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7월 2013-07-06   3162

[만남] 인생은 추입(追入)이다 – 하준성 회원

인생은 추입(追入)이다 

하준성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 사진 Nina Ahn

“혹시, 합기도 빨간띠?”

아, 네…….

“그럼 지난 호에 인터뷰 기사 쓰신 그 호모아줌마데스 맞으신가요?”

네, 제가 바로 그 호모아줌마데스입니다. 제가 쓴 인터뷰 글 읽어보셨어요?

“당연하죠. 전 『참여사회』가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거든요.”

헉! 열혈 독자! 읽어보니 인터뷰어에 대한 신뢰가 생기던가요?

“네, 완전히 생기던 걸요.”

칭찬은 고래와 더불어 아줌마도 춤추게 한다. 안 그래도 『참여사회』가 200호를 맞이했다는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이번엔 더 공들여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런 칭찬까지 들으니, 설상가상인지 금상첨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상황은 열심히 쓰는 걸로, 무조건 잘 쓰는 걸로…….

미스터리 회원

참여사회 7월호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니, 통닭과 콜라를 가운데 두고 간사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다. 엥? 처장님까지 계시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물으니 인터뷰를 위해 참여연대를 찾은 하준성 회원이 사 온 것이란다. 정작 함께 먹지도 않고 뒤쪽에 혼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 저분이 “정보가 없다”던 바로 그 미스터리한 회원님이구나. 소개 좀 부탁드려요.

“올해 27살이구요. 어휴~ 잠시만요. 떨리네요…….”

사실 나도 인터뷰를 시작하는 시점엔 늘 긴장 상태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어색하지 않게, 편안한 얼굴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대학을 1년 정도 다니다 군 전역 후 자퇴했어요. 법학이 전공이었는데 제 체질에는 영 맞지 않아 그랬는지,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어 다니는 것도 힘들고 과제도 하기 싫고 그래서 그만 두었죠.”

공부가 체질에 안 맞는 건 아니구요? 하고 농담을 건네니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한다는 진지한 답변이 돌아온다. 맞다, 『참여사회』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고 했었지…….

“지금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그러고 있어요.”

종합병원 응급실 간호사 보조 일도 했었다구요?

“그동안 열 가지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그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야간에 일하는 것도 그렇지만, 응급실이라는 게 뜻하지 않게 아파서 오는 곳이라 사람들이 모두 굉장히 예민한 상태가 되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 상대하는 일도 힘들고 때론 사람 죽는 것도 보고 시체도 옮겨야 하고…….”

대학도 그만두고 27살에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걱정하지 않아요? 또래들은 보통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나이인데.

“남들이 볼 땐 이런 제가 이상해 보이겠지만 저도 제 나름의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어요. 사실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친구들을 봐도 자기의 삶에 만족하며 지내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구요.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몇 살까지 얼마를 모으고, 이런 사회적 통념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주말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느냐고 내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직장은 과연 어떤 곳일까?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NGO 같은 곳도 좋구요. 근데 제가 이런 얘기들을 하면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사회가 제시하는 일반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는 저를 낯설게 느끼는 것 같아요.”

대학을 그만 두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고시원에서 공부 중이었을까? 아님 경쟁자들을 제치고 어렵게 얻어낸 사무실 한 켠의 책상을 향하여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있었을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풍경 속에 그의 모습은 없다. 너도나도 다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공산품 같은 삶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매일을 기록하다

참여사회 7월호

늘 사진기를 지니고 다닌다 해서 사진 찍는 게 취미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사진기는 취미라기보다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거예요. 매일 일기를 쓰거든요. 내년이면 만 10년째가 돼요. 내가 경험했던 것들, 나와 관련 있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걸 좋아해요. 이제껏 본 모든 영화의 입장권도 다 가지고 있어요.”

아, 그래서 『참여사회』도 모은 거구나. 그가 이번 인터뷰이로 선정된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평소 그가 즐겨본다는 책들 옆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참여사회』들. 회원으로 가입하고 나서 지금까지 받은 20여 권이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사진으로 그는 『참여사회』 200호 기념 이벤트의 첫 번째 참여자가 되었다. 

“NGO에 관한 자료는 찾기가 어려워요. 도서관에 가도 관련 있는 책은 몇 권뿐이고 제대로 된 정보들을 얻긴 어렵더라구요. 『참여사회』를 모으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이유에는 이런 점도 있죠.”

일기를 10년째 쓴다는 것, 『참여사회』를 애지중지 모으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을 때 그의 가방에서 더 놀라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그동안 읽었던 책의 제목과 저자, 출판사 그리고 읽은 연도까지 기록해 놓은 ‘하준성 독서 목록’.

