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6-06   1346

[통인] ‘을’에 대한 예의

‘을’에 대한 예의

김웅배 남양유업 욕설 파문 피해자

 

황지희 현대도시여성 

일러스트 황진주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김웅배 씨의 요청으로 사진을 싣지 않습니다

 

 

그가 동영상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남양유업 피해자 인터뷰 동영상을 볼 때만 해도, 남양유업 대리점을 11년간 운영해온 그 자신도 그런 결심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그는 동영상을 보고,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의 존재를 알고, 모임에 나갔다. 모임 장소는 피해자들의 집이었다. 밥값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의 시간 내내 모든 순간들이 답답하기만 했다.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할수록 가슴만 더 아플 뿐,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짜증이 치밀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려고 거실 밖 베란다로 나갔다. 문을 열었을 때, 마흔 넘은 두 남자가 컴컴한 어둠 속에서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그는 당시를 이야기하며 결국 소리 내어 울었다. 바로 남양유업 욕설 파문의 피해자 김웅배 씨다.

두 남자의 눈물을 목격한 김웅배 씨는 남양유업 본사 직원의 욕설과 이른바 ‘밀어내기(제품 강매)’ 증거가 담긴 음성 파일을 공개하기로 마음먹게 됐다. 이 음성 파일은 남양유업 사태를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파문이 큰 만큼, 김웅배 씨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를 지난 5월 17일 참여연대에서 만났다. 김웅배 씨는 음성 파일 속에 등장하는 남양유업 직원에게 고소를 당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오는 길이었다.

 

 

성실하면 되는 줄 알았다


시작은 좋았다. 2000년 6월 남양유업 대리점을 시작한 김웅배 씨는 새로운 삶을 앞두고 꿈에 부풀었다. 목돈이 들기는 했지만, 성실하게 일하면 아들 둘의 대학 등록금까지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양유업이라는 대기업을 믿었다. 평생 모은 재산을 대리점 개설에 투자했다.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동대문에서부터 시작해 만화방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기에 유통 분야라면 노하우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일한 만큼 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자신이 주문하지도 않은 제품이 계속 대리점에 도착했고, 그 수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열심히 일하면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팔지 못하더라도 본사에 입금은 해야 했다.

 

유제품의 특성은 김웅배 씨를 더 힘들게 했다. 설령 ‘밀어내기’로 대리점에 제품이 쌓였더라도, 일반적인 제품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처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분명한 유제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주변에 선물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자식같은 제품들을 창고에서 그대로 버려야 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부당한 상황도 억울한데 본사 직원들은 매번 욕설과 협박으로 그를 괴롭혔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치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김웅배 씨만 겪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음성 파일의 내용은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해 온 많은 이들의 ‘밀어내기’에 대한 피해 증언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음성 파일의 내용은 본사 직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양유업이라는 기업의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단면인 것이다. 김 씨는 녹음 파일이 만들어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양유업을 고발하기 위해 일부러 녹음한 것은 아니다. (욕설과 ‘밀어내기’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통화를 하다가 볼륨을 높이기 위해 휴대전화 버튼을 이것저것 누르다가 우연히 녹음됐다. 그 파일을 보관하고 있다가,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공개하게 된 것이다.”

 

 

대형마트의 또 다른 피해자


남양유업 사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읽을 수 있다. 11년 동안 대리점을 운영해온 김웅배 씨의 증언은 소상공인들이 설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동네 슈퍼마켓이 대리점의 가장 큰 고객이었어요. 그런데 소량이라도 꾸준히 납품 할 수 있는 동네 상점은 사라지고, 대형마트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초기에는 대형마트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지만, 점차 대형마트에는 본사가 직접 제품을 납품하는 것으로 시스템이 고착되더라고요. 납품하는 제품 자체도 달라요. 유제품은 유통기한이 중요한데, 본사에서 마트에는 유통기한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납품하고, 대리점에는 마트에 팔 수 없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줘요.”

 

설령 대리점이 대형마트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들이 쓴 호소문에 따르면,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납품할 기회를 잡으면, 그만큼의 투자 비용이 필요 하다. 제품 이동을 위한 냉동차도 구입해야 하고, 규모가 커지는 만큼 업무를 소화할 수 있는 직원도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동네에서 장사가 불가능하니, 대출을 받아서라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또한 대형마트에 가면 남양유업 제품만 파는 판매 사원이 따로 있는데, 판매 사원의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리점이 부담해야 한다. 판촉 제품에 흔히 덤으로 주는 제품까지 대리점에 부담을 전가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결국 대리점은 남양유업과 대형마트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고, 수익은커녕 손실액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을과 을의 싸움


최근 모 방송에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폭언을 한)그 친구(본사 직원)도 내몰린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기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김웅배 씨 역시 음성 파일 속에 등장하는 본사 직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까지 당했지만, 본사 직원의 상황도 한편으로는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본사에서 각 대리점의 순위를 매기고 무리한 목표를 세워 담당 직원들이 이를 달성하도록 강요해요. 그러니 본사 직원들이 대리점을 괴롭히게 되고요. 영업사원이 본사로부터 영업 실적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받고, 그 고통을 대리점에 주는 거죠.”

