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1076

[특집] 새로운 것은 늘 결핍된 곳에서 나타난다

 

새로운 것은 늘 결핍된 곳에서 나타난다

새롭게 등장한 노동조합들의 배경과 가능성

 

조성주 서울시 노동전문관

전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보좌관, 경제민주화2030연대 대표등으로 활동했다.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정책기획팀장으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서울시에서 노동전문관으로 일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조합의 출현

 

2010년 3월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조직이 출현했다. ‘청년유니온’. 자신들을 청년 세대를 위한 노동조합이라고 주장하는 이 조직이 처음 출현했을 때 기존 노동계 다수의 반응은 ‘너희가 무슨 노동조합이냐’라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생, 구직자, 청년 실업자, 대학생, 파견 노동자, 계약직 노동자 등으로 그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이들은 오직 청년이라는 세대가 공통점인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물론 기존에 ‘일반노조’라는 형태로 초기업 단위의 지역 일반노조가 존재했다. 그러나 기존의 지역 일반노조들은 여전히 중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가 다수였고 청년유니온처럼 사업장이 규정되지 않는 완전한 개인 가맹 노동조합의 형태는 거의 없었다. 

 

이처럼 특정 사업장에 구속되지 않는 완전한 개인, 개별 가맹 형태의 조직이 노동조합을 표방하고 만들어진 것이 기존 노동계에서는 ‘현장’이 없는 이상한 조직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한국에서의 특별한 상황이었다고 보인다. 한국처럼 특정 사업장이 노동조합의 기반이 되는 것과 다르게 유럽의 경우 산업별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의 기본 형태이고 기업별 노동조합이라는 형태는 특별한 형태에 불과하다. 독일의 경우 기업별 노동조합 자체가 노동조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도 이미 1980년대부터 개인 가맹, 개별 가입을 기본으로 하는 소위 ‘커뮤니티 유니온’들이 활발하게 조직되고 활동해온 전통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규모 산업단지 또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조직되었고 이러한 조직 형태나 활동 방식이 노동조합의 기본 형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청년유니온과 같이 완전히 개별 가맹 형태를 보이는 노동조합은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 형태로서는 매우 이색적인 것이었다. 

 

개별 가맹·가입을 기본으로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특성 외에도 ‘청년’이라는 공통분모를 노동조합의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청년유니온은 한국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일본과 한국의 유사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년유니온의 초기 롤모델이 된 것은 일본의 ‘수도권 청년유니온’이다. 한국 청년유니온과 유사하게 개별 가맹 형태의 조직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일본의 수도권 청년유니온은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 모두 1997년 외환위기(일본은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된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증가라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배경으로 작동했다. 문제는 일본과 한국의 경우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이 고령화되고 정규직, 대기업 중심으로 고착화 되다보니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 증가의 폐해가 특정 세대(또는 젠더, 계층)에 집중되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새롭게 출현한 노동조합의 형태가 개별 가맹 노동조합인 것과 더불어 특정 세대를 공통분모로 조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9년 파견법 개정 이후 일본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약 350만 명에 달하는 파견노동자의 65%가 35세 미만 청년층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비정규직의 50% 이상이 20~30대 청년층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고학력 대졸자가 양산되면서 비정규직화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회 배경이 청년유니온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노동조합이 등장하게 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동한 것이다. 

 

연이어 등장한 새로운 노동조합들

 

청년유니온이 해당 세대의 문제를 이슈화 해내는 데 성공하자 비슷한 여타의 시도가 연이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역시 주목해볼 만한 사건인데 청년유니온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유니온’들의 면면은 흥미롭다. 

 

먼저 ‘노년유니온’을 들 수 있다. 노년 세대의 다수가 이미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고 다수의 빈곤층 노년세대들이 공공근로 등의 노동에 강력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년 세대의 노동 문제는 점점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자 노동조합과 같은 큰 조직들이 있는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년 세대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 접근을 하지 못했다. 다수의 노년 세대들이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과 같은 조직들에 이미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년유니온은 그 단체들을 일부 기반으로 해서 등장했다. 형식은 청년유니온처럼 개별 가맹 노동조합의 형태를 지녔지만 현재로는 노년 세대가 공공근로, 정부 일자리 제공 사업에 묶여 있는 그룹들을 기반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이 역시 ‘유니온?’이라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조직 형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텐데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노동 문제를 포괄하기에 다소 경직적인 조직 형태와 사업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이어 만들어진 ‘뮤지션유니온’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이들도 ‘유니온’이라는 형태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자영업자냐, 노동자냐, 예술가냐라는 구분보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노동이며 그것에는 그만한 대가와 보호가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이렇게 다양한 유니온들이 만들어지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한국 사회에 기존에 주목하지 못했던 소외된 노동 문제가 많다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고용 형태가 너무나도 다양하게 변화했으며 노동을 둘러싼 갈등도 이전의 노사 간의 갈등을 넘어 다양한 영역과 주체들을 포함하며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다양한 ‘유니온’들이 등장하면서 원래 ‘노동조합’을 의미하던 영어였던 ‘유니온’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조합들의 한계와 가능성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진 소위 ‘유니온’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들의 미래가 마냥 밝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일단 개별 가맹을 기본으로 하는 조직들이기 때문에 단일한 사업장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한 노동조합에 비해 조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재정, 교섭력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조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더 튼튼한 구조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 법제도 등이 이러한 새로운 노동조합들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너무 고전적이지만 ‘연대’의 방식 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의 규모가 일정 정도까지 성장하고 재정과 교섭력이 갖추어지기 전까지 이런 노동조합들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서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초창기 활동에 있어서도 조직력의 소모가 큰 장기 투쟁을 지양하고, 유연하고 신속한 대응을 통해서 조직의 역량을 보호하고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법제도를 활용하여 스스로의 보호를 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사업장 단위에서 갈등을 날카롭게 만들어 파업과 같은 쟁의 행위를 통해 조직의 단결력과 교섭력을 확보하던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의 전통과는 조금 다르며, 오히려 이슈파이팅에 능한 시민단체들의 활동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는데, 조직의 초창기에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사이에서 활동 방향의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다양한 한계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양한 형태의 노동조합의 출현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얼마전 필자에게 장애인 노동 문제를 다루고 싶다며 ‘장애인 유니온’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물어오던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새롭게 출현한 노동조합들이 그 미래 전망과 현재의 활동력과 무관하게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기존에 우리 사회가 ‘노동’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들, 인식하지 않았던 것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동’이 특정 산업이나 특정 이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이렇게 시도되는 다양한 노동조합들은 우리 사회를 조금 더 평등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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