때가 1993년이니 그가 24살, 내가 21살 때의 일이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도 함께 늙어 이제 우리들 모두 40대에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두 남자가 비슷한 점이 많구나. 40대, 싱글, 남성, 막강 동안 그리고 사는 곳은 대한민국. 그러나 정작 그 둘의 비슷한 점은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황당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주문을 외운다는 점이다.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도 갖고 싶었지만 너무나 원했던 것은 그 누구도 모를 거야’라는 내용의 가사. 유난히 키가 작은 그 가수의 꿈은 덩크슛이고 지금은 가진 것이 많지 않다는 이번 인터뷰 주인공의 꿈은 100억 모으기다. 그리고 그 꿈들은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를 갖고 싶은 꿈보다 더 반짝거린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외운다는 9가지 주문에 한 가지를 추가시켜 달라 부탁했다. 

‘참여연대 회원이 10만 명이 되게 해주세요!’ 

오예~ 야발라기 히기야모 하이마모 하이루나!

그가 주문을 외운다. ‘나는 스물일곱 살이다.’ 그리고 그의 꿈도 스물일곱 살이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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