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1883

[듣자] 5월 광주, 구자범이 지휘한 말러 ‘부활’ 교향곡

5월 광주,
구자범이 지휘한
말러 <부활> 교향곡

 

이채훈 MBC 해직 PD

 

 

4년 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는 광주에서 아주 감동적인 연주회가 열렸다. 젊은 마에스트로 구자범이 이끄는 광주 시립교향악단이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했다.

 


다큐멘터리 <광주, 부활하다>

 

“나 높이 날아오르리라, 사랑의 날개를 타고! / 일어나, 자 일어나! / 내 사랑아, 너 일어나! / 어둠을 뚫고, 한빛 되어 살아나라!”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우리말로 가사를 썼고, 오디션을 거친 자원자들이 합창석을 채웠다. 어린이와 선생님, 젊은이와 노인, 아마추어와 프로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 하나만으로 참여했다. 연주 당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고, 청중들도 하나가 되었다. 90분의 연주가 끝날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 감동적인 연주회의 전과정을 광주MBC 이주형 PD가 기록하여 다큐멘터리 <광주, 부활하다>를 만들었다.

 

“광주의 영령들 뿐 아니라, 내 안에 잠자는 그 무엇을 깨워주는 음악, 이 시대를 깨우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깨워주는 목소리였어요.” 

 

합창단에 참여한 서울 초등학교 교사의 말이다.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라는 한 도시의 지역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와 함께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현대사다. 5월 광주의 영령들을 되살리는 것은 돈과 경쟁에 찌든 우리의 양심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음악은 한 개인의 가슴만 울릴 수 있는 거죠. 음악 자체가 사회를 바꾼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음악은 그냥 세상을 반영할 뿐입니다. 그게 모이고 모여서 꿈이 될 수는 있겠지요.”

 

지휘자 구자범은 세상을 바꾸는 음악의 힘은 미약하다고 말했다. 음악은 시간 속에 잠시 흐르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음악의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고, 아무리 세상이 강퍅해도 꿈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이 곡은 광주 영령들을 부활시켰고, 연주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을 이어주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말러 음악의 위대성을 알려주었다.

 

말러(1860~1911)는 이 곡을 작곡하느라 1888년부터 6년 동안 산고를 치렀다. 그는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꼈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안,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인, 세계 어디를 가나 유태인이었다.” 그는 부다페스트, 함부르크를 전전했지만 직장은 안정되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교향곡 1번의 주인공을 앞에 눕혀 놓고 질문을 던진다.

 

“너는 왜 살아왔는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러는 앞의 세 악장을 다 쓰고도 마지막 부분을 완성할 수 없었다. 이 무렵, 말러의 음악을 적극 지지해 주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사망했다. 1894년 3월 열린 장례식에서 말러는 클롭슈토크가 시를 쓴 합창 <부활>을 듣게 된다. “이 합창은 내가 죽음을 생각하며 맛본 느낌, 내가 만들고 있던 작품의 정신에 딱 들어맞았다. 나는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 있던 모든 게 분명하게 정리됐다. 모든 창작 예술가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바로 그 순간이 온 것이다.” 말러는 열렬히 삶을 긍정하게  되었고, 이 교향곡을 번개처럼 완성했다.

 

참여사회 2014-05월호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검색하세요.
다큐멘터리 <광주, 부활하다> http://youtu.be/vGjiUtq96e8
마리스 얀손스 지휘 로열 콘서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연주 http://youtu.be/sHsFIv8VA7w

 

“너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 헛되이 살고 고통 받은 게 아니다 / 태어난 것들은 모두 소멸하지만, 소멸한 것들은 모두 부활한다 / 그대, 만물을 정복하는 죽음이여 / 이제 그대가 정복되었다 / 부활, 그렇다 부활! / 내 심장이여, 너는 한 순간에 부활할 것이다.” 

 

말러에게 교향곡은 우주와 같았다. “나의 교향곡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나의 교향곡에는 나의 경험, 나의 고통, 나의 존재, 나의 모든 인생관이 들어있다. 나의 불안, 나의 공포….” 이 작품에서 말러는 죽음의 극한에 도달하여 이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하는 영웅적인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말러는 1895년 12월 이곡의 초연을 직접 지휘했다.

 

4년 전, 구자범의 참신한 해석으로 말러의 <부활> 교향곡이 한국에서 ‘부활’한 셈이다. 이 곡은 너무 길고 규모가 커서 보통 사람들은 크게 용기를 내야 들을 수 있는 곡이다. 하지만, 80년 5월의 한국 현실을 실감나게 반영했기 때문에 아주 쉽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 5악장으로 된 이 곡은 거인의 장례식에서 출발하여,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고, 끔찍한 기억에 전율하고, 태고의 빛을 명상하고, 찬란한 부활을 노래한다. 죽어간 넋들을 추모하고, 그 정신이 되살아나길 기원하는 5월 광주와 꼭 닮아 있다. 지휘자 구자범은 이 점에 착안하여 말러의 <부활> 교향곡을 선곡한 것이다. 웬만한 음악가는 생각하기 어려운, 뛰어난 통찰이었다.  

 

마에스트로 구자범이 경기필하모닉에 사표를 던지고 지휘봉을 놓은 지 1년이 됐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1년이 그에게 깊은 영감과 성찰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의 빈 자리가 허전하고, 그의 지적인 해설이 그립다. 5월 광주에서 <부활> 교향곡으로 감동을 준 구자범이 조속히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채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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