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7월 2013-07-07   2103

[통인] 공감과 연대의 유전자를 찾아서 –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공감과 연대의 유전자를 찾아서
신자유주의의 해질녘, 여든 살 청년의 해찰*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이태호 /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3년 7월호 -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인터뷰

 

김중배 80년대 군부독재에 비판적이었던 시민이나 학생들 중에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는 1991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스스로 사임하면서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보다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김중배 선언을 남기기도 했다.

 

김중배 선생은 1994년 9월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로 취임하면서 사회운동에도 앞장서게 되었다. ‘뺄셈 아닌 덧셈의 운동’을 늘 강조하셨던 선생은 참여연대가 참여하고 연대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습기 있는 만남’을 강조했던 김중배 대표와의 술자리는 항상, 자정을 한참 지난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서 당신이 선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끝났고, 종종 갈현동 자택으로 이어졌다. 술자리에서의 토론은 격의 없었다. 하지만 언론인으로서 운동가로서 자신과 후배들에게 매우 엄격한 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두주불사斗酒不辭, 늦은 술자리를 마친 뒤에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2월 문화방송 사장으로 전격 취임한 김중배 선생은 문화방송 개혁과 방송 독립에 열중하는 한편, ‘재미있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다가 2003년 2월 임기 2년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2004년 이후 언론광장 대표를 맡고 있다. 

 

 

『참여사회』 지령 200호를 맞아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이자 『참여사회』 초대 발행인 김중배 선생을 만났다. 인터뷰에서 김중배 선생은 더 나은 세상을 가능케 할 낙관의 단서를 찾으려는 당신의 치열한 탐색을 ‘여든 살 노인의 해찰’로 묘사했다. 선생은 인간의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조장해온 자기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문명이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고, 인간 본성과 역사 속에 내재된 공감과 공생, 연대와 협력의 유전자를 찾아 인간다움에 대한 기준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경제체제와 민주적 질서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민주주의는 종착점이 없는 장정이므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차곡차곡 확장해 나가되, 후퇴와 왜곡에 대해서는 지혜롭고 집요하게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원동력이 시민들의 왕성한 민주적 자기표현에서 발원한다고 지적하고 이를 촉진하는 온라인 미디어 환경에 주목하여 다양하고 발랄한 시민참여형 운동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요즘도 술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세요? 

요즘은 힘이 딸려서…….

 

참여연대가 내년이면 벌써 창립 20주년이 되는데요, 어떤 계기로 초대 공동대표로 함께하게 되셨나요?  

94년 참여연대를 창립하기 몇 년 전부터 조희연 교수를 비롯한 여러분들과 논의를 해왔었죠.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민주주의의 진전이 대단히 더디다는 생각, 그리고 잘못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한겨레신문> 사장을 그만두고 나니까 조희연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얘기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해서 처음으로 만났어요. 그땐 내가 한국사회연구소 공동이사장 했잖습니까? 거기에 참여했던 학자 분들이 나를 대표로 추천했고, 박원순 쪽의 법조계에서는 홍성우 변호사를 추천했고, 기독교 쪽에서는 오재식 선생님을 추천해서 세 명이 공동대표를 맡게 됐죠. 

 

참여사회 2013년 7월호 -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인터뷰 참여사회 2013년 7월호 -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인터뷰

왼쪽 : 1997년 당시의 참여연대 공동대표단. 왼쪽부터 박상증, 김중배, 김창국.
오른쪽 : 2000년 총선시민연대 공동대표단

 

 

공감의 신경, 협력의 유전자

 

참여연대를 시작할 때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권력감시운동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던가 하면, 선생님은 상대적으로 민주화운동의 계승, 연장, 연대 이런 측면을 강조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연대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권력감시운동과 새로운 민주시민사회를 열어가는 운동이 서로 배타적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감시를 위한 감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감시냐’ 라는 것을 좀 더 깊이 천착하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데서 새로운 시민사회를 만들려는 비전을 찾아내고 구체화하면 좋겠다는 것이죠. 

