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8월 2013-07-26   2200

[놀자] 도락과 도박 사이, 마작

도락과 도박 사이, 마작

 

이명석 저술업자

 

얼마 전 경복궁역 근처에서 ‘오픈하우스 서촌’이 벌어졌다. 동네에 있는 건축가, 작가, 편집자 들이 작업실이나 집을 공개하고,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거나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행사였다. 나는 음악 스튜디오와 한옥을 방문해 재즈 연주를 듣고 만두 빚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상의 집’을 빌려 마작(麻雀)을 가르쳤다. 의외로 예전부터 마작을 해보고 싶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짤그락거리는 마작 패를 섞어 성을 쌓았고 차근차근 게임을 배워나갔다. 반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19세기 등장한 ‘모던의 상징’

 

마작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락 중의 하나다. 그동안 갖가지 보드게임을 섭렵했지만 마작만큼 질리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영화 <색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작은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등 아시아권이 공통으로 즐기는 커뮤니티 게임이다. 자신의 관에 마작패를 넣어가지고 간 영화배우 장국영을 비롯해 유명인 마작광도 적지 않다. 허나 나는 마작을 즐기자고 공공연히 떠들지는 못한다. 아직 한국인들에게 마작은 ‘집 날리는 도박’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기 때문이다.

 

참여사회 2013-08월호 이미지

마작은 고풍스러운 생김새와는 달리 그리 오래된 게임은 아니다. 19세기 후반에서야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추었고, 1920년대에 상해-도쿄-뉴욕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한자를 모르는 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표기한 마작패를 생산하기도 했고, 마작에 빠진 엄마를 주제로 한 재즈곡도 만들어졌다.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도 마작은 큰 바람몰이를 했다. 당시의 신문을 뒤져보면 경찰이 수시로 마작 도박단을 검거하고, 마작을 금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신문의 문화면에는 ‘모던의 상징’으로 마작을 바라보는 문화 비평도 있다. 마치 만화나 컴퓨터 게임을 두고 사회면에서는 퇴폐의 온상으로 치부하고, 문화면에서는 예술과 뉴미디어로 치켜세우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4명의 지적 긴장감이 주는 승패

 

과연 마작이 다른 게임들보다 도박성이 강할까? 중국인들은 결혼식 같은 때에 커다란 홀이 있는 식당을 통째로 빌려 하루 종일 마작을 하며 먹고 마시고 논다. 그만큼 마작이 시간을 쉽게 탕진하게 만드는 게임이라는 것이겠지만, 그처럼 긴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작은 지역마다 룰이 다르지만, 보통 동남서북 네 판 씩 총 16판을 두어야 승패가 갈린다. 두세 시간은 해야 겨우 한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사행성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도박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고스톱이나 포커처럼 빨리 승패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판돈을 키우기 쉽고 중독성도 강해진다. 그런데 마작은 패의 종류가 많고 족보도 복잡해 진입 장벽이 높다. 딱 4명이 모이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조차 없다. 여러모로 도박성이 높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에서의 특수한 상황은 있다. 한국 마작은 게임의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 패의 한 종류를 빼고 친다. 그리고 매 판이 끝날 때마다 점수로 승패를 가린다. 도박성을 높이기 위해 원형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 군사 정권의 억압을 지나오면서 마작은 사행성 오락으로 철저히 음지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 법조계, 군 장교, 기업가 등 특권층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왔다.

한국인에게 가장 보편적인 가족 게임이 뭘까? 윷놀이, 바둑, 부루마블? 거짓말이다. 정답은 고스톱이다. 그림패를 맞추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점수를 내서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다. 다만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점 당 얼마’라는 판돈이 걸리고 작은 도박이 된다. 그런데 과연 돈을 걸지 않으면 고스톱이 재미있을까? 처음 몇 판은 모르겠지만, 곧 지겨워질 것이다. 포커, 블랙잭 등등 많은 카드 게임 역시 같은 운명이다. 이것이 도락과 도박 사이의 딜레마다. 

 

나는 마작이나 브릿지(영국의 카드게임으로 네 명이 모여야 할 수 있다) 같은 게임이 지적인 긴장을 통해 즐거움을 얻게 하고,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사교적인 도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 돈을 걸어 도박으로 만들고자 하는 유혹 역시 적지는 않다고 인정한다. 그것은 모든 놀이의 운명이다. 그저 생산적이기만 하고 위험하지 않은 놀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이명석 저술업자. 만화, 여행, 커피, 지도 등 호기심이 닿는 갖가지 것들을 즐기고 탐구하며, 그 놀이의 과정을 글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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