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3061

[통인] 1W도 생산 않는 서울, 왜 그리 밝은가 –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1W도 생산 않는 서울, 왜 그리 밝은가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글 박상규

 

#1. 밀양 가는 길

 

읽으면서 몇 번씩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계삼(41)의 책과 칼럼을 시원하게 읽는 건 무척 난망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힐링’이 유행이 된 시대에도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 인간적 상처를 똑바로 응시하는 일은 무척 힘겨운 일이니까. 

그래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은 우울하고 슬펐다.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일, 외면해 버리면 속 편할 사건을 확인하는 게 힘들었다. ‘불편한 진실’은 개그 소재만이 아니다. 무척 더운 지난 7월 이계삼은 <한겨레> 칼럼에 이런 내용을 적었다.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공사용 헬기가 뜨지 못하도록 막았던 주민들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 당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젊은 검사는 50대 아주머니에게 호통을 쳤다. 말끝에 그는 ‘자식한테 부끄럽지도 않냐’고까지 했다. 아주머니는 검사실을 나오자마자 너무나도 서러워서 기다리던 이웃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10월 22일 오전, 서울역에서 밀양으로 가는 KTX를 타면서 “너무나도 서러워서 이웃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는 50대 농부 아주머니를 생각했다. 두 시간여 만에 ‘변방’ 밀양에 도착했다. 이계삼을 만나기 전, 송전탑 싸움 현장부터 확인하고 싶어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로 향했다. 

 

#2. 밀양 싸움의 현장

 

깊은 산에 있는 바드리마을에 닿으려면 이중 삼중의 경찰 경비를 통과해야 했다. 마을 입구에는 ‘참 살기 좋은 바드리마을’이라 적힌 표지석이 있다. 그야말로 산 좋고 공기 좋은 농촌 마을. 하지만 마을에서 주민 만나기가 어려웠다. 많은 주민은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노란색 조끼를 입고 안전모와 도시락을 든 한국전력(한전) 직원들만 거친 숨을 내쉬며 마을을 오갔다. 한전 직원들은 3개 조로 나뉘어 송전탑 공사 현장을 종일 지킨다고 했다. 마을 주변 곳곳은 굴착기에 파헤쳐졌다. 가까이 다가가면 ‘윙윙’ 소리가 들린다는 76만5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는 송전탑 세워질 현장이다. 

 

해는 일찍 서쪽 산 밑으로 떨어졌다. 바드리마을에서 평리 마을 쪽으로 내려왔다. 오후 7시, 사방은 어두웠다. 저 멀리 바드리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이계삼을 만나러 밀양시내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책위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야 많이 고단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교사로 살다가 운동가로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교조에서 활동했고, 지역(밀양)에서도 이런 저런 활동을 했기에 운동가로 사는 게 낯설지는 않아요. 작년 1월 대책위에 들어온 후 한전이 세 번 공사를 시도했는데, 이번엔 너무 강하게 들어오네요. 지금 (한전과 공권력에) 뚫려서 힘들지, 교사 생활에 비해 특별히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이계삼은 경기도 김포 통진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고향 밀양으로 내려와 자신의 모교인 밀성고등학교에서 11년 간 학생을 가르쳤다. 가만히 있으면 한국 사회 구성원 다수가 꿈꾸는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는 자리. 하지만 그는 몇 차례 공언한 대로 2012년 2월 10일 자로 학교를 떠났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대개의 청년이 실업과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 교사로서 그는 “(아이들에게) 사기를 그만 좀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냈다. 석유가 고갈되고, 석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가는 지금, 그는 “농업 아니면 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인문학과 농업을 가르치는 귀농학교를 열 생각이었다. 실업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우리 함께 농사 짓자”고 손 내미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2012년 1월 1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던 이치우(당시 74세) 어르신이 분신해 목숨을 끊은 뒤였다. 이계삼은 곧바로 ‘이치우열사분신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송전탑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귀농학교를 계획했는데, 한없이 미뤄지게 됐네요.

 

그렇죠.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현장에서)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요. 벌써 두 사람이 구속됐고, 연행자가 스무 명이 넘습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내 신상에 어떤 일이 닥칠지……. 꿈꾼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2013년 5월22일 부북면 평밭마을 127번 현장에서 있었던 한전과 공권력의 폭력 에 나신으로 항의하고 있는 밀양 어르신. / 지난 10월 3일, 공사가 재개된 이후 126번 현장에서 공사 중단을 위해 단식 투 쟁하던 주민 곁에서 어르신이 울고 있는 모습.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이 대부분 70~80대의 노인들입니다. 대책위에서 특별히 당부하는 말이 있을 텐데요. 

