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4월 2014-04-07   1749

[역사] 일본의 배후, 미국

일본의 배후, 미국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1952년 4월, 한국 독립하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의 내용이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1951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이 전승국인 연합국 48개국과 맺은 조약이다. 1952년 4월에 발효되었다. 이 조항만 보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이 떳떳한 독립국가로 공인된 해는 해방된 1945년도, 유엔 승인을 받아 대한민국을 수립한 1948년도 아닌 1952년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때, 일본은 재한일본인의 재산이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했다고 한다! 미 군정기에 개인이나 기업에 일본인 재산을 나눠주던 적산불하가 1952년 4월에야 합법화된 것이다. 그 때까지 패전에 놀라 허겁지겁 고국으로 돌아갔던 일본인들은 오매불망 사유재산 되찾기를 기대했다는 얘기다. 원수인 일본‘놈’들이 버리고 간 재산을 나누는 것을 당연시한 한국인과 일본이란 나라는 패망했으나 개인이 망한 건 아니니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일본인의 정서적 간극은 그만큼 컸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한국 문제에 있어 식민지로서의 과거 청산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에 참가하지 못했다. 먼저, 영국과 일본이 반대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모두 초대하지 않기로 한 영국이 한국도 대일 교전국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이에 덧붙여 일본은 재일한국인에게 승전국민 자격을 주면 일본 내에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로 내세웠다. 대부분 재일한국인이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기까지 했다. 결국 미국이 이에 동의하면서 한국이 배제된 것이다. 미국의 일본 비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반공의 교두보인 일본의 조속한 경제 재건을 돕기 위해 무배상 원칙을 내놓았다가 반발에 거두어들였다. 패전국 일본은 미국의 확실한 편들기에 힘입어 조인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흡족해했다. 그만큼 전쟁 책임 의식 또한 희미해져갔다.

 

전쟁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 천황제와 도쿄재판

 

일본은 패전국이었고 천황은 모든 전쟁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미국 등에서는 천황을 전범재판에 회부하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막아선 이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였다. 만약 천황을 전범으로 다룰 경우, 일본 국민이 격렬히 반발할 것이므로 100만의 군대를 더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오히려 천황을 최대의 협력자로 활용하는 것이 일본 통치에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제적인 천황제를 해체하는 대신 천황이 실권을 갖지 않는 ‘상징 천황제’를 마련했다. 새로 만든 일본국 헌법 제1조에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라 명기했다. 문제는 천황제의 온존이 곧 군국주의 부활 아니냐는 일본 국내외의 반발이었다. 이를 달래기 위해 제9조에 전쟁 포기 조항이 들어갔다.  

 

전범 재판인 도쿄 재판은 1946년 4월 도조 히데키 등 28명의 기소장이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 도쿄 재판은 그야말로 용두사미로 끝났다. 맥아더가 재판장과 수석 검찰관의 임명권을 가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도쿄 재판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군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심리 대상으로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독일 전범을 다룬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을 비인도적 행위로 처벌했다. 반면 도쿄 재판에서는 단 한 사람도 비인도적인 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수백만이 강제 연행되어 강제 노동에 시달린 것이 분명한데도 천황은 물론 누구에게도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이다. 도쿄 재판은 2년 반 만에 A급 전범 19명을 석방하면서 종결되었다. 일본의 경제 부흥을 위해 사회 안정이 시급한데, 전범 재판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공산주의 세력에 이용되어선 곤란하다는 것이 미국이 조속히 마무리한 이유였다.  

 

참여사회 2014-04월호

 

불철저한 과거 청산의 배후, 미국

 

천황제가 살아남았다. 도쿄 재판은 A급 전범을 살리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강제 노동에 눈감았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패전국인 일본을 만족시켰다. 일본의 불철저한 과거 청산 의식은 이들로부터 배태되었다. 미국은 이를 막후 조종했다. 냉전 시대가 개막되면서 오직 반공이라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동아시아의 과거를 재단해버린 것이다. 2014년 4월, 지금도 일본이 과거사 청산이라는 치유의 길을 가지 못하고, 과거사를 부정하는 분열증적 증상을 보이는 데에 미국은 전혀 책임이 없다 할 수 있을까. 1952년 4월의 시점에서 보면, 거의 공범 수준이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