 

연대라는 게 서로 협력하자는 얘기 아닙니까? 신자유주의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수십 년을 겪으면서, 요즘 진화심리학이나 인간 두뇌 연구에서는 인간의 ‘공감’, ‘협력’ 이런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 그것이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해 왔다면, 인간에겐 다른 측면도 있다는 거죠. 마틴 노왁이 쓴 『초협력자Super Cooperator』 같은 책을 보면 많은 동물들한테 협력의 기능이 있고, 특히 가장 협력적인 유전성을 가진 것이 인류라는 겁니다. 흡혈귀 박쥐를 예로 들어 보지요. 이놈은 아주 흉측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세계를 보니까 피를 못 빨아서 죽어가는 박쥐들을 피를 많이 빨아먹는 박쥐가 피를 토해서 나눠준다는 거예요.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들도 공생하잖아요? 이런 초협력성을 지닌 인간 본성을 더 확대·심화시키고 가능한 대로 하나의 사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연대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지금 기억해보면 시민사회운동이 따로따로 하는 거 말고 무언가 같이 해보자는 것에 주로 좌장 역할을 맡곤 하셨던 것 같은데요. 

 

민중, 시민, 노동단체들의 연대 활동에 주력했죠. 그러다  “저 사람은 참여는 안 하고 연대만 한다” 는 소리도 들었어요. (웃음) 연대야말로 충실한 참여라고 생각해요. 참여연대가 당시 아주 적극 연대한 것이 12·12기소운동이었습니다. 소위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적 심사 대상이 안 된다는 이유로 검찰이 불기소했을 때, 민변, 민주노총, 경실련, 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함께 연대해서 결과적으로 5·18특별법 제정과 함께 12·12가 기소되었고, 지금 추징금 물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 그 확정 판결로 이어졌어요.

 

올해 광주 행사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는가 하면, 5·18이 북한 특수부대가 일으킨 것이라는 식의 얘기가 보수 언론에 공공연히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년간 민주주의를 위해 열심히 걸어왔는데 도리어 후퇴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치학적으로는 그런 용어가 용인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단히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분한테 한 번 말한 적이 있어요. ‘민주화 이후’라고 그러면 당신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오해될 소지가 많다고요. 민주화는 다 완성되었고 이제 나머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수 만나 봤어요. 

민주주의가 된 세상에서 어떻게 5·18항쟁에서 세상을 떠난 어린 아들의 시신을 무슨 ‘홍어 택배’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어떤 자리에서도 항상 얘기합니다. 민주주의에는 종착역이 없다, 영원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를 충실화하고 내실화하는 장정을 해야 한다고. 저도 저 뒤에서 종군을 하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의 노고가 대단히 기대되고, 정말로 시민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강력히 촉망합니다. 

 

 

민주화 이후란 없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촉망한다고까지 하시니까요. 저희가 지난 2004년에 참여연대 10년 활동을 평가하면서 낙선운동, 반부패운동, 소액주주운동, 복지운동을 열심히 해왔는데 사회구조는 후퇴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평가서를 냈습니다. 참여연대 초기에 선생님이 질타하실 때 “참여연대가 손톱 깎는 식의 운동만 해서 되겠냐”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별걸 다 기억한다(웃음). 아 손톱도 제대로 깎으려면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지금까지 운동한 사람은 뭐가 됩니까? 제가 그런 말을 했다면 아마 말씀드렸다시피 감시를 하되 무엇을 위한 감시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뜻을 모아서 전망을 가지면서 했으면 좋겠다는 충정의 반론이죠. 

 

그런데 그것이 대단히 어려웠던 것이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말하는 구조 때문이죠. 시장근본주의가 적어도 30년 이상 우리 사회를 압도해왔고, 그것이 완전히 노골화한 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 시대였어요. 물론 DJ정권 시대부터 그래왔죠. 많은 사람들이 그것(시장근본주의) 아니면 세상이 망할 것 같은 환각에 빠진 시대 속에서 정말 연대와 협력과 공생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대단히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장근본주의자들이 열창해온 낙수효과, 낙수경제라는 것이 정말 터무니없는 환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잖아요? 스티글리츠 책을 보니까 낙수경제trickle-down economics가 아니라, 분수경제trickle-up economics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밑에서 솟아나는 경제! 민주주의로서의 시장경제! 그게 안 되서 지금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가 지체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얘길 하면 ‘이념의 과잉’이라고 말하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념이 빈곤한 시대인데, 대안적 이념이 안 나오고 있는데…….

