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8월 2013-07-26   1886

[만남] 온 우주와 연애하는 밤 – 허영윤 회원

온 우주와 연애하는 밤

허영윤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참여사회08월호이미지

 

그녀가 가방에서 샐러드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삶은 달걀 몇 쪽도 함께 있다. 샐러드 소스까지 따로 담아 온 걸 보니 도시락 싸다니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근데 웬걸, 저녁식사라고 하면서 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1~2년 사이에 거의 12kg나 쪘어요. 그전엔 좀 까다롭고 예민하다는 소릴 들었었는데, 살이 찌고 나니까 착해지는 것 같아요.” 

 

식단은 누가 봐도 다이어트용. 그러면 다시 못돼지려고 노력중인건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그녀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린다. 오후 느지막이 잡힌 인터뷰 시간 때문인지 책상에는 큼지막한 샌드위치가 준비되어 있고 나만 빼고 모두들 냠냠쩝쩝이다.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게 더 많은 나는 또 생각한다, 살이 찌면 내 입맛도 좀 착해지려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허영윤 회원. 1982년생.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공부하고 현재 W커뮤니케이션즈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하고 있음. 그러나 그녀의 이력은 결코 이 정도로 요약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하나요?’라는 초간단 첫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20분, 이걸 우째…. 

 

“첫 사회생활은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있는 사원용 기숙사 부사감으로 시작했어요.”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그 사감이요?

 

“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구요. 기숙사 관리도 하고 교육이나 이벤트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는 일인데 6년 정도 하다 그만뒀어요. 내가 나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 다들 성인들인데 외박도 안 되고, 담배도 안 되고 등등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규칙들을 지키라고 강요해야 했죠. 공장이랑 붙어 있는 기숙사는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이 아니에요. 실습생들은 기숙사에서의 생활점수가 인사고과에 반영되거든요. 지각이나 외박을 해서 문제가 커지면 기숙사에서 퇴거를 당하는데 그러면 회사에서도 퇴사를 당해요. 근데 이런 문제로 누군가 퇴사를 하면 공장에서는 인력수급에 문제가 생겨서 큰일이 나거든요. 완전히 중간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내 꿈은 이게 아닌데 싶기도 하고, 그런저런 스트레스가 겹쳐 회사를 그만 둔 거죠.”

 

부사감으로 근무하는 내내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먹었어도 위염을 달고 살았다. 오른쪽 발은 이유도 없이 퉁퉁 부어올랐고 대학병원까지 찾아갔지만 끝내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마음의 괴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낸 결과였다. 

 

“대학 다닐 땐 전공도 언론 쪽이고 해서 기자를 하고픈 마음도 있었어요.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대학생 인턴기자로 활동한 경험도 있구요. 내가 생각하는 기자란, 사람들에게 행복한 소식을 전하고 그 에너지로 사람들이 다시 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기자들의 모습은 그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직장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꿈도 접었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좋은 차에 넓은 집에…, 이렇게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회사를 그만 둔 후, 그녀가 떠올린 생애 두 번째 직업은 CS강사였다. 

 

“CS강사 교육을 하는 곳에 갔었죠. 근데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더라구요. 허리는 얼마의 각도로 숙이고 미소는 어떻게 짓고 이런 가식적인 매너를 배우고 나중엔 내가 누군가에게 그걸 가르쳐야 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죠.”

 

한국직업사전을 찾아보니 CS강사란 기업체 및 공공기관 임직원과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응대 및 전화예절, 국제비지니스 및 사교행사 매너, 조직 내 인간관계 관리 등에 관한 강의를 하는 직업이란다. 하지만 이 거창한 직업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이쯤 되니 그녀의 현직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문화기획자가 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녀는 지금 감히 ‘행복하다’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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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3년

 

“W커뮤니케이션즈는 웹사이트와 어플 등을 개발하는 SI회사예요. 거기서 대외활동팀 운영과 문화기획 등을 맡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회사나 기관에서 홍보활동의 일환으로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된 대외활동팀들을 운영하는 데 그 일을 위탁받아서 관리, 운영해주는 거죠. 프로그램도 짜고 면접도 보고…. 요즘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어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걸린 3년여의 시간은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CS강사의 꿈을 접은 후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세미나, 파티 등을 대행해주는 회사를 창업했다. 재능기부 같은 용어들이 익숙지 않을 때 프로보노 방식으로 NGO나 NPO처럼 좋은 뜻을 가진 단체들을 대신해서 파티를 기획하고 홍보도 해주며 그렇게 해서 생긴 수익을 다시 단체에 전달해주는 일을 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게 더 많은 시절이었다. 후에 ‘하우투컴퍼니’라는 비슷한 회사를 차렸을 땐 사무실이 없어서 커피숍을 전전하며 일했다. 모바일오피스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지만 속내는 달랐을 것이다. 

 

“사무실 문제보다, 같이 일했던 두 사람이 연인이었거든요. 그 사이에 끼여 있는 것도 피곤하고 그 두 사람이 워커홀릭이라서, 내가 도저히 못 버티겠는 거예요. 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거든요.”

 

예전 동료들을 ‘워커홀릭’이라 부르는 그녀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좀 들이대야겠다.  

‘플레이플래닛’이라는 회사는 뭔가요?

