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7월 2013-07-07   1801

[기획] 베끼거나 뺏기거나

참여사회 좌담 

베끼거나 뺏기거나

 

정리 송윤정, 이한나 / 사진 강성진

 

 

-패널-

권복기   한겨레신문 디지털미디어국장,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회를 겸함)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황지희   출판 마케터, 참여사회 편집위원

 

 

이번 대선 전후로 진보 진영에서 멘붕에 빠진 사람이 많은데요. 대선 결과도 결과지만, 대선 쟁점이 대체로 진보적인 내용이었는데, 유권자들은 보수정권을 선택했다는 데서 온 충격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진보 진영이 우위를 지니고 있었던 부문이나 영역에서도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결과가 달랐다는 거죠.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주로 진보 진영이 얘기를 해왔는데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빨간색을 쓰고 나타나 비슷한 주장을 외쳤어요. 진보 진영에서는 가짜라고 했지만 유권자들은 여당을 다시 선택했죠. 박근혜 후보가 여성 후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여성성을 전혀 지니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갔고요. 

 

온라인에서도 <나꼼수>나 이런 것들로 우위를 선점한 줄 알았는데 까놓고 보니까 50대들이 카톡을 많이 했다고 하고, 일베가 생겨났고. 정신차리고 돌아보니 진보 진영 혹은 민주화운동 진영은 고리타분하고 매력 없는 기득권 집단처럼 비쳐지는 것도 같고. 그래서 『참여사회』가 이런 현상에 대해 맥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 자리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좌담은 6월 19일, 카페통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참여사회 7월호

『참여사회』 지령 200호 기념 좌담 ‘베끼거나 뺏기거나’가 6월 19일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에서 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권복기, 김금옥, 한윤형, 황지희.

 

 

 

권복기  경제민주화가 지난 대선의 화두였습니다. 경제민주화는 헌법 119조에 명시된 것이지만 다분히 진보 진영이 주장해온 의제였는데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새누리당에서 선도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정작 지금 집권한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뚜렷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않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경제민주화 화두를 선점해서 집권을 해놓고 ‘이 경제민주화가 그 경제민주화가 아니다’라는 식이잖아요?  

 

한윤형  경제민주화 의제를 보수에서 가져갔다고 하셨는데, 저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이전에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민주당도 제대로 쓴 적이 없었죠. 그러데 새누리당에서 용어를 가져가버리니까 ‘재벌 개혁도 안하면서 무슨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느냐’면서 그걸 짝퉁이라고 공격하기에 급급했어요. 진보 진영이 무리하게 선악 구도로 가져가니까 중도파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쟤들은 왜 저렇게 우월감에 쩌들어 있나’ 라고 지겨워하지 않았나 싶어요.

 

 

진보 진영의 ‘경제민주화’, 너무 어려웠다. 

 

권복기  진보 진영에서는 ‘재벌 구조 개혁’, ‘소액주주운동’ 같은 것을 경제민주화라고 했는데, 너무 제도적 문제로 접근하는 바람에 대중들이 갖는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 문제에서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지점과 이쪽에서 내세우는 지점이 조금 달랐던 거 같아요.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제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여사회 7월호

권복기

 

한윤형  이번 갑을 관계, 편의점주 자살 문제도 있고 ‘을’이라는 단어가 지금은 약간 유행어처럼 쓰이지만 어쨌든 이 현상이 조금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진보 진영에서 사회가 변하는 상황에서 거기에 맞춰서 실제로 구체적인 피해자들이 어디 있는지,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고 소홀했던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김금옥  대중들에게 경제민주화는 구조의 부당함이 아니라 우리를 좀 더 잘 살게 해주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잘 이미지화 했어요. 일례로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운동 할 때, 시장에서 이거 얼마냐고 물어보고 지나가면 그 물건들을 보좌관들이 다 사서, 그게 차에 잔뜩 실려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감자 값도 모른다’며 희화화해서 흠집 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정책이야 어쨌건 간에, 자기 손 한번 잡아준 사람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황지희  진보 진영에서는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리면, 혹은 이런 말을 쓰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이다, 이런 데 갇혀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쪽 사람들은 ‘창조 경제’처럼 허황돼도 혹할 만한 것들을 잘 만들어서 과감하게 쓰거든요. 하지만 진보 쪽 사람들은 내용이 갖춰지지 않은 것은 창피해서 못 쓰죠. 

권복기  무상급식이 나라 들어먹는다던 보수 세력이 정작 대선 때는 무상 보육 정책까지 내놓았어요. 의료 공약에서도 이쪽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비판했지만,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치료비에 대한 공포심에 호소했지요. 보수 쪽은 여기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단어를 선택하고 방향을 잡아서 정책을 내놓는 것 같아요. 