우리 대책위는 주민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끝까지 갑니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죠. 밀양 사태가 가지는 진실, 이 싸움에서 지켜야 하는 정의가 있다고 봐요. 그걸 우리가 놓치면 안 되죠. 여기에 더해 대책위는 더는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고 어르신들의 진실이 사회에 전달돼야 하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한전과 정부가 너무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으니까요. 송전탑 공사 명분이 신고리 원전 3·4·5기의 조기 완공과 내년 전력 수급 안정이라는데,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잖아요. 정부와 한전은 명분과 합리성을 잃었는데도 공사를 강행합니다.

 

송전탑 공사 명분은 거짓이라고? 잠깐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진실을 살펴보자. 지난 10월 1일 조환익 한전 사장은 “신고리 3·4호기 준공에 대비하고 내년 여름 이후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해 10월 2일부터 밀양 송전선로 공사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그 뒤 밀양 단장, 부북, 산외, 상동면 구간에서 송전탑 공사가 재개됐다. 곳곳에서 충돌과 부상자가 속출했다. 

밀양 송전선로는 부산 기장군 신고리 3·4호기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경남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대책위 측은 신고리 3·4호기 전력 생산량은 영남권 전기 수요 관리로 해결될 정도로 극히 적다며 정부의 ‘전력난’ 논리를 반박한다. 

 

게다가 신고리 3·4호기 제어 케이블도 문제다. 최근 검증 결과 ‘부실’이 드러났고 전면 교체를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케이블을 교체하는 데 최대 2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즉 신고리 3·4호기 준공은 2015년에나 가능한 일이어서 밀양 송전탑 공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방금 언급한 밀양 싸움이 갖는 의미와 정의는 뭔가요?

 

오늘날 한국 사회 다수의 도시인과 대기업이 누리는 안락은 시골 주민들이 당하는 폭력과 희생에 기초한 겁니다. 대규모 원전과 화력발전소를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에 지어서 전기를 도시로 보내는데요, 전기를 가장 적게 쓰는 시골 사람들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도시를 위해 희생하는 불공평, 불평등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깊게는 원전 증설 문제가 있어요. 신고리 발전단지에 현재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앞으로 예정된 것까지 합치면 총 10기입니다. 원전은 다음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는 위험한 사업이에요. 가까운 곳에 부산, 울산, 대구 등 인구 밀집 지역도 있고……. 이젠 (위험하고) 부도덕한 일들을 그만할 때가 됐는데도, 국가는 반성의 기미 없이 파시즘적 태도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밀양에서 폭로되고 있죠.

 

후쿠시마 사태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탈핵 논의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마을 주민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엔 송전탑만 봤는데, 이걸 따라가보니 그 끝에 원전이 있더라” 중요한 발견입니다. 주민들은 원전이 증설되지 않으면 송전선로는 필요 없다는 분명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태도 있고, 분명히 세계적으로 탈핵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거스르는 ‘원전 마피아’ 즉 정치인, 기업이 있죠.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탈핵 논의를 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그동안 안락한 체제에 길들여진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변화는 시급한 일인데, 다들 이 체제에 머무르려는 관성이 있죠. 탈핵은 단순히 에너지 정책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문제예요. 후쿠시마도 그렇지만, 원전은 다 도서벽지에 있잖아요.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시골을 거쳐 이동하고. 원전은 약자들, 소수자들, 미래 세대 희생 위에서 존속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입니다.

 

고단한 싸움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에게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아요. 

 

막연히 생각하던 시골 농민들, 흙에서 사는 사람들의 심성, 이런 것들에 깊이 감동하는 순간이 많아요. 여기 분들은 돈이 더 필요해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그냥 여기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국가가 하는 걸 어떻게 막겠느냐’하는 마음도 물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는 본질적인 각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전이 얼마나 심하게 했습니까. 어른신들 배려하는 척도 하고, 겁박도 하고, 자식들에게 연락해 포기를 종용하고, 손해배상 소송, 공사방해 가처분, 고소·고발 등이 무수히 있었어요. 그래도 어르신들이 굴하지 않은 건 ‘인간적 자존감’ 때문이죠. 어르신들의 마음속에는 정의감 같은 게 있어요. 물론 송전선로가 들어와 재산권 행사가 정지되는 것도 큰 문제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싸움이 지탱되는 건 아닙니다. 돈으로 다 수렴되는 사회에서 이 어르신들이 살아있는 인간성과 타인에 대한 환대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참 귀한 거죠.

