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4월 2014-04-07   1064

[여는글 ] ‘통일 대박’ 논의와 몇 가지 짧은 생각들

‘통일 대박’ 논의와
 몇 가지 짧은 생각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한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실은 좀 뜨악했었다. 흔히 로또 당첨의 경우처럼 뜻밖의 큰 이득을 보았을 때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과연 통일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그와 같은 요행적 성격과 부합하는 것인지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건 등을 비롯한 가볍지 않은 정국 상황이 얼핏 경박스럽게 비칠 수도 있는 뉘앙스의 ‘대박’과 잘 매치되지 않았다. 아무튼 ‘통일 대박’ 회견으로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한 것 같다.

 

일부 언론은 그 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경쟁적으로 통일에 관한 장밋빛 기사를 싣고 있다. 다만 그 대부분은 통일 이후의 경제적 ‘부흥’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지, 정작 통일이 과연 언제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질지에 대하여는 침묵 일변도이다. ‘통일대박론’을 뒷받침할 구체적 구상이 제시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연설도 독일식 흡수통일과는 구분되는 한반도식 평화통일의 원칙과 경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대화의 상대인 북한을 고려하지 않은 몇가지 아이디어를 일방적으로 나열했을 따름이다.

 

‘통일 대박’론과 상충되는 통일 대박 프로세스

 

사실 통일 문제는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는 헌법 전문에서 보듯이 민족 지상 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통일을 둘러 싼 논의는 정치권 보다는 주로 민간 쪽에서 활발히 추진되어 왔고, 정부나 보수층은 통일 보다는 국가 안보 혹은 반북 논의에 주력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통일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선언은 결과적으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때 통일부를 폐지하려고까지 했던 전임자와 비교해 보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인 느낌마저 든다. 아무쪼록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통일 정책이 세워지고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분단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 왔고, 그와 연관된 인권 침해 또한 적지 않았는데, 이런 고통으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모처럼 정부 주도로 제기된 ‘통일 대박’론은 충분한 숙고를 거쳐 마련된 것이어야 할 터이다. 다만 이제까지의 상황은 꼭 그렇지 만은 않은 듯해 유감이다. 대표적인 예로,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 강조는 지난 해 있었던 국정원의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모순된다. 북한을 염두에 두지 않은 통일 논의가 탁상공론일 수밖에 없듯이, ‘통일 대박’ 프로세스의 정점으로 향후 대두될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해의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에 대한 합리적 해명이나 재발 방지책 없이 과연 선뜻 실효성 있는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인가.

 

박 대통령이 진작부터 통일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비록 정치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라는 극단적인 수단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점은 박 대통령이 그간 주장해 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근 간첩죄 재판에서 문서 조작 의혹마저 받고 있는)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불가피했다고 강변해 온 남재준 국정원장을 여전히 신임하고 있는 조치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통일대박’의 진정성마저 의심이 들게 하여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한다.

 

통일정책, 초당파적 계획 하에 추진돼야

 

또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통일 논의의 방향은 정부든 민간이든 조령모개 식으로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 상대방이라 할 북한의 경우 사실상 동일한 권력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즉 누가 집권해도 통일 방안은 그 근본이 달라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한마디로 통일 정책은 이른바 초당파적 입장에서 일관되고 합리적인 계획 하에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물론 그 일은 부침이 없을 수 없지만, 앞의 정부가 한 정책을 기초에서부터 허무는 식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우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7·4 남북공동성명과 노태우 정부 때의 남북기본합의서 등은 박 대통령이 향후 통일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 때 한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룩한 성과들 역시 앞으로 북한과 정상 회담을 하는 경우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연설에서 이 역사적 자산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동안 자신이 속해 있는 당의 입장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열강의 냉전 속에서도 마침내 통일을 이룬 독일의 예를 본받아 최선을 다해 좋은 통일 정책을 이행해 나간다면 이는 5년의 임기를 넘어서 역사적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 대박’의 단초를 열기 위한 쉽고도 중요한 고언을 하나 드리고 싶다. 5·24 조치를 비롯해 그동안 남북 교류에 장애가 되었던 조치들을 시급히 해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연설에서 5.24조치의 해제, 식량과 비료 제공 재개, 금강산 관광의 재개 같은 남북간 현안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이들 현안에 대해 북한과 대화할 의사가 없이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제안하는 것은 공허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어느 정부의 어떤 통일 정책이든 그와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변함없이 이로운 한 가지 방안을 들라면, 남북 교류와 협력의 활성화를 들고 싶다. 특히 온갖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왕래 증진이야말로 헌법 전문의 “평화적 통일” 논의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박 대통령이 제기한 ‘통일 대박’ 논의의 실질적인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참여연대 식구들에게 늘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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