 

김금옥  우리는 우리끼리 아는 언어로 정리하기 좋아하고, 논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못하는 문화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건 참 좋은 건데 사람들은 왜 이걸 모를까’ 할 게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야 하는데, 그걸 잘 못 했던 것 같아요.

 

 

민주 정부에서 양산한 비정규직, 보수 정부에서 정규직화 했다?

 

권복기  노동 얘기를 좀 해보면요. 우리 그동안 비정규직 없애자고 많이 얘기했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이마트 5만 명, 한화그룹 3만 명이 완전히 정규직 전환이 됐어요. 이건 어떻게 봐야 하는 거예요? 

 

한윤형  그건 검찰이 수사를 세게 하니까 기업들이 엄청 눈치를 보고 있다고 들었어요.

 

황지희  그럼 진보도 나중에 집권하면 수사를 세게 해야 하는 건가요. (웃음) 정부가 권력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사실 민주정부에서조차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 의지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여요. 민주당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지 않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사회적 합의도 없고 권력 의지도 없었던 거죠. 

 

한윤형  하려고 했는데 못한 게 아니라, 아예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권복기  오늘 이야기해보자는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과거 민주 정부 시절에 진보 세력들이 요구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들에 대해 비로소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요구하게 되었는데, 왜 집권은 보수당이 하느냐? 저쪽이 권력 자원이 많아서기도 하고 야당 측이 실제로 의지가 없어서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쨌든 누가 하든 되기만 하면 좋은 거지, 박근혜가 한다고 해서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요. 

 

김금옥  뺏겼다고 아쉬워할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외쳤더니 보수들도 같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나아가면 좋겠어요. 형식만 베끼고, 정신은 제대로 못 베끼고 탈이 나기 때문이죠. 

 

한윤형  저쪽을 계속 짝퉁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사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조금 안일한 거 같아요. 

 

황지희  우리가 명품이 맞긴 한가요? (웃음) 

 

 

여성 대통령의 대한민국?

 

권복기  여자가 대통령까지 되는 세상인데 남녀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양성평등 지수나 여성성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단지 몇몇의 상징적인 현상들을 가지고 여성문제가 단박에 해결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 같아요. 

 

김금옥  사실 박근혜 후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된 건 아니라고 봐요. 그렇다 하더라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만큼 사회적 인식이 성숙해진 데는 여성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성과를 박근혜 후보가 가져간 데 대해서는 분통이 터지고 그래요. 여성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예요. 그동안 여성운동이 열심히 해서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 받고, 호주제도 폐지되고, 여성가족부가 생기고 이런 성과를 이루었지만 최근 들어 여성 혐오가 더 심각해진 것도 사실이예요. 

 

참여사회 7월호

김금옥

 

한윤형  이주노동자나 여성에 대한 혐오는 온라인상에서 흔하게 보여요. 저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지하철에서 자기가 보기에 꼴사나운 짓을 하고 있는 여성이 있으면 바로 찍어서 온라인에 올리고, 마녀사냥이나 신상 털기를 하고 이런 실제적인 활동을 오프라인에서도 이미 하고 있는 셈인 거죠.

 

김금옥  그리고 사실 비정규직의 대다수는 여성이거든요. 아직까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시민사회만 봐도 활동가들은 여성이 더 많은데, 주요 결정 단위는 남성 활동가들이 대다수예요. 

 

황지희  굉장히 추상적인 얘기일 수 있는데, 치안 담론 있잖습니까? 안전 담론이라고도 말하는데, 이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사실 안보 담론보다는 그래도 치안 담론이 나은 게 아니냐 하는 얘기도 있어요. 복지를 사회안전망이라고 하니깐 안전 담론은 복지 담론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안전이라는 단어를 박근혜 정부가 가져갔어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꿀 때, 진보 진영 일부에서는 불필요하게 명패를 바꾸는 데도 수십억 원이 들어간다고 비난했지만 안전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빼앗긴 거죠. 

 

권복기  얼마 전에 (박근혜 정부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범죄 처벌법이 만들어졌어요. 성폭력 범죄자를 술 먹고 한 일이니까 봐준다, 이런 걸 이번에 아예 없앴거든요.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하는 걸까요? 민주 정부 10년 동안에는 그걸 바꾸려고 안 한 걸까요, 못 한 걸까요. 

 

김금옥  당시에는 아직 사회 인식 수준이 낮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처벌 위주의 처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예요. 사회적 인식 수준이 낮은 조건에서 여성운동은 불가피하게 사회적으로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면 그걸 계기로 입법 운동을 해왔어요. 이번 대선에서 안보 담론이 힘을 못쓰니까 어린이 성폭력 등의 사회적 범죄, 절망 범죄들을 많이 보도했잖아요.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같은 강력한 처벌을 얘기했죠. 그게 이슈가 되니까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중적으로 어필하려고 한 것이죠. 치안 담론을 만들어서 국가에 의한 통제를 정당화하는 조류도 있는 거 같고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종북좌파라니 억울하다

 

권복기  경제민주화, 복지 같은 이슈가 진보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루면서 보수 진영에서도 요구하게 되고, 시민운동의 방식을 따라 하기도 하는데요. 저쪽에서 베꼈거나 우리가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 억울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빨갱이’라는 거예요. 지금은 양쪽에서 모두 요구하는 의제들을 선구적으로 주장했던 사람들이 빨갱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거죠. 이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열심히 했는데 왜 자꾸 변방으로 밀려나가는 걸까요. 