 

인간적 자존감……. 검사에게 호통 당하고 이웃들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는 농부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셨는데, 많이 아프게 다가왔어요.

 

사실 그건 여기에선 빙산의 일각도 안 됩니다. 공사 현장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니까요. 그런 점이 참 걱정이에요. 이 싸움의 승패와 상관없이, 주민들이 그동안 당했던 일들을 당신들이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지…….

밀양 사태를 통해 크게는 탈핵 등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맥락은 아니지만, 현장의 싸움을 끝낼 절차도 필요해 보입니다. 

공론화해야죠. 공론화 기구를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형식적 기구는 많아도 주민, 시민사회, 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사회 공론화 기구는 사실상 없어요. 공론화 기구에서 송전탑에 따른 주민들의 피해와 우려,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 지중화 문제 등을 모두 논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민들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참여사회 2013년 11월호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고 이치우 어르신의 뜻을 이어 싸울 것을 다짐하는 밀양의 한 주민. 이치우 어르신은 밀양 송전탑 문제와 맞서 싸우다가 2012년 1월 1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평생을 살아온 곳에서, ‘그냥 여기 살고 싶다’는 마음일 뿐이다. / 밀양의 한 어르신이 쓴 탄원서

 

정치권이 해야 할 일도 많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정치 문제가 크죠. 정치가 (갈등의 문제를) 받아 안아서 중재하고 조정해야 하는데……. 정치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런데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도 손을 못 쓰고 있죠. 절망적입니다. 주민들이 국가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정치가 완충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공간이 빠져 있죠. 그러니 주민들이 맨몸으로 국가폭력을 막고 있는 거고.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은 국가 정책과 깊은 연관돼 있어요. MB정권 때 원전 수출을 했는데,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한 계약에 따르면 2015년 7월까지 신고리 원전 3호기를 가동해야 해요. 잘 가동한다는 걸 보여줘야 페널티를 물지 않는다는 거죠. 결국 (송전탑 건설 강행에는) 원전 수출 사업 자체가 신용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원전 마피아들 강력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이걸 과연 정치권이 막을 수 있을까? 저는 전체 시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시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어르신들은 할 만큼 했습니다. 8년 동안 싸웠고, 최근 3년은 거의 전투를 치르는 나날이었죠. 어르신들이 계속 나아가주길 바라지만, 분명히 많이 지쳤을 겁니다. 이젠 시민들이 나서야죠. 송전탑 공사 중단을 위해서 마음을 모아줬으면 합니다. 주민들은 저항을 꺾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글과 강연을 통해 석유 고갈, 탈핵, 농사와 노동의 중요성 등 근본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계삼의 밀양 투쟁’은 필연인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렇게 큰 싸움을 하게 될 줄은……. 제 성품 자체가 거대한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배포도 작고 심약한 사람이죠.

 

#3. 다시 서울로 가는 길

 

인터뷰가 끝으로 향할 즈음. 이계삼은 이야기를 끊고 “담배나 한 대 피자”며 밖으로 나갔다. 그는 “끊었던 담배를 7년 만에 다시 피우는 것”이라며 “종종 담배가 위로가 된다”며 한숨 쉬듯 연기를 내뿜었다. 이계삼은 윤동주를 좋아한다며 그의 시 <길>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그는 “도시에서 사는 건 내 체질에 맞지 않고, 삶이 마모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우린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고, 그걸 찾는 삶의 방식은 흙과 가까운 삶”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떠나 귀농학교를 열겠다는 이계삼의 꿈은 보류됐다. 농사를 짓고 인문학을 공부하며 아이들과 꿈을 나누겠다는 그는 지금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언제쯤 계획한 대로 흙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그가 아닌 우리가 답해야 할 것 같다. 

 

23일 새벽에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76만5000볼트의 전기를 도시로 보내야 하는 밀양 바드리마을은 오후 7시만 돼도 암흑이었는데, 서울은 새벽에도 불야성이었다. 이계삼의 말대로 단 1W의 전기도 생산하지 않는, 자기 먹을 것도 키워내지 못하는 서울은 번쩍번쩍 환했다. 

 

박상규 오마이뉴스 기자

단언컨대, 서른이 될 때까지 ‘기자’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연히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거의 10년 동안 일했다. 너무 오래 일했다. 곧 세계 여행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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