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7월 2013-07-05   997

[살림]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 시간편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시간편

 

 

도시여자

 

 

참여사회 7월호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네. 아이들을 키워. 도시에서 산골로 유학 온 아이들이야. 마을에는 20명 정도? 우리 집엔 남자아이 둘. 한 명은 중학교 1학년, 또 한 명은 초등학교   5학년이야.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싫어. 시끄럽고, 단순하고. 근데 어쩌다 보니 키우게 됐어. 벌써 4년째. 내가 뭘 얼마나 잘 해주겠어. 아이들을 직접 낳은 엄마도 아니고. 아이들을 키워본 경험도 없고. 게다가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예쁘고 친절한 이모, 고모스타일도 아니야. 특히 싫은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는 거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잠인데, 아침밥을 하기 위해 이 악물고 일어나. 게다가 난 아침밥 안 먹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먹게 됐어. 다 같이 먹어서 더 맛있으라고. 아이들 쑥쑥 크라고. 대신 난 살이 쑥쑥 쪄. 슬픈 일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난 내가 너무 대견해서 칭찬하고 또 칭찬해. 이른바 셀프 칭찬~! 

 

 

요런, 앙증맞은 것들!

 

아이들은 지금이 놀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온몸으로 놀아.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맞춰 실컷 뛰놀아. 나머지 시간은 잠들 때까지 종알종알 수다쟁이로 변신하지.

 

“아줌마, 있잖아요, 어쩌고저쩌고. 저 오늘 기분이 너무 나빴어요. 억울한 일이 있었어요. 들어보세요.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요. 뭐냐면요. 오늘은 학교에서 이걸 배웠는데요, 신기하지 않아요? 옛날에 말이에요. 이랬데요. 정말일까요? 사람들은 왜 그러지 않을까요? 저라면요. 그래서요. 혹시 그거 아세요?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봐요. 아줌마 어렸을 때도 이런 게 있었나요? 제가 나중에 크면 말이에요.” 

 

이야기들이 정말 재밌어. 표현이 기가 막혀. 난 깔깔대고 웃어. 물론 이해가 잘 안되어 “그렇구나.” 하며 고개만 끄덕일 때도 있어. 노래도 작사 작곡해. “안 된대 ♬~ 안 된대 ♬~ 아주머니 머니가 안 된대 ♬~ 안 된대 ♬~ 안 된대 ♬~ 아주머니 머니가 안 된대 ♬~” 완전 중독성 있어. 내가 워낙 지저분하고 개념이 없어서 아이들이 최대한 뛰어노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이 산골에서도 하면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겠어. 나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지. 그런데 아이들은 신기하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니 말이야. 지지고 볶고 싸우고 혼내고. 아이들이 날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들이 점점 기어오르기 시작했어. 

 

“어머, 뉴스에 기사가 났지 뭐야? 남자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수명이 단축된다네. 일리가 있어. 그럼. 그럼.” 

“아줌마, 저희는 반대가 아닐까요?” 

“응? 뭐가?” 

“저희는 아줌마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은데요.” 

“뭣이라?”

 

“새 담임 선생님 좋아? 담임 선생님이 더 예뻐? 아줌마가 더 예뻐?” 

“…….” 

“응? 대답 좀 해봐.” 

“아줌마. 제 마음에서야 당연히 아줌마가 더 예쁘죠. 근데요. 제 눈은 달라요. 더 많은 게 보여요.” 

“뭣이라?”

 

“아줌마.” 

“응?” 

“성형수술 하셨어요?” 

“성형수술? 어디를?” 

“그냥요. 전체적으로요. 못생겨지는 수술을 하셨나하고요.” 

“뭣이라? 차에서 내려. 걸어가.”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예전에는 너무너무 예쁘셨을 거라고요. 그리고 우리 아저씨 만나면서 일부러 다른 남자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아저씨만을 사랑하려고 수술하신 거죠?” 

“뭣이라? 이러나저러나 기분 나빠. 내려.” 

“아……. 이게 아닌데. 어떻게 수습하지?”

 

 

시간의 힘, 사랑의 맛

 

사람들은 서로 만나서 첫눈에 반하기도 해. 난 그런 사랑을 부정하지 않아.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같이 부대낀 시간이 거름이 되어 사랑으로 피어날 때도 있나봐. 한 방에 큰 선물을 주는 것도 좋지만, 좋은 에너지를, 좋은 생각을 긴 시간 동안 함께 나누는 것이 산골에 사는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값진 유산이 아닐까. 물론 아이들의 에너지도 마흔을 달려가는 나에게 젊은 피를 나눠주는 것 같아. 헉, 이 말을 하고 보니 내가 마녀 같네. 

 

며칠 전 이웃집에 놀러 가 소주 한 잔을 걸치는데 3년 된 취나물 장아찌가 나왔어. 혀에 척척 감기는 그 맛이란. 시간의 힘을 믿고 지금의 순간순간을 켜켜이 쌓아 나가는 내공을 내가 가질 수 있을까. 언젠가 나물 장아찌를 담가보겠어. 반갑고 소중한 사람들이 왔을 때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거야. 직접 갓 지은 쌀밥과 함께. 다른 반찬이 없어도 맛날 거라며.  

 

 

도시여자 춘천의 별빛산골교육센터에 산골유학 온 도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낸 지 벌써 4년. 마음만은 성격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전히 도시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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