 

김금옥  맞아요. 우리가 남북문제를 얘기하면 종북 빨갱이라고 하지만, 박근혜가 말하면 문제 자체를 보잖아요. ‘종북’ 프레임이 모든 논리를 한 방에 눌러버리는 거죠. 최근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 보수 진영과 보수적인 기독교단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김정일의 사진을 들고 북한 만세를 부르는 걸 허용하자는 것이냐” 이런 기상천외한 반대 논리를 내세워요.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무조건 ‘종북’을 붙이는 거예요. 매사에 ‘종북’을 갖다 붙이니까 우리 스스로 좀 검열하고 움츠러드는 게 있는 거 같아요. 

 

한윤형  그런 억울함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게 ‘기울어진 운동장’ 논의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볼 수도 있어요. 가령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가 아니었다면 통과가 안 됐을 거예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대단했잖아요. 만약 한미FTA를 보수 정권이 한다고 했으면 반발이 엄청났겠죠. 그런데 민주 정부가 한다고 하니까 내부에서도 혼선과 분열이 있다가 자기정당화 논리들이 생기면서 결국 타결이 된 거거든요. 

 

황지희  박근혜 정부가 복지, 재벌 개혁, 남북관계 같은 의제들을 다룰 때 노무현 정부가 FTA를 했듯이 자기 지지 기반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추진할 수 있을까요? 아마 잘 못할 거 같아요. 노무현 정부가 FTA에 앞장섰던 걸 칭찬하려는 건 아니예요. 그건 정말 최악이었어요. 근시안적이고. 

 

권복기  근데 우리 쪽에서의 진영 논리나 자기중심적인 논리는 없었을까요? 

 

한윤형  찾으면 많지요. 가령 김대중은 ‘도요다 다이쥬’라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다카키 마사오’라고 비아냥거리는 거?   

 

 

청년, 공감 없이 셈만 해서는 곤란하다.

 

권복기  새누리당 이준석과 손수조는 온 국민이 다 알아요. ‘이야, 새누리당은 20대 데려와서 하는구나’ 싶죠. 그런데 사실 20대 국회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정당은 민주당이거든요. 하지만 정작 민주당 20대 국회의원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통합진보당은 김재연 하나만 기억이 나요. 그러고 나니까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윤형  설득을 하지 않고 산수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대선 지고 나서 주변 민주당 지지자들이 다음 선거엔 이길 거라고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5년 동안 노인이 몇 명 죽는지, 이런 것으로 계산을 하더라고요. 청년들은 막연히 자신들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난 대선 때 투표율 70% 넘으면 무조건 이길 거라고 했었는데, 사실 그건 2005년에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40대들, 지금 50대인 사람들의 표를 얻을 거라고 계산한 거잖아요. 언제나 진보 진영은 생물학적으로 연령이 높은 사람이 사망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미래에는 보수를 이길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그 시기가 계속 연기되니까 ‘일베’ 같은 현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신경질을 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참여사회 7월호

한윤형

 

황지희  대학 때부터 취직을 위한 학점 싸움, 스펙 쌓기 등 경쟁에 지친 청년들의 마음을 만져준 것은 다름이 아닌 법륜 스님과 안철수, 박경철, 김제동의 소위 토크 콘서트였어요. 시민운동이나 야당이 아니었죠. 그럼 대체 그동안 우리는 뭘 했나 싶기도 해요. 

 

한윤형  제 또래나 후배들은 대학생 때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가 직장에 들어가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아요. 대학에 다닐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다가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자기가 을인 거예요. 그러면서 사회 모순에 눈을 떠서 슬금슬금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꽤 생기더라고요. 예전과는 패턴이 다르지만, 그때 방식으로 요즘 대학생들은 아무것도 안 한다면서 보수적으로 가고 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김금옥  여성단체에도 학교 다닐 때는 여성차별을 못 느끼다가 졸업하고 직장을 가보니 그 안에서 성희롱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삶의 영역 안에서 부당한 권력 침해에 대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권복기  우리가 주고자 하는 것과 그들이 원하는 것의 접점을 찾아 대중의 변화와 요구에 맞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청년에게 스펙도 되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도 얹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황지희  그런데 진보 진영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대개는 국내에선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들 생각해요. 대학생들 이력서 받아보면 죄다 환경운동이나, 반려동물 지키기 운동 이런 정서적이고 비정치적인 활동들만 쓰더라고요. 