“많이 읽을 때는 1년에 100권 넘게 읽기도 해요. 비용이 감당이 안 돼서 요즘엔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지만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중고 서적으로라도 구입하죠.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건 장준하 선생님의 일대기를 다룬 『돌베개』예요.”

독서 목록의 놀라움을 능가하는 것이 또 있다. 이름하여 ‘제18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연령별·성별 유권자 수 분석 자료’. 작년 대선 전에 본인이 직접 만들었단다. 참으로 대단하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나 봐요?

“참여연대 회원 가입할 때 후원할 곳으로 의정감시센터를 선택했어요. 세상이 바뀌려면 가장 먼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의 독서 목록은 편식의 흔적이 역력하다.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뉴라이트 비판』, 『성찰하는 진보』, 『후불제 민주주의』, 『부동산 계급사회』……. 그러나 아는 것만큼 실천으로 옮기고 있지는 못하다며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회사의 물건은 살 수 없다며 삼성 계열사에서 나온 제품들은 사지 않고, 같은 이유로 편의점도 CU는 이용하지 않으며 한솔제지에서 만든 종이도 사지 않는다는 그가 삼성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는 내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참으로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NGO 활동가도 꿈꾸고 계신데 만약 자신이 참여연대 활동가라면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요즘 유독 역사 왜곡 문제에 관심이 가요. 제가 10대일 때만 해도, 물론 우리 세대가 역사의식이 투철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요즘 일베 현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수준까진 아니었어요. 이게 다 역사 교육이 무너져서 생긴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사이버 공간에 머물지 않고 조직과 세력을 갖춰서 거리로 나오거나 테러 같은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걱정이에요.”

나와는 생각이 너무나 다른 이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상식 이하의 행태. 그가 2011년에 참여연대에 가입한 계기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는데, 면접 준비 때문에 신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근데 조선일보는 제 생각과 너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즐겨 보게 되었는데 참여연대 기사가 무척 많더군요.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껴서 가입하게 되었죠. 1인시위라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 것,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 공익제보자 지원 활동 등 인상 깊은 활동들이 많았어요.”

참여연대가 인상이 깊긴 깊었나 보다. 하루는 친구와 북악산 등산을 하고 내려오던 길에 통인동이란 표지판을 발견하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해서 휴대폰으로 위치 검색을 했단다. 참여연대가 불과 몇 십 미터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찾아가 간사들과 인사도 하고 옥상 구경도 했었다. 그때가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한 지 1년이 되는 달이었다고……. 그날 함께 왔던 친구도 이후에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그가 흐뭇하게 웃는다.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리나 보다. 근데 어쩌죠? 인터뷰는 거의 끝났는데. 그러자 그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준다.

“이 동영상 한번 보실래요?”

세상을 우회하며

참여사회 7월호

경마장. 한 무리의 말들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 결승점이 불과 4~5백 미터 남은 상황에서 10번 경주마 ‘루나’는 8세라는 고령의 나이 때문인지 여전히 맨 뒤다. 곡선주로에 들어서자 말들이 모두 결승점을 향한 제일 빠른 길, 안쪽으로 파고든다. 바로 그때, 맨 뒤에 쳐져있던 루나가 추입을 시작한다. 추입, 루나는 힘을 아껴 달리다가 마지막에 최대의 질주력으로 추월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이미 다른 말들이 달리고 있는 그 길이 아니었다. 가장 짧은 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과감히 바깥으로 빠져 나와 질주하기 시작하는 루나. 거짓말같이 선두권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무서운 힘으로 땅을 박차던 그는 결국 1등으로 통과했다. 경주마로서 치른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그가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루나가 1등을 하는 마지막 장면이었을까? 아님 모두가 달리고 있는 안쪽 트랙에서 벗어나 먼 거리를 우회하는 그 남다른 선택이었을까?

‘왜 모두가 같은 길을 가야하죠? 결승점과 연결된 길은 그것 말고도 많이 있는데……. 지금 제 모습이 더 짧고 빠른 길을 포기한 저 말처럼 낯설게 보인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이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바로 그 말이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리라 예상하지 못하겠죠. 저도 루나도 스스로가 정한 속도로 달리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질주하는 것  뿐이에요.’ 

어쩌면 인터뷰 내내 그가 내게 하고 싶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난 아직 그가 만들어낼 인생이라는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을 보지 못했다. 단지 그가 추입을 시작했다는 것, 그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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