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989

[역사] 연대의 전통, 살아있네!

연대의 전통, 살아있네!

 

외부세력?

 

밀양이 뜨겁다. 한국전력이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를 공권력의 힘을 빌려 해결을 시도하려다  또다시 주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 대부분이 노인임을 염려하며 이들을 돕고 함께 싸우고자 각지에서 시민들이 속속 밀양에 모여들었다. 이를 두고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외부 세력의 개입이라며 문제 삼았다. 익숙한 프레임이다.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크레인 농성 중인 김진숙 씨를 보러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모인 시민을 향해서도 그들은 외부세력이라 했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는 ‘외부세력’이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약자를 돕고 함께 싸우는 연대의 정서와 풍속이 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오늘날 시민사회가 주요 현안마다 함께 헤쳐 나갈 ‘국민운동본부’를 꾸리는 걸 당연시하는 연대 문화는 다른 나라에선 찾기 힘든 우리의 강고한 전통이다. 근대적 연대 문화의 기원은 한국인 모두가 약자 처지의 식민지민으로서 서로 어깨를 걸고 살아야 했던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당시 연대에 참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외부세력 개입이라 부르며 탄압한 강자는 일본 식민 권력이었다.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연대의 기원, 마음과 돈으로 

 

3·1운동의 여파로 청년, 농민, 노동자가 나서며 사회 운동이 활발하던 1923년에 전남 무안군 암태도에서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소작쟁의가 일어났다. 해를 넘겨 소작인과 지주 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50여 명의 소작인이 체포되자 소작인 600여 명은 목포지방법원 앞에서 노숙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이 소식이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자, 전국의 개인과 사회단체로부터 지지와 성원이 답지했다. 서울에서는 건설사라는 사상 단체 주도로 ‘600여 명의 군중이 한 푼 돈과 한 줌 쌀 없이 닥쳐오는 굶주림과 넘치는 비애에 어쩔 줄 모르고 있으니, 동포로서 힘을 보태야 한다’고 호소하며 쟁의 기금을 모았다. 저명인사는 물론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대일보 등의 사원들도 주머니를 털었다. 조선노농총동맹은 조사단을 파견하는 한편, 조선청년총동맹과 함께 소작쟁의 지지를 위한 연설회를 준비했으나, 경찰이 불허했다. 평양에서 노동, 농민, 청년 단체 등이 합동으로 준비한 연설회 역시 금지되었다. 쟁의 기금은 방방곡곡은 물론 멀리 일본 오사카에서도 보내왔다. 암태도라는 섬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에 대해 전국 각지에서 지지 성원하는 모습은 당시로선 낯선 풍경이었지만, 따스한 연대의 힘을 실감하게 만든 경험이기도 했다.  

 

연대의 진화, 함께 싸운다

 

1920년대 마지막 길목인 1929년,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대사건들이 일어났다. 원산총파업과 광주학생운동. 신년 벽두인 1월에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의 주도로 24개 노조,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총파업을 단행했다. 어느 공장에서 일어난 일본인 감독의 한국인 노동자 구타 사건이 발단이었다. 처음 접하는 대규모 총파업 투쟁에 대한 관심과 성원은 뜨거웠다. 개인이나 단체에서 날아온 지지 전보와 편지, 십시일반으로 내놓은 파업 기금의 내역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전국의 경찰은 원산총파업을 지지하는 연설회나 편지, 파업 기금 발송을 막기 위해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재판에 넘기며 위협했다. 일본의 노동단체들도 연대에 동참하여 파업 기금을 모아 보냈다. 고베와 홋카이도에서는 연대 파업이 일어났다. 주목해야 할 변화는 신간회를 비롯한 전국의 사회단체들이 직접 원산에 가서 파업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는 점이다. 그들은 외쳤다. ‘전국의 노동자는 일어나 원산 쟁의를 승리시켜라. 각 공장, 직장에서 응원단을 조직하라!’    

 

그 해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서는 전국의 학생들이 동맹적 연대 투쟁을 전개했다. 학생들이 광주에 집결한 것이 아니라, 광주로부터 전국으로 시위와 동맹 휴학이 확산된 것이다. 광주에서 학생 시위가 일어나자, 신간회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은 곧바로 광주로 내려가 진상을 조사하고 서울서 시위를 계획했다. ‘광주 학생에 대한 응원’, ‘식민지 교육 반대’ 등을 위한 총궐기를 촉구하는 격문과 함께 시작된 서울에서의 동맹 휴학은 곧바로 전국으로 파급되어 이듬해 1월까지 이어졌다. 전국 194개 학교, 5만 4천여 명의 학생이 동참한 연대 투쟁이었다.

 

1920년대 연대의 전통은 식민 경험 속에서 한국인의 민족 정서가 탄생시킨 고유의 문화이다. 암태도소작쟁의, 원산총파업, 광주학생운동. 그것들이 장기간에 걸친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포개고 돈을 보태고 동참하고 동맹하며 싸우던 연대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 발전의 길목마다에도 그 연대의 기억과 전통이 문화로서 힘을 발휘했다. 그 때마다 외부세력의 개입이라는 권력의 폄하 역시 늘 따라다녔다. 그렇다. 밀양 주민이 오래도록 버틸 수 있게 만든 동력 중 하나는 시민과 상식이 자신들을 지지하고 함께 한다는 연대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외부세력이여, 밀양에서 또다시 희망의 연대를 꾸려보자.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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