 

참여사회 7월호

황지희

 

한윤형  진짜 실제로 취업이 너무 어렵다는 공포가 만연해 있어요. 심지어 학생회에 운동권이 당선된 단대 출신은 기업에서 걸러내기 때문에 취직이 안 된다더라, 그런 얘기도 있더라고요.

 

김금옥  정말 두려움에 쩌는 사회네요.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들이 지금 경험하는 것들의 원인이 되는 삶의 조건이나 역사를 이해해야죠. 그래서 그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아요. 

 

권복기  청년 얘기하니까 온라인 공간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지난 대선 때 깜짝 놀란 게 뭐냐 하면, 투표 날 오후에 저쪽은 문자로 계속 ‘투표해야 된다’는 얘기가 돌았대요. 이정희가 “나 박근혜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했을 때도 50대를 중심으로 카톡이 엄청 돌았다고 하고. 기본적으로 모든 나라의 모든 디지털 공간에서는 진보적인 담론이 최우선이 돼요. 근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한윤형  뉴미디어가 나올 때마다 처음에는 진보적이라고 그랬어요. PC통신,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다 그랬어요. 새로운 기술 감수성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성향이 진보에 가깝기 때문에 그랬던 건데, 이런 매체를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라고 하는 건 1차원적 사고인 것 같아요. 

 

권복기  얼리어답터라는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선택하는 매체가 진보성을 갖고 있는 걸로 착각해선 안 된다, 이런 말씀이시죠?

 

한윤형  그렇죠. 새로운 공간에서는 어떤 진실을 구축해 나가야 할까, 이런 걸 얘기해야 되는데, 그냥 매체 자체가 진보적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죠. 

 

 

일상의 풀뿌리 기반은 좀처럼 베낄 수도 뺏을 수도 없다

 

참여사회 7월호

 

권복기  ‘베끼거나 뺏기거나’ 이런 진영의 논리가 쉽게 침범하지 않는 영역이 일상의 영역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진보의 일상 공간이라는 건 무엇인가?’ 하는 게 질문이 될 수 있고 또 궁극적인 해답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윤형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위안을 받는 공간도 있어야 하고,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인터넷 공간에 모인 사람들에겐 현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취향 커뮤니티가 현장인 거죠. 축구, 야구나 화장품, 성형, 육아, 요리 등 본인의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고 그럴 수 있는 공간도 (시민운동의) 현장이 아니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권복기  ‘스텐팬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가 있거든요? 뭐냐면, 자기가 프라이팬을 쓰다보니까 이 코팅이 해로운 거예요. 우리 아이한테 깨끗한 음식 먹여야 되는데 코팅에서 유해 물질이 나오니까. 근데 코팅이 없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모여서 프라이팬 달구는 노하우,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아줌마들이 ‘우리가 이걸 왜 하지?’ 하다가, 또 ‘가족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도움이 된대!’ 하면서 거기에 환경 카테고리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런 일상 공간에서의 접점이 생기는 거죠. 시민사회 사람들이 자기 삶을 다시 한 번 잘 봐야 해요.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을 진보적 관점에서 재해석 해보고, 거기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죠. 일상에서의 모순이나 잘못된 것들을 개선하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운동이 되고, 그 기반이 우리의 활동 공간이 되고 지지 세력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금옥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출발해서 사회 구조적인 이해로 확장시켜 나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데 동의해요. 이제 사람들은 거대 담론이라든가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것에 환호하진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이 실제 우리의 삶에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일 때,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고 우리의 가치나 철학도 설득할 수 있는 거죠. 

 

권복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시민운동이 존재한다는 게 과거의 운동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과 하나가 되는 시점에 온 거죠. 

 

김금옥  우리 좀 너무나 세상과 동떨어져서 우리끼리만의 밀폐된 안전한 공간에서만 자족하고 있었던 것 같아. 

 

권복기  그것도 맞아요. 선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우리끼리 모여서 떠들고 서로 칭찬하고, 그러면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김금옥  유연해질 필요도 있고 접근 방식도 더 다양해야 해요. 어쨌든 새로운 대안은 변방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 생기는 작은 협동조합 운동이나, 카페, 블로그, 동호회 같은 데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들이 많아요. 우리가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좀 버리고 편하게 동참하면 좋겠어요, 

 

황지희  얘기를 하면 할수록 ‘큰일 났구나’ 싶어요. 좀 더 절박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근데 현실을 인식하는 게 대안은 아니잖아요. 앞으로 분야별로 더 얘기해봤으면 해요. 

 

권복기  네, 그런 기회를 마련해보죠. 다들 고생하셨어요. 일찍 가지 않아도 되는 분들은 한 잔 씩들 더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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