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8월 2013-07-26   1837

[통인] 진주의료원이라는 이름의 방파제 – 유지현 위원장

진주의료원이라는 이름의 방파제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 위원장

 

박유안 기웃기웃번역가

사진 박영록 사진가 

 

 

2012년 연말에 취임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불통 리더십의 첫 희생물로 진주의료원 폐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진주 지역 등 경상남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공의료체제를 뒤흔드는 중대사건이다. 폐업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한창일 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유지현 위원장을 만났다. 

 

참여사회08월호이미지

 

사진으로 뵐 때는 탐스런 검은 머리였는데, 어찌된 일인가?
짧은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셨다?

5월 말에 경남도청 앞에서 삭발하고 단식하고 했더니, 내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스타일이 바뀌었다(웃음). 정말 너무 화가 났다. 어떻게 우리랑 “정상화를 위한 노사대화를 재개”를 하겠다고 합의해놓고 단 한 시간 만에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 말을 뒤집을 수 있나. “노조가 어떤 대안을 가져와도 타협하지 않는다”니, 대체 이런 리더십을 어떻게 믿고 주민들이 따르겠나.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국정조사에서 대국민 사기극의 진상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6월 12일부터 7월 13일까지 32일간 진주의료원 사태를 대상으로 한 국회 국정조사의 정식 명칭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정조사’였다. 홍 지사는 증인 출석까지 거부하며 한사코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자치사무라고 우겼으나, 국회를 비롯해 공공의료 진영 전체는 이번 사태가 의료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료의 강화냐 위축이냐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대체 ‘공공의료 확충’을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정부 초창기에 홍준표 도지사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둬가며 진주의료원 폐원을 강행하는 걸까?

 

홍 지사가 내세우는 폐원의 명분이 크게 두 가지다. 경영 정상화, 그리고 강성노조인데?

진주의료원은 허허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병원이다. 2008년 지금의 부지로 옮길 때 혁신도시 조성 계획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수요예측을 했는데, 혁신도시가 2년 넘게 지체되는 바람에 매출이 예상보다 떨어지는 사태가 5년간 지속되었다. 그래서 적자가 발생하고 인건비 비중이 높아 보였을 뿐이지, 실제로는 연봉이 간호직 3천4백만 원, 사무직이 4천만 원 정도다. 홍 지사도 처음엔 재정을 이유로 들다가 나중에는 귀족노조, 강성노조라는 억지 프레임을 만들어 밀어붙였다. 

 

보건의료노조가 우리나라 최초의 산별노조라는데?

우리나라는 원래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부터 산별노조였다. 이걸 전두환 정권 때 지역별 노조로 찢어놓아 약화시켰다. 우리도 87년 이후 지역별 연맹 체제로 있다가 96년 정리해고법 반대 투쟁 때 힘을 모으자며 전국 단일 조직인 산별노조로 연대해 합친 거다. 그래서 위원장도 한 명이고. 산별 단위에서 교섭도 진행하고, 의료 개혁 문제 등 정책 변화,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등도 보다 강력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후 다른 노조들도 산별체제로 많이 전환했다. 

 

보건의료노조가 강하다면 연대의 힘으로 강한 거다. 민주주의적으로 강한 거다. 그리고 그 강력함의 사회적 책임을 잘 안다. 의료 제도의 개선 의지도 그래서 더 높다. 홍준표의 무소불위 불통식 강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산별노조로 전환한 뒤, 임금인상의 일정 부분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쓰도록 하자는 교섭 결과를 이끌어냈던 보건의료노조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조차도 ‘아름다운 합의’라고 칭송했다. 선진국에서는 조직화된 노동자 세력의 사회적 참여를 보장하는 근대화 과정을 짜임새 있게 거쳤지만, 우리는 압축성장의 과정 속에서 이마저도 유야무야였다.

 

2012년 6월, 6대 위원장으로 취임하신 후 1년 반이 훌쩍 지났는데,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자면?

3년 임기의 절반을 지났는데, 할 일은 많고…. 작년 총선 때는 ‘우리 후보를 국회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전임 위원장을 국회로 보내려는 직접정치 실험도 했지만, 실패했다. 조합원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중앙에서 일을 해보니 의료 제도와 관련해서 할 일이 더 많더라. 의료 제도를 제대로 바꾸면 그 안에서 일하는 의료노동자들도 행복할 수 있다. 연말을 거치면서 ‘다시 현장부터 다지자’는 각오로 새로 일을 시작하는데, 진주의료원 사태가 터진 거다. 

 

진주의료원 사태의 쟁점,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무엇인가?

