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8월 2013-07-26   1187

[살림]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 농사편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농사편

 

도시여자

 

얼굴에 철판 깔고 감자를 팔 수 있을까?

 

휴……. 무엇을 쓰기도 전부터 한숨부터 나와. 누구나 다 노동을 하잖아. 어느 책에선가 그러더군. 예전에는 타인에게 착취당하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착취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어쨌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일을 해. 한국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도 하고. 조금 더 여유롭게 삶을 즐기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고.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농촌이나 산골은 한없이 여유롭고 평화롭게 보이잖아? 하지만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엄청 바쁘다고. 더군다나 시골일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어. 난 농사에 대한 꿈을 가진 남자가 1,2년 경험해보면 포기할 줄 알았어. 그래서 기다렸지. 하지만 구슬 같은 땀방울이 아니라 폭포수 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아. 오히려 대학에 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짓더라고. 

 

농사짓는 것은 좋다 이거야. 난 얼마든지 지원해주지. 나한테만 시키지 않으면 말이야. 내가 열 받는 것은 농사지은 것을 팔아도 생계가 어려울 판에 별로 팔 생각을 안 하는 거야. 파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이라고 할까? 

그걸 보고 어떤 부녀회장 언니는 자기 젊었을 적 이야기를 해줬어. 처녀 때 일이래. 00대학 졸업식 날 꽃을 팔러 나갔는데, 너무 쑥스러워 개미만한 목소리로 “꽃 사세요. 꽃 사세요.”했다고. 근데 지금은 어떤지 알아? 아마 내가 살고 있는 이 주변의 다섯 개의 마을에서 목소리가 가장 크고 걸걸한 아줌마일걸.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부녀회장 언니야. 그 분이 남자에게 얼굴에 철판 깔고 팔아 버릇해야 된다고, 또 시간이 흐르면 그리 될 거라고 응원해주셨어. 하지만, 남자는 열심히 농사를 지을 뿐 파는 데는 영 관심이 없고. 누가 산다고 하면 사는 그 사람 주머니 걱정부터 하고 있는 거야. 정신과 영혼이 힘든 일은 또 내 차지더군. 난 악처가 되기로 하고 모든 판권을 빼앗았지. 당연히 모든 돈은 내가 챙기기로 하고. 남자한텐 열심히 농사만 지으라고 했어. 

 

참여사회08월호이미지

 

정성껏 차린 한솥밥을 위해

 

올 여름 감자를 수확했어. 강원도 감자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약도 안 친 남자의 감자는 정말 실했지. 감자를 파는 나도 신이 났어. 근데 남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군. 남자가 농사지은 것을 묻지도 않고 사는 지인들에게 나 역시 감사하기만 한 마음을 가지게 된 거야. 근데 여기 더 하나의 감정이 생겼어. 

보통 한솥밥이라고 하잖아? 상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가지는 그 오묘한 연결고리. 난 밥을 꼭 같이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때로는 같이, 또 때로는 나 혼자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식탁. 그런 식탁을 가지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하나 더. 일 년에 한 번 우리가 농사지은 감자를 또는 쌀, 들기름, 참기름, 고춧가루 등의 수확물을 내가 아는 사람들이 먹는다는 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한솥밥을 먹는 느낌이 드는 거야.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이 대지의 힘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고. 가슴 뭉클한 성스러운 느낌까지 들더군. 

 

난 남자가 농사를 그만두기를 기다렸었거든. 근데 요즘엔 마음이 바뀌었어. 더욱 열심히 깨끗하고 안전하게 지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재료를 최대한 정성을 담아 보내는 거야. 그리고 그 돈은 내 주머니에 넣어야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을 거야. 이러다 돈독이 올라 부자가 되면 어떡하지? 뭘 살까? 아……. 또 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오지랖 걱정이 시작됐네. 이런 걱정을 하니 하루하루의 노동이 조금 더 값지게 생각되는 거야. 덩달아 나까지 바쁘다 바빠. 이제 직업란에 당당히 적을 거야. 내 직업은 ‘농사’라고. 괄호열고 ‘농사짓는 사람 옆에 사는 사람’이라고. 

 

도시여자 춘천의 별빛산골교육센터에 산골유학 온 도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낸 지 벌써 4년. 마음만은 성격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전히 도시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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