 

지금 대단히 중요한 국면 전환의 시기에 있고 이념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의 토대를 이제부터 다져 나가야 할 시기에 있다고 봅니다. 새누리당에서도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죠. 동기나 이유가 뭐든 간에 굉장한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변죽만 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선도해나가는 힘을 우리 시민사회가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의 과잉인가? 빈곤인가? 

 

2011년 <프레시안> 10주년 인터뷰에서 ‘지금이 문명의 전환기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 아마 인터뷰를 9월 중순에 했던 거 같은데, 실제로 월가 점거 시위가 2011년 9월 17일 시작되었어요.  

내가 선견지명이 있다고(웃음). 

 

하여간 전환기는 전환기인데, 어떤 전환기일까요? 

지구온난화,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고 집중 폭우가 오고 국소 폭우가 오고 북극, 남극에 빙하가 녹고…….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맞으면서 시장을 컨트롤할 정치 시스템이 모색되고 있고요. 이런 경제, 이런 자연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잖아요? 

문명의 전환기가 몇 번 있었죠. 예를 들면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과 산업혁명이 그런 거죠. 그것이 다 저물어가고 그것을 전기니 전자니 하는 것들이 대체하는 그런 체제로 변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기 자원이나 동력 자원을 만들어주던 화학연료 종언의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분산 에너지의 발전, 즉 재생에너지나 태양광 에너지 같은 것이 시도되고 있지요. 

 

미디어 얘기를 하자면, 인터넷 웹이 나왔을 때 미국의 젊은이들 대여섯 명이 『웹 강령 95조 선언』이라는 책을 냈어요. 인쇄혁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작성된 루터의 종교개혁 강령이 95개조였던 걸 염두에 둔 거죠. 책 자체는 주로 인터넷 시대의 마케팅 같은 것에 국한된 책이긴 합니다만, 그 제목이 기억에 남아요. 

좌우간  문명의 흐름이 변곡점에 온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시기에 5·18을 뒤집으려고 하고 죽은 이들을 욕보이게 하고 나 같은 사람이 정말로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술만 취하면 부르던 노래도 못 부르게 하고. 그렇게 하니까 이것이 간단치 않은 거예요. 

 

참여사회 2013년 7월호 -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인터뷰

 

 

 

14,692,632표에 대한 예의 

 

오히려 전환기 속에서 기존의 진보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 같고요. 실제로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도 보면 -꼭 선거 결과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부에서 혼란도 있는 것 같고요.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죠, 사실은.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질서 그런 거 중시하잖아요? 그것에라도 충실하면 좋겠는데 이번 대선에서 이 사람들 하는 걸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체득 이런 면에서는 굉장히 빈곤하고 빈약한 사람들이구나 생각돼요.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얻은 득표수가 14,692,632표예요. 내가 이 숫자를 외우는 데 혼났어. 왜냐하면 어디 가서 ‘천 사백만 몇 표’ 이런 식으로 말하면, 나머지 692,632명의 사람들에게 실례야. 신성한 한 표라면서!? 역대 야당 최다 득표잖아요. 김대중, 노무현도 그렇게 못 받았어요. 다수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분들의 표를 소중하게 떠받들고 간직하고 그 위에다 새로 할 생각을 해야지. 그것을 다 저버리고 “누구누구 때문에 졌다” 그러고 앉아 있어요. 그러면 (그 누구누구 때문에) 표 찍은 사람들은 뭐야 이게. 그런 식으로 해놓고 이다음에 이긴다고? 미국 공화당의 대선 패배 평가서 제목이 〈Growth and Opportunity Project〉야. ‘성장과 기회의 프로젝트’다 이거야. 미국 공화당이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 꼴통 정당이지만 나는 그 발상이 맞는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게 민주적인 소양이 소화되지 못한 탓인데, 최장집 교수가 정당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주장하지만, 저는 정당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시민운동을 활성화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정말 우리 시민들이 깨어나서 정치권을 향해서 민주적인 혈류를 수혈하고, 공급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에요.

 

이번 대선을 보면 의제 자체는 눈에 띄게 진보적으로 이동했어요.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보수가 좌클릭 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불리한 환경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어요. 그러다보니 보수가 내성이 강하다, 보수에겐 무언가 강고한 기반 혹은 진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무언가 큰 벽을 만난 느낌도 들어요.

