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7월 2013-07-05   1719

[놀자] 가난뱅이의 여름 풀장 놀이

가난뱅이의

여름 풀장 놀이

 

 

이명석 저술업자

 

 

참여사회 7월호

“야, 오늘 비 온대.” “그래, 그럼 물놀이 가자.” 이상한 대화로 들리시나? 하지만 이건 나와 친구들이 여름이면 늘상 주고받는 말이다. 

 

예전에 나는 다세대 주택의 꼭대기 층에 살던 덕분에 옥상을 혼자 쓸 수 있었다. 봄에는 갖가지 화분을 가져다 놓고 온갖 꽃과 풀을 키우고 놀았는데, 초여름이 되자 뙤약볕과 병충해 때문에 점점 삭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의 친구 부부가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살 때 마당의 풀장에서 놀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거야 땅 넓은 나라 이야기지.” 하다가 문득 예전 여행 때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서 보았던 작은 풀장이 떠올랐다. 별 시설도 없었다. 그냥 시멘트로 네모난 욕조를 만들어두고 물만 채워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마치 타히티의 리조트에라도 온 듯 밤낮으로 물놀이를 하고 놀았다. 그래, 나도 비슷한 걸 만들어보자. 

 

 

우리 집 낭만 수영장

 

먼저 여기저기 수소문해 가장 큰 비닐 풀장을 구했다. 튜브처럼 공기를 채워 넣는 건데, 보통 아이들 놀이용이지만 내가 구한 건 어른 서너 명이 들어가도 충분한 크기였다. 그런데 룰루랄라 옥상에 펼쳐놓고 바람을 넣으려는 순간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원래 폐활량이 적어 풍선 하나도 제대로 못 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어차피 같이 놀 거잖아. 풀장 오픈 전야제를 핑계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다행히 튜브의 네 귀퉁이에 주입구가 있었고, 우리는 입과 수동 펌프를 동원해 바람을 채워 넣었다.

 

다음날 오전, 드디어 개장식을 하고 물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주인의 특권으로 내가 풍덩 뛰어들었는데. 으악! 한겨울에 얼음장을 깨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반나절을 기다렸다. 뙤약볕에 서서히 데워진 물은 오후 서너 시가 되니 미지근한 유아용 탕이 되었다. 우리는 신나게 풀장 놀이를 즐겼다. 누군가는 그 옆에 돗자리를 펴고 일광욕을 하기도 했다.

 

가짜 해수욕장을 진짜보다 즐겁게 만드는 것은 연기력이다. 풀장 속에 던져진 미니 럭비공은 영화 <죠스>의 식인 상어가 되었고, 우리는 빠-밤 빠-밤 사운드 트랙을 넣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흉내를 냈다. 누군가는 몇 년 전 스킨 스쿠버를 한다고 사놓았던 오리발을 꺼내와 첨벙거리며 뛰었다. 그때 누군가 맥주 몇 잔에 취했는지 소리쳤다. “이건 사기야. 물이 싱거워. 이건 바다가 아니야.”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천일염과 마른 미역을 가져왔다. 짭짤한 맛에 푸르딩딩한 해초가 둥둥 떠다니는 옥상 위의 태평양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풀장을 채우기엔 재료가 부족했다. 시장으로 달려가서 대형 소금 포대를 사올까 했지만, 다행히도 친구들이 적당히 하자고 말려주었다.  

 

 

옥상 풀장 사용법

 

긴 해도 어느덧 저물어갔다. 나는 아래층에서 전선을 끌어와 스탠드를 몇 개 꽂아 불을 밝혔다. 모기들이 먼저 달려왔고, 녀석들을 쫓기 위해 연기를 피웠다. 가볍게 쌀국수를 만들어 옥상에서 키우던 고수를 찾아내 뿌려 먹었다. 이제 바텐더 자격증이 있다고 떠들어대던 녀석이 솜씨를 발휘할 때다. 럼주에 민트를 넣어 모히토를 만들어 한 잔씩 돌렸고, 거기에 맞춰 쿠바 밴드의 재즈 음악을 틀었다. 여름도 이쯤이면 참 좋다고 여겨졌다.

 

슬슬 옥상 풀장을 이용하는 노하우도 쌓였다. 햇볕이 너무 쨍쨍한 날엔 아무래도 빛에 다치기 쉽다. 그것보다는 오전에는 해가 쨍해서 물을 데워주고, 점심 먹은 뒤 구름이 수상쩍게 몰려드는 때가 더 편안히 물을 즐길 수 있다. 사방은 어둑한데 풀장 속으로 투둑투둑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다 보면, 마치 구름 속을 헤엄치는 느낌도 든다. 그러다 몸을 돌리면 먼 산 너머엔 해가 쨍하니 내리쬐고 그 사이로 무지개가 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두어 주를 놀던 어느 날이었다. 밤새 폭우가 내렸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풀장의 물이 꽉 차 있었고, 나뭇잎과 새털이 둥둥 떠 있었다. 나는 물을 비우려고 두 손을 풀장 밑에 넣고 번쩍 들었다. 꼼짝도 않았다. 옆에 있는 큰 빗자루를 지렛대처럼 끼운 뒤 쳐들었다. 푸르륵! 하면서 튜브가 터졌다. 그렇게 어느 여름이 지나갔다. 이제 거대 풀장을 들여놓을 옥상은 사라졌다. 대신 비 오는 날 찾아가는 야외 수영장의 즐거움은 잊지 않았다.  

 

 

이명석 저술업자. 만화, 여행, 커피, 지도 등 호기심이 닿는 갖가지 것들을 즐기고 탐구하며, 그 놀이의 과정을 글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