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1월 2014-01-09   1203

[여는글] 서로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여는글

 

서로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지난해 말 고려대 학생 주현우 씨가 쓴 ‘안녕하십니까’ 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해가 바뀐 지금도 유사한 제목의 대자보 류의 글들이 인터넷 상에 올라오고 있다. 주 씨의 글은 사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즉 그의 대자보는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적 현안과 인권 침해 등의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그런데 누구나 대개 알고 있는 이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 이런 심각한 상황하에서도 과연 당신은 안녕하신가 하고 물으니, 그것이 큰 울림을 낳은 것 같다.   

 

안녕하기엔 너무 어려운, 모순된 시절

 

그 대자보를 접하면서 문득 40여 년 전의 대학 생활이 생각났다. 그때는 박정희 군사 정권 하, 이른바 유신의 한복판이었다. 1974년 1월에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었고,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바야흐로 대학가는 물론 전국적으로 유신 반대 운동이 퍼져 나가던 시절이었다. 강의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여건이어서 대학신문의 학생 기자였던 나는 시위가 없을 때는 신문사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 시절 신문에 어떤 기사나 글을 싣느냐와 관련하여 편집 교수진과 학생 기자들 사이에 갈등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편집 교수진은 육 여사를 추모하는 조사를 신문에 실었으면 했다. 학생 기자들은 육 여사 사망이 국민들에게 큰 슬픔을 주는 비극적인 사건임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유신으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이 구속되고 제적이나 퇴학 또는 강제 징집을 당하는 마당에, 학생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학신문이 육 여사 조사를 반드시 실어야 하느냐에 대하여는 견해를 달리 했다. 그러자 편집 교수진은 만일 조사를 싣지 않으면 신문사가 폐간될 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학생 기자들은 반론으로 일제 때 동아일보의 예를 들었다.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삭제하여 발간이 중단되었지만, 오히려 그 일은 민족의 기개를 높여 주고 동아일보의 명예를 드높이지 않았던가. 결국 육 여사 조사는 싣지 않게 되었으며, 다행히 대학신문도 폐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군에 징집되어 훈련을 마치고 귀대한 어느 날 받아 본 대학신문에는 육 여사에 대한 뒤늦은 조사가 실려 있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는 유신을 반대하고, 군에서는 “때려잡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을 외쳐야 했던 그 모순된 시절은 각자의 처지에 관계없이 서로의 ‘안녕’을 정말 걱정하던 때였던 것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게 보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등 작금의 여러 불법 사태는 양상은 다르지만 마치 과거가 반복되는 듯한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NLL을 둘러 싼 대통령 대화록 폭로, 매카시즘적 종북 몰이, 전교조 노조 설립 취소 통고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등은 이것들이 과연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되묻게 된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한 저명한 작가의 소설 속에 “박정희 유신”, “87년 6월 항쟁” 같은 단어가 있다는 이유로 한 때 그 연재를 거부하였던 어떤 월간 문학잡지 사태도 그렇다. 요즈음 대학에서는 시인인 교수에게 1년에 발표해야 할 시 작품의 편수까지 정해 준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예술 또한 정녕 안녕하신가 묻고 싶다. 

 

지난 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의하여 긴급조치는 마침내 그 법적 효력의 종언을 고하였다. 종신 집권을 보장한 그때의 헌법과 달리 지금은 5년 단임의 대통령을 선출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깨인 시민들이 있다. 이들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구와 행정부서에 소수자로 있으면서 스스로 불러 일으켜질 계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해 11월 9일 참여연대는 처음으로 길거리 행진을 한 바 있다. 그때 행진을 같이 했던 김선주 선생은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지금의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는 “목숨을 내건 사람, 감옥에 간 사람, 집단학살을 당한 사람, 독립운동으로 풍비박산이 된 사람, 그런 희생으로 얻은 민주주의”라고 썼다. 그리고 “그런데 나는 거기에 숟가락만 하나 얹고 살았다. 나는 빼고 누군가 하겠지 하며 뒤에서 구경만 해왔다.”고 겸손한 자성을 한 후, “앞으로 민주주의 되찾기 행진이라면 어디든지 한쪽 구석에서 걸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빼고 누군가 하겠지 하는 생각을 이제 그만해야겠다” 라고 다짐하며 글을 마쳤다. 

 

새해 우리는 서로에게 안녕하신가 하고 단순히 묻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으면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구경꾼 역할에서 벗어나 보자. 현장에 나가 작은 목소리라도 같이 노래 부르고 외쳐 보자. 그럴 때 우리 자신의 ‘안녕’이 더욱 견고히 지켜지며 희망 또한 커질 것으로 믿는다.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참여연대 식구들에게 늘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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