의료의 공익성, 수익성 논란이다. 언젠가는 터질 게 터진 거라고 보는데, 거기에 홍준표 지사 개인의 캐릭터가 맞물려 사태가 커진 거다. 박근혜 후보 공약에 지역거점병원 확충도 있었고, 공공의료 확충도 있었다. 그간 우리가 한 요구들이 많이 반영된 셈인데, 국민들의 복지 의식이나 요구가 그만큼 드높아진 거라고 본다. 그런데 정작 의료체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병원을 공공서비스 보다는 돈 버는 곳이라고 보는 관점이 팽배하다. 홍 지사도 처음에는 ‘돈 먹는 하마’라며 문을 닫겠다고 내걸었다. 병원 한번 들르지 않고, 어떤 얘기도 듣지 않고, 민주주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건 홍 지사의 불통 캐릭터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나니 국민들의 반노조 정서에 편승해 ‘강성노조’ 탓을 하는 쪽으로 선회하더라.

 

대체 홍 지사는 왜 이렇게 진주의료원 폐원에 매달리는 걸까?

모르겠다. 첫 단추 잘못 끼웠으면 얼른 다시 바로잡아야지…. 꺼낸 칼 도로 집어넣지는 못하겠다고, 그냥 가겠다고 버티는 모습이다. 진주의료원을 ‘강성노조의 해방구’라고 몰아세웠는데, 사전에서 ‘해방구’는 ‘중앙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그러면 경남도야말로 ‘홍준표의 해방구’ 아닌가?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으면 다른 지역거점병원들로, 공공의료체제 전체로 삽시간에 번지리라는 우려가 높은데, ‘공공의료 확충’을 내건 이 정부에서 무조건 막아야 하는 일 아닌가? 보건복지부는 어떤 입장인가?

진영 장관도 진주의료원을 찾아와 정상화를 위해 애쓰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 공포 이후 1주일 안에 보건복지부가 대법원에 제소를 해야 하는데, 이걸 안 했다. 그걸 보고 복지부의 방향이 바뀐 걸 알았고, 복지부 앞에서 농성도 했다. 만약 진주의료원이 다시 문을 못 연다면 복지부는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정말 존재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다른 병원들 문 닫는 거, 이젠 못 막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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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5개월 넘게 진행 중이다. 제일 힘든 건 무엇이었나?

제일 힘든 건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프레임 앞에서 우리가 너무 무력했다는 거다. 지난 15년간의 산별노조 운동성과가 이렇게밖에 평가가 안 되는구나 싶어서 안타까웠다. 워낙 마구잡이로 부당하게 밀어붙이니까, 그 기세에 눌린 면도 있었다. 홍 지사가 99년도 파업 때 노조에서 원장을 폭행했다고 발표했다. 그때 내가 조합원들에게 ‘원장 때린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위원장인 나까지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많이 섭섭해 했다는 후문인데, 국민들도 아마 그렇지 않나 싶다. 거짓말을 거듭하며 강성노조로 몰아붙이니, ‘혹시?’라며 의심하는 마음이 드는 거다. 국회에서 논의할 때도 그런 의혹의 시선이 따가웠고,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며 이제 앞으로의 전망을 다져야 할 때 아닌가?

지난 4~5개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나마 싸울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연대의 힘 덕분이었다. ‘의료’라는 부분이 많이 낯설고, 병원에 대한 일상적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손 놓지 않고 함께 가주시는 시민들의 힘, 연대의 힘이 있어 다행이다. 국민들이 복지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만큼 연대의 힘을 바탕으로 꼭 진주의료원을 지켜내고 공공의료를 지켜내겠다. 가장 길게 보자면 내년 6월 도지사를 바꿔서라도 진주의료원을 다시 열어야 한다. 짧게는 2~3개월 안에 복지부가 나서서 진주의료원을 다시 여는 방안, 재정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투쟁을 통해 이룬 큰 성과는 복지부와 더불어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폐업을 하지는 못하게끔, 반드시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법 조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외국에도 이런 폐원 사례가 있는가?

이번엔 그런 경우를 찾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지의 연대하는 노조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살펴보니, 가장 큰 차이는 우리 인력이 OECD 평균의 2/3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런 조건에서 굉장히 강도 높게 일을 한다. 그래서 사직자도 많고. 간호사 자격증 가진 사람은 35~40만인데, 일하는 사람은 20만밖에 안 된다. 인력 부족은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 환자의 안전 문제 등으로 연결된다. 이런 측면에서부터 법제도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진주의료원 사태가 공공의료의 기틀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보건의료노조는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어디에 살든, 얼마나 아프든, 돈이 있든 없든,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의료를 상품으로 보는 시각들을 바로잡기 위해 좀 더 노력하겠다. 노동문제든, 의료문제든, 잘 대응하는 책임 있는 산별노조가 되겠다. 이번처럼 무슨 사안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시민사회단체와 스킨십을 나누면서 연대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건의료노조와의 간담회에서 노조가 공공의료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이 방파제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이 방파제가 무너지면 ‘생명보다 돈’을 앞세우는 일이 우리의 일상을 덮쳐버릴 것이다. 뜻있는 모든 사회세력이 연대해 공공의료를 더욱 든든하고 안전한 보루로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이유이다.

 

 

박유안 ‘바람구두/알트’라는 출판사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연애, 여행, 혁명, 대안경제 등 일 아닌 다른 온갖 것들을 읽고 따지고 쓰고 옮기는 일에 더 재미가 좋다.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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