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1080

[살림]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 가출편

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가출편

 

도시여자

 

가출해본 적 있어? 

언젠가 아이가 내게 물었어. 

 

“아줌마, 저 가출해봐도 돼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많이 혼내실 거예요?” 

“그래? 해보고 싶으면 해봐. 근데 가출하기 쉽지 않을 걸? 아줌마도 해봤는데……. 우선 산 넘고 물 건너 어딜 가기란 쉽지 않고, 또 여기를 다시 찾아오기도 쉽지 않고. 도시와는 많이 다를 거야.” 

옆에서 또 한 아이가 한마디 했지. 

“집 떠나면 개고생이래.” 

 

결국 아이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출을 하지는 않았어. 언젠가는 해보겠지? 만약에 진짜로 하면, 다시 돌아왔을 때 눈물 나게 반겨줘야지. 집 떠난 것 후회하는 마음 팍팍 들게. 나 맘고생시킨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으흐흐. 어쨌든, 가출이란 생각만 해도 설레는 단어야. 안 그래? 사람마다 다르겠지. 내 어릴 적 이야기를 쓰긴 싫지만, 최근 것 하나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어. 산골 표류가 시작되던 4년 전, 나의 가출 이야기.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문득 떠나고 싶던 날

 

어느 날이었어. 사람들은 내게 도시를 떠났다고 부러워했지만, 난 이 곳, 산골을 뜨고 싶었지. 이유? 글쎄… 뭐 별거 있었겠어?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충족되어 사라지고, 낯선 것이 일상으로 대체된 순간. 열 받는 일도 하나둘 생겼겠지. 차를 끌고 무조건 나왔어.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고민했어. 어디로 갈까. 왠지 도시로 다시 가기는 싫더라고. 반겨줄 친구들이야 많겠지만, 걱정스럽게 날 보는 시선도 싫고. 그저 나의 답답함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어. 춘천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딜까? 차를 끌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남해로 가보자 했지. 바다를 볼까 하며. 하지만 중간에 내 저질 체력은 바닥나고. 결국 귀농한 선배 집을 찾아갔어. 

 

그 선배는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지. 남자와 나는 별 생각 없이 “뜰까? 그래, 뜨자” 했던 철부지였지만, 그 선배는 귀농에 있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농사에 대한 뜻이 있던 데다가 5년 넘게 귀농에 대해 준비하고. 말 그대로 기본부터 탄탄히 쌓았던 선배지. 그의 집은 날라리 우리 집과는 달랐어. 방바닥은 걸레질로 반질반질하고, 일상의 도구 하나하나 손때가 묻어 각각의 쓰임에 맞게 놓여진, 제대로 농사짓는 시골집이었어. 내공이 남다른 공간이었지. 

 

선배는 괜찮다 쉬어라 했지만, 내가 거기서 우리 집에서도 안 해본 농사일을 했다는 것 아니야. 때는 바야흐로 지금처럼 가을이라 고구마를 캤어. 고구마는 땅의 모양대로 자란다고, 그래서 모양이 각각 다르게 나오는데, 도시 사람들은 마냥 예쁘게 생긴 고구마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지금 캐는 것들은 상품으로 팔 수 없다고. 뭐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푹 쉬고 돌아왔어. 

엊그제의 일이야. 아이와 고구마를 캐는데, 어느새 내가 흙과 고구마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고 있는 거야.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있었나 흠칫 놀라 생각해보니, 몇 년 전 내가 가출했을 때 선배한테 들은 거더라고. 

 

비로소 산골에 마음을 놓다 

 

사람들이 내게 가끔 물어. 답답하지 않냐고. 맞아. 답답해. 도시에서 삼십여 년을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나의 도시 습관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근데 말이야. 나 정말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거든. 집을 떠나서 돌아다니고, 돌아다닌 곳에서 좋은 사람들, 나쁜 사람들, 강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추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배우고 느끼고 하면서 말이야. 있잖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나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고. 집에 가서 쉬면 괜찮을 거라고. 가서 쉬자고. 지금 바로 이 곳이 쉬고 싶은 곳이 되었어. 5년이 지나서야 이제야 여기가 내 집 같아. 집이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도시여자’인데, 이젠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 그렇다고 ‘산골여자’라고 바꾸기는 좀 염치없는 일이야. 그래서 말인데, 그거 알아?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어. 나 표류를 끝내고 싶어. 물론 산골 표류를 말이야. 언젠가 또 표류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 때 가서 또 결정하면 되겠지. 내가 이별에 좀 서툴러. 근데 이번에는 좀 제대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마지막에 갑자기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미리 시간을 두면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에 이야기하는 거야. 남은 한 달 동안 어떤 작별인사를 할까 생각해볼게. 그럼, 다음에 만나.  

 

 

도시여자

춘천의 별빛산골교육센터에 산골유학 온 도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낸 지 벌써 4년. 마음만은 성격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전히 도시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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