 

“아, 거긴 제가 아는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인데 창업 초기엔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로 힘들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행호스트 역할을 맡아서 도와주고 있어요.”

 

‘서울시 시민청’에서도 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께서 부탁하셔서 하고 있는 일이에요. ‘서울시민청 정책카페’라고 한 달에 두 번 열리는데, 제시되는 주제와 관련된 NGO단체 회원들이나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거기에서 나온 내용들을 정리해서 제안서로 만들어 서울시장과 관련공무원에게 전달하는 거죠. 거기서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그녀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구경을 하다 가입한 그룹의 수를 보고 놀라 기절할 뻔했다. 자그마치 109개. 본인이 개설한 것만도 30개 가까이 된단다. 얼마 전엔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종강파티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 스스로도 ‘일 벌리고 다니는 사람’이라 정의하는 그녀다.

누구를 가리켜 워커홀릭이라 부를 자격, 있다고 생각하셔요?  

 

독구말 프로젝트

 

그런 그녀가 또 일을 만들었다, 그것도 동네에서. 이름 하여 ‘독구말 프로젝트’.

 

“지금 사는 곳이 이문동의 독구말이란 덴데 처음에 그곳에 거처를 정할 때만 해도 밤에 가서 동네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몰랐어요. 근데 낮에 보니까 다 쓰러져 가는 동네인 거예요. 싼값에 구한 방도 우울한데 동네 환경까지 그러니까 너무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구요. 나중에 보니 동네에 아이들도 많은데다 또 집안 환경이 안 좋은 아이들도 꽤 있고 그런 아이들일수록 갈 데는 없고…. 어른인 나도 동네에만 들어서면 이렇게 우울해지는데 저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러다 지역NGO에서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동네 게시판의 광고를 봤어요. 전화를 했죠. 동네에 벽화를 그려서 아이들의 환경을 바꿔주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잘됐다면서 동네 놀이터에 컨테이너가 있는데 그곳을 도서관으로 꾸미려고 하니 와서 컨테이너 벽을 꾸며달라는 제안을 하더라구요.”

 

참여사회08월호이미지

 

아카데미에서 드로잉 강좌를 들었던 그녀는 그때 알게 된 인맥들을 동원했다. 나중엔 드로잉 강의를 맡아 수업을 해주셨던 배민정 선생님이 아는 작가까지 소개시켜줘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늘 조그마한 백지 한 장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던 그녀에게 거대한 사이즈의 ‘벽’이 캔버스가 되어 날아왔다. 독구말에 ‘놀이터 도서관’이 개관하기까지, 그 풀 스토리를 그녀는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제가 가입한 페이스북 그룹 중에 ‘디자인으로 서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해도 힘내라는 댓글만 달릴 뿐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 힘으로 동네의 한 구석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모습을요.”

 

그 변화는 다시 다른 것들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모여 탈선을 일삼던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갈 곳이 없던 아이들이 동네의 한 공간을 오롯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드로잉 강좌를 같이 들었던 사람들과 만든 ‘그림자’라는 동호회가 있는데요, 그곳 사람들에게 놀이터에서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했어요. 아이들도 옆에서 구경하게 하고 미술도구도 준비해서 같이 그림도 그리고 그러자구요. 그 그림들을 아이들이랑 함께 전시회도 하고, 너무 좋겠죠?”

 

독구말 프로젝트의 작업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다. 얼핏 봐도 지난한 시간이었을 노동의 현장. 그 앞에 그들 스스로가 붙인 이름은, 그러나 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3월부터 6월까지, 동네의 버려진 컨테이터를 ‘놀이터 도서관’으로 바꾸기까지, 그 탄생의 기록 앞에 그들이 붙인 이름은, ‘아름다운 놀이’였다.  

 

연애 못하는 여자

 

이 아가씨, 대체 연애할 시간이나 남겨놓고 이러는 걸까?

 

“저만 빼고 온 우주가 연애하는 것 같아요. 이성을 너무 형제애로 대해서 그런 걸까요?”

 

한때 사막 마라톤을 꿈꾸며 런엑스런이란 동호회에 가입한 이야기, 시민청 정책카페에서 여든 아홉 살의 할머니에게 칭찬받은 이야기, 녹색당에 가입하게 된 이야기, 그림자 동호회에서 하는 누드드로잉 이야기, 누드모델의 섬세한 근육에 찬탄했다던 이야기, 이젠 정도 들고 알게 된 이웃들이 한둘 늘어 동네에 들어서면 집까지 가는 시간이 예전보다 곱절은 더 든단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이 열정의 청춘에게 꿈을 물었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이거요.”

 

이석희 시인의 시 <누가 그랬다>의 일부이다. 자신만 빼고 온 우주가 연애를 하는 것 같아 배가 아프다던 그녀는 결국 더 아픈 사람들을 부둥켜안고 있던 거였다.

 

‘내가 숨 쉬고 말하고 걷고 생각하는 그 모두가 우주다.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닌 것은 없다. 모두가 우주, 모두가 나다.’ 그녀가 써놓은 이 글귀처럼, 더 아픈 사람도 덜 아픈 사람도 그 모두가 우주고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닌 것은 없기에, 그녀는 오늘도 온 우주와 연애를 한다. 남자만 빼고 말이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을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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