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1535

[여는글] 제3의 눈

제3의 눈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 옛 은사께서 주례를 서주셨다. 주례사를 잘 기억하는 사람이 흔치 않을 텐데 나 역시 그때 선생님 말씀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는 한 마디가 있는데, 그건 부부 생활을 함에 있어서 늘 제3의 눈을 가지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아마도 제자의 성격이 까다롭고 여유롭지 못함을 걱정하셨기 때문이리라. 제3의 눈은 육안肉眼이 아닌 심안心眼 즉 마음의 눈, 지혜의 눈이다. 부부끼리 시시콜콜 따지거나 다투지 말고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지혜롭고 원만하게 살라는 염려였다. 그런데 그 말씀을 그때의 나는 좀 부담스러워 했다.  

 

내 생각은 이랬던 것 같다. 지혜라는 말이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어리석음의 반대말이 지혜로움이고, 불가에서도 깨달음의 반야 세계가 곧 지혜의 세계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혜라는 것은 냉정하게 보면 만사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생활 태도, 이도 저도 아닌 절충, 오래된 관행과 전통을 답습하고 존중하는 보수적 삶의 방식일 뿐이고, 그러니 삶의 지혜라는 말도 보수적이고 정체된 삶을 정당화하는 미사여구에 다름 아니다. 젊었을 때 내 생각은 아는 것은 아는 것,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었다. 시是는 시是고, 비非는 비非인 법. 그러므로 아는 것, 옳은 것, 이성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지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는 회색의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지식이 사람을 자유롭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지식을 얻고자 나름 애썼다.

 

그랬는데 나이가 들고 공부를 할수록 지식의 확실성에 대한 확신이 점점 더 옅어져갔다. 우리가 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아는 것인지, 우리는 어쩌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아닌지? 경제학의 예를 들면 모든 경제 예측은 예외 없이 틀리기 마련이다. 다음 해 경제성장률을 제대로 예측한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올해 노벨경제학 수상자 세 명 중 두 명은 금융이론가였는데 이 둘의 견해는 크게 달랐다. 한 사람은 금융시장이 안정적이라 믿었고 다른 한 사람은 금융시장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보았다. 최고의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노벨상 수상자 차원에서도 ‘금융시장은 안정적인가’라는 대단히 기초적인 물음에 일치된 견해를 얻어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학 지식은 얇고 불확실한 것이다. 가장 과학적(?)이라는 경제학이 이렇다면 다른 사회과학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 나의 개인사를 되돌아보아도 살면서 내가 내린 무수한 개인적 판단과 선택들은 잘못투성이였고 일이 내 생각대로 진행된 적은 드물었다. 오늘의 내가 만들어진 것도 내 스스로의 기획의 힘이 아니라 우연의 작용이 훨씬 더 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의 경험이 말해주는 바는 최소한, 안다는 게 허망한 것은 아니겠지만 안다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겸손함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선생님의 제3의 눈, 지혜의 눈이 다시 생각난다. 지식이 옳고 그름을 판별케 하는 바위처럼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또 세상사 전부를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다 알 수 없고 대부분이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움직여 나간다고 하면, 무엇에 기대야 할까. 아마도 유력한 의지처는 지혜일 텐데 그 지혜란 무엇일까. 낡은 것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 새로운 것에 대한 기피가 지혜일 수는 없다. 우선 떠오르는 지혜의 덕목은 타인의 생각에 대한 관용이다. 이는 내가 아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고 늘 틀릴 가능성에 놓여있다면, 그리고 다른 이의 생각도 그러하다면, 첫 번째 지혜는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일 것이다. 그리고 이 관용은 공존과 민주주의의 가치로 연결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신중함의 지혜가 중요할 것 같다. 철사처럼 강인한 성실성과 신중함으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철저히 따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면 신중하고 성실한 탐구 작업에 의해 많은 일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일과 중요한 선택들이 지적 탐구가 전혀 소용이 닿지 않는 무지의 어둠에 갇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장막을 뚫고 판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행동을 결행해야 한다면 그때는 도덕성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 지식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에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도덕성의 배에 몸을 의탁하고서 무지와 무명의 바다를 항해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짧은 생각에, 아마도 이런 게 지혜로운 삶의 최소기준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삶들이 모여 만든 사회가 일종의 좋은 사회, 지혜로운 사회이리라.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 내놓기 부끄러운 것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 다니며 살고 있음. 도봉산과 북한산 사이에 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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