 

결국 자본이 노동자를 괴물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예상컨대, 김웅배 씨를 괴롭힌 본사 직원도 그만큼의 고통을 회사에서 받았을 것이다. 남양유업 파문이 사과로 마무리 되거나, 단순하게 ‘밀어내기’를 없애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김웅배 씨의 생각이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대리점에 대한 고통 전가는 더 교묘하고 치밀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지금이 좋다


김웅배 씨는 요즘 바쁘다. 최근 같은 상황에서 대리점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리점을 계속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그는 정식 대리점은 포기하고, 대신 그 공간에서 새벽부터 오전까지는 지인들에게 남양유업 제품을 알음알음 판매 하고 있다. 오후에는 모 병원에서 주차 관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번다.

 

“대리점 사람들을 만나면 그나마 요즘은 살만하다고 해요. 뉴스에 자꾸 나오는 바람에 전 같은 ‘밀어내기’는 (일시적일지 모르나) 줄었으니까. 저도 그래요. 차라리 지금이 좋아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빠져나왔으니까요. 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이제 저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음성 파일 공개,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김웅배 씨를 만나며, 두 가지 면에서 크게 놀랐다. 먼저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남양유업 제품은 먹어보면 안다. 제일 맛있다. 최고의 브랜드다”라고 말하며,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자긍심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어쩌면 남양유업은 가장 좋은 파트너를 잃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그동안 그가 원한 것은 남양유업의 진심어린 사과라는 점이다. 배상이 아니었다.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남양유업과 그 본사 직원이 제게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사과만 한다면 괜찮아요. 남양유업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언론 플레이로만 느껴져요. 저와 같은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어요.” 

 

남양유업 피해자들이 쓴 호소문에서 그는 대리점을 운영하는 동안 몇 번의 자살 충동과 몇 번의 살인 충동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큰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돈 문제 보다, 인간적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사회가 지금 해야 할 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갑’과 ‘을’이라는 새로운 신분이 탄생했다. ‘갑’이 주는 모멸감을 참고 견디는 것은 ‘을’이 감수해야 하는 역할로 인식되었다. 남양유업 사태도, 최근 문제가 됐던 모 대기업 상무의 항공사 승무원 폭행 사건도, ‘갑’과 ‘을’의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갑을 사회’에서 발생된 문제다. 최근 유행하는 ‘갑의 횡포’나 ‘을의 반란’이라는 표현은 ‘갑을 사회’에서는 애초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갑을 사회에서 ‘갑’은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권력을 행사할 뿐이고, ‘을’은 노예적으로 복종하는, 반란할 수 없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을’에 대한 예의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무모하고 순진한 처사로 여겨질 것이다. 

 

사실 남양유업 대리점들의 피해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몇 해 전부터 꾸준히 문제가 되어 왔다. 남양유업 대리점피해자협의회가 남양유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고 <비열한 남양> 다큐를 웹에 공개한 시기만 해도 올해 1월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5월 3일에 유포된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욕설이 담긴 음성 파일이 여론을 자극하면서야 크게 알려졌다. 하지만 그 여론을 조성한 대중은 욕설보다 끔찍한 말이 ‘밀어내기’고, ‘밀어내기’가 ‘갑’의 대표적인 횡포라는 사실에는 무감각하다.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사회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땅의 수많은 김웅배 씨가 받은 상처다. 이 사태를 계기로 남양유업을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상식적인 유통 질서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의 피해자들은 호소할 곳이 없다. 그들은 밥벌이를 위해, 혹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어떤 좋은 제도가 생긴다고 해도, 이미 받은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남양유업 대리점의 수많은 피해자들이 빚더미에 앉았고, 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었고, 심신의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피해자다.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황지희 전 참여사회 기자. 현재 모 출판사 마케터로 근무 중. 나라 걱정을 겸업하고 있으며, 독자를 위해 모든 영화를 포기하고 소처럼 일할 각오가 되어있는 현대 도시 여성.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