 

일부에선 보수 정당이 ‘좌클릭’했다고 하지만 왕년에 민정당에 있던 남재희 같은 사람이 그건 “좌클릭이 아니라 정클릭이다” 라고 말해요. 헌법에 다 있잖아요. 119조항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엄, 가족에 대한 존엄, 노동에 대한 존엄! 헌법에 세 번의 존엄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노동을 존엄하게 대하겠다거나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자체를 ‘좌클릭’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는 태도죠. 그래서 나는 언제 위헌국가론을 쓸까 해요. 위헌 투성이거든요. 

 

나는 요즘 해찰하고 다니는 사람인데, (대선 기간 동안) 경상도 안 갔어요. 전라도도 안 가고. 딴 데 놀러 다녔죠. 그런데 분위기가 박근혜 일색이에요. 후보 단일화 과정이랄지, 진보 정당들의 행보랄지, 그런 것들이 내가 보기에는 국민들에게 그렇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이 처장 말대로 지방으로 다녀볼수록 지방 토호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의 세력이 상당히 견고해보입니다. 그걸 보면 정말로 ‘하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는 어떻게 정권 교체라는 걸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말씀을 들어보면 이후의 정권 교체 가능성도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정치 쇄신’ 한다고들 그러는데요. 정치 쇄신은 길게 보고 확실하게 다져나가는 발상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어. 의원 보수나 국회 출석 문제나 이런 것은 쇄신의 대상일 수 있지만, ‘의원 면책특권 박탈’ 그거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잖아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데…….

정권 교체, 물론 정권 교체가 거듭되어야지요, 그것이 민주주의의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까 말하는 문명의 전환의 기류를 고려한다면 권력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쪽에 서는 것이 유리한 국면일 수 있잖아요? 그 점에서 민주당은 이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비전까지는 안 가더라도 관점perspective이 있어야지요. 그것이 정부 예산을 가져다가 전부 다 딴 데 써먹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씽크탱크가 무지하게 중요해요. ‘피드백feed-back’만 해서는 안 되고 ‘피드포워드feed-forward?’도 해야지요. 내가 위헌국가론을 한번 쓸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우리가 친親체제고 헌법을 죽이는 것이 반反체제잖아요.

 

 

반체제 선동하는 위헌국가      

 

차별금지법이 종교단체나 우파 단체의 표현의 자유 행사로 인해 결국 좌절되었습니다. 합리적 비판마저 거대 언론이나 종편, 심지어 국가 기구에 의해 종북으로 매도되구요. 말하자면 공론장이 기울어져 있다고도 하겠는데요, ‘일베’ 현상 같은 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다 파시즘이 오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징후가 없지 않아요. 소위 진보 매체 사람들과 얼마 전 술 한 잔 하면서 ‘일베’ 같은 현상을 심각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런 것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래도 이런 것을 민주적인 방법으로 제압할 생각을 해야지, 그들이 해왔던 것처럼 이쪽에서도, 소위 민주 진영에서도 ‘폐쇄하자’, 이렇게 하는 것이 최상인가? 그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인데 교각살우矯角殺牛하지 말아야죠. 그런 것 때문에 난 지혜롭게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일부 수구-그건 보수도 아니죠-세력이 하는 것을 보면, 지금 교회도 그렇지만, 민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 표현의 자유 운동 이런 것을 할 때 그것을 억압하는 독재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에요. 피 흘려서 확보해놓고 나니까 지들이 다 써먹어! 이 악순환을 조목조목 고발해야 해요. 일과성으로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런 걸 일과성으로 하는 게 손톱 깎기 식이지. 

 

SNS는 자유분방하잖아요.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죠. 그런데 시민운동의 경우 그렇게 자유분방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를 들어 언론이 속보냐 심층 보도냐 선택을 요구 받는 것처럼 시민단체가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역할이나 영역이 있을까요? 

 

시민단체가 신문·방송처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결정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민주적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잖아요. SNS를 통해서 긍정적인 효과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우리 시민운동도 온라인 활용을 더 강화해야 해요. 

