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6월 2013-06-09   1040

[특집] 자급하는 사람들 – 손과 몸으로 만들어 문화와 이야기를 담아

손과 몸으로 만들어

문화와 이야기를 담아

 

글 이진우 스튜디오 피보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가구, 희로애락을 함께

 

캐나다 감독 프레드릭 백의 <크랙>이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있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흔들의자이다. 거목巨木이 톱질, 끌질, 대패질 등 목수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쳐 목수의 아내를 위한 흔들의자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때로는 지친 아내의 안락한 휴식 공간이 되고, 때로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 된다. 단순한 가구가 아닌 가족들의 삶 가까운 곳에서 그들과 살을 맞대며 희로애락을 지켜보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크랙>에서 말하듯 가구는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추억이 스며들어 마치 오래된 앨범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꺼내어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느림의 미학 vs.  빠름의 편리

 

내가 만드는 가구는 못과 같은 철물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나무와 나무가 장부와 촉이 되어 서로를 잡고 있는 짜맞춤 구조로 만들어 진다. 접한 부분을 단순히 철물이나 본드로 이어 붙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습도에 따른 나무의 움직임과 쓰임에 따른 견고성을 고려한다. 이런 제작 방식 때문에 설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제작과 마감까지 마치면 한 달이 넘게 소요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수제 짜맞춤 가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견고함을 지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름다움은 더욱 짙어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긴 시간의 제작 공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래 기다려 비싼 가격을 주고 짜맞춤 가구를 사용하기에는 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기성 제품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가구의 수명은 3년을 넘기기 힘들다. 수요가 많다 보니 제작 공정이 간소화되고, 제작 기간만큼 가구의 수명도 짧게 단축된다.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고장이 나거나 혹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가구들을 보면 가구에 대한 인식이 인테리어 소모품으로 퇴색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해서 안타깝다.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문화를 담는 가구

 

가구가 소모품 정도로 인식되어가는 이유가 단순히 공장형 가구의 보편화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손으로 행해지는 노동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

요즘 사회는 편한 일, 행동하는 것보다 지시하는 일, 혹은 금전적으로 안정을 주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노동’은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가 되었고 아이들은 몸으로 하는 고된 일을 피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빼앗고 물건의 가치도 떨어뜨린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만을 탓할 수는 없다. 목공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늙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목공을 하고 싶어 하는 20~30대들은 대개 자신이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면 목공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만큼 목공이 갖는 이미지 자체가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닌 문화와 이야기를 담는 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목표를 갖고 제작한 가구가 DJ테이블이다. 턴테이블과 LP를 수납할 수 있는 이 가구는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서는, 음악을 들려주는 악기와 같은 문화용품으로 진화하길 바라며 제작했다. 그리고 모든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 중이다. 현재 DJ테이블은 RM360이라는 LP숍에 전시되어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목공이나 짜맞춤 가구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목공 작업에 대해 궁금해 하고 손으로 하는 노동에 대한 또 다른 긍정적인 인식을 갖길 바랐다.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목공과 가구가 줄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하나씩 쌓여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사회 2013년 6월호 (통권 199호)

 

 

손 노동을 존중합니다

 

가구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노동을 한다는 것은 나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을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상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써내려가던 편지들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언제가 뒤돌아 떠올렸을 때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급’의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내가 만드는 그 그릇에는 지금까지는 담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겼으면 한다. 그리고 어떤 그릇보다 단단하여 그 추억들은 더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진우 애니메이션, 영상, 피규어, 만화, 가구 등 내가 좋아 하는 것은 모두 직접 만드는 자급자족의 루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