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7월 2013-07-08   1449

[여는글] 승률

승률(勝率)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직업이 변호사여서 그런지 몰라도 대화 중에 종종 승률이 얼마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마디로 소송에서 얼마나 잘 이기느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금 더 나아가 전문적으로 잘하는 분야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승패를 중시하는 게임이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회 탓인지 이런 질문은 가까운 지인들에게서도 온다. 변호사의 승률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료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고 한다.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변호사가 유능한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막상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궁해진다. 

 

사실 그동안 위임받아 해 온 사건들을 승률이라는 관점에서 되새겨 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건의 종류에 따라 이기고 짐이 뚜렷이 드러나는 사건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재판에 회부된 ‘사건’은 그 성격상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분쟁이라는 측면이 있어서, 그 결과를 승패로 재단해 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 드는 것들도 적지 않다. 가령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 간의 소송은 일도양단식의 승패보다는 조정이나 화해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또 이혼 소송의 경우, 이혼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에게는 원·피고 모두 부모로서 소중한 존재임을 생각할 때,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 하에 재판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자제하도록 의뢰인을 유도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치범이나 대학생 또는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변론을 주로 하던 선배 변호사들은 형사 사건의 경우 아무리 무죄 주장을 해도 결론은 거의 유죄 판결을 받곤 하였다. 승률로 말하자면 이들보다 낮은 변호사들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개선된 형사 소송 절차에서 후배 법률가들이 이들 선배들에게 진 빚은 그 크기를 헤아리기 쉽지 않다. 최하의 승률 속에서 그들이 감내한 치열한 법정 공방의 덕으로 형사 소송 운영에서 하나둘 씩 적법 절차의 이상이 구현되어 온 것이다. 20여 년 전에는 수갑을 찬 상태로 법정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서 재판을 받기도 하던 피고인이 이제는 변호인석 바로 옆에 앉아 변호인과 필요한 대화도 하며 재판에 임하고 있다. “돈과 명예는 같이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좋은 법률가일수록 명리에 초연하도록 모범을 보인 것도 그들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변호사인 이상 소송의 승패에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30년 가까운 변호사 생활 속에서 소송의 승패에 따라 일희일비해 온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문득 돌이켜 보면, 이긴 사건들이 과연 어느 정도였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승소한 사건들보다는 낙마한 사건들의 면면이 기억 속에 더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비관주의적 성격 탓일까. 이긴 사건들의 전후 사정은 또렷하지 아니하나 패소한 사건들의 인상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긴 사건들 중에는 좋은 동료 변호사들과 같이 한 행운과 더불어 사회적 비중이 제법 큰 사건들도 더러 있었다. 그 사건들이 마침내 승소로 귀결되었을 때 동료들과 같이 나누었던 기쁨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희열의 순간은 너무나 잠깐이었다. 아쉽게도 관심은 이내 다른 사건들로 옮겨 갔다. 

 

얼마 전에 지인의 소개를 받고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든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 온 일이 있었다. 작고한 부친의 재산을 둘러싼 이복형제들 간의 분쟁 상담이었다. 그는 배다른 형제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더 많은 재산을 가졌으면 했다. 그가 보여 준 관련 서류들을 검토한 후 상속과 증여에 관한 법률 의견을 주었다. 그런데 막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에게 굳이 안 해도 좋을 말을 했다. “돌아가신 부친이라면 자신이 남긴 재산을 배다른 자식들이 어떻게 나누면 좋다고 생각할지, 그 점을 잊지 마세요.” 이건 웬 훈장 같은 말씀이냐 하는 투의 마뜩잖은 눈길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그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검토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그는 과연 다시 찾아올 것인가. 누군가 내기를 건다면, 그는 아마도 다른 변호사 사무실을 노크할 것이라는 쪽에 걸겠다.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참여연대 식구들에게 늘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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