정직하게 말해서 참여연대가 민주적 운영을 지향하고 있다지만 과연 민주적 운영인가? 뭔가를 결정할 때 좀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회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한다든지 의사 결정을 민주화하는 시도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물론, 절대적인 대안은 아닙니다. 솔직히 나는 요즘 해찰하고 다니느라고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니까. 그런데요, 동숭로 극장에 갔더니 관객을 무대 위에 불러 같이 공연을 해요. 이건 옛날부터 더러 하는 짓이긴 하지. 그런데 끝나니까 딱 봉투를 주는 거예요. 현대의 민중들이 어디까지 해야 소통이라고 생각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잖아요.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왔을 때 실종자들 찾아 연결하는 지방 온라인 사이트가 일대 활약을 한 사례도 있어요. 그런 것들을 활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 다양함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는 우리 시민운동도 발랄해야죠. 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오래 지탱하지. 

 

 

즐거워야 오래 지탱한다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평생의 좌우명 같은 게 있으신가요? 

 

좌우명 같은 건 없어요. 우리 나이로 여든이에요. 굳이 나 자신의 삶을 과장되게 미화한다면, 내 아들이나 손주-손주가 그렇게 이쁘더라고-세대에는 적어도 내가 살던 세상보다는 좀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고 거기에 일조를 하고자 살아온 셈인데……. 거기에 별로 성과가 없는 거 같아. 그럼 내가 이제 할 일이 무엇일까? 그래서 내가 하는 게 해찰이에요. 이 세상에 낙관의 단서들이 없을까? 낙관의 단서들을 찾아보고 좀 편안하게 발을 뻗고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해찰을 하고 다니는 거죠. 

 

해찰이 그렇잖아. 해찰하다보면 해가 져서 저녁 먹을 때도 지나고 엄마한테 혼나고 얻어맞고. 그러고 살아요. 내가 이 나이에 밤새워 읽은 책이 딱 한 권 있어요. 『뇌의 미래』란 책이야. 우리의 뇌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요즘 자꾸 생각하게 돼. 사람들이 과연 어떨 때 ‘인간답다, 인간미가 난다, 인간적이다’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마구잡이로 써먹잖아,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어쩌고. 나도 많이 써먹었어요. 그런데 90년대 부산 운동화 공장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공이 있었어요. 19살 먹은 권미숙이라는 아가씨인데, 거기서는 종이도 없으니까 팔뚝에다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쓰고 죽었어. 난 아직도 그게 잊혀지지가 않아요, 20년 됐는데 부산의 신발 공장 권미숙이. 그런 해찰을 하다가 해질녘에 집에도 못갈 때도 있고……. 그런 게 해찰이잖아. 

 

참여사회 2013년 7월호 - 김중배 참여연대 초대 공동대표 인터뷰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젊은 활동가들한테 한 말씀만 해주세요. 

 

너무나 고생을 하죠. 활동가들의 활동이라는 게 그 과실은 나에게 안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에게 많이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하는 거죠. 오늘 다윈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다윈은 어떤 집단에서 자기가 손실을 감수하는 그런 구성원이 있는 집단 사회가 더 발전하고 생존한다고 말했어요. 우리 사회가 이만큼 지탱되고 발전해온 것이 다 우리 시민운동 활동가들의 피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현실의 삶을 살기 때문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 활동가들의 현재와 그들의 미래까지를 좀 열어갈 수 있는 그런 고민을 했으면 좋겠고, 그 고민의 결과가 조금 미미하더라도 점진적으로라도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나는 다시 또 소망으로서 말하자면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시민 참여의 지평을 다각적으로 넓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으면 해요. 내가 못한 것을 여러분들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진짜 마지막인데요, 창립 20주년을 맞는 참여연대에게도 한 말씀만.

 

또 마지막이야?!(웃음) 이제 참여연대가 스무 살 청춘인데 간판은 새로 안 달더라도, ‘아, 10대보다 더 발랄한 청춘인 거 같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줬으면 좋겠어. 

 

 

해찰 :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  ‘딴 길로 새는 것’을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로도 사용됨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김중배 공동대표 재임 시절 회의 시간에 늦어 크게 혼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술을 잘 먹지 못해 김중배 대표가 주도하는 ‘습기있는 만남’에는 자주 함께 하지 못하는걸 아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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