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3월 2015-03-02   1331

[여는글]바른 느낌, 따뜻한 느낌

 

바른 느낌, 따뜻한 느낌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김균 참여연대 공동대표

 

 

올해 참여연대의 활동좌표는 ‘행복한 참여, 따뜻한 연대’다. 참여와 연대란 말이 원래 멋있기도 하지만 ‘참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연대’가 따뜻한 마음의 자연스런 발현이라 싶어 괜히 올해 활동좌표가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따뜻한 연대’라는 말이 더 그러하다. 

 

감성의 좌표가 되었던 황동규의 시

 

황동규 시를 처음 만난 게 스무 살도 되기 전이니 참 오랫동안 그의 시를 끼고 살았다. 나보다 이십년 가까이 연상이다 보니 그의 신작시들은 왕왕 내 삶을 한걸음 앞서서 인도하는 감성적 좌표이자 징후였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는 <즐거운 편지>의 첫째 단락이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로 시작되는 <조그만 사랑노래>라던가, 아니면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로 끝나는 <더 조그만 사랑노래>같은 시들은 젊은 사람의 예민한 감성을 하늘 높이 끌어올리는 아름다운 시가詩歌였다.  <계엄령 속의 눈>이나 <초가楚歌>, 또 전봉준이 등장하는 일련의 시는 암울한 박정희 독재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에게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 손을 슬그머니 잡아주는 따스한 위안의 손길이었고 등두드림이었다.

 

그런 그도 이제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었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요즘 그의 시는 늙어감에 대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늙어감에 대한 시들을 읽으면서 나도 그가 느끼는 감정의 결을 손으로 나뭇결을 더듬듯 따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찬란한 젊음은 지나갔고 이제 나도 늙음의 회색 세월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는 증좌이리라. 어쨌거나 황동규의 요즘 시에는 늙은 사람의 지혜나 삶에 대한 달관 같은 것들이 문득문득 보인다. 최근에 읽은 <묵화墨畵 이불>의 한 구절도 그랬다. 그는 평생 늘 바른 느낌이 따뜻한 느낌보다 윗길이라 여겨왔는데 이제는 그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성과 감정의 어우러짐에 대하여

 

바른 느낌은 내 생활과 주변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 정돈되어있고 나의 내면세계 역시 올바르게 잘 짜여 있을 때 드는 삶의 느낌이다. 내 주변을 지저분하게 늘어놓지 않고 사물들을 각기 제 자리에 질서정연하게 배치하고 인간관계도 구질구질하게 방기하지 않고 간명하게 유지할 때 바른 느낌이 들 것이다. 또 도덕적 올바름, 흐트러지지 않고 정갈한 태도, 다소 고지식하다고 해도 좋을 엄격한 삶의 자세 등을 견지할 때 바른 느낌이 가능할 것이다. 

따뜻한 느낌은 내 주변 환경이 평안하고 안락하며, 내 마음이 사랑이나 우정, 다른 사람과의 공감 등으로 충만할 때 생기는 느낌이다. 이 두 느낌 또는 마음은 당연히 동일한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바른 마음과 삶은 도덕적 올바름, 합리성, 정의, 규칙성 등과 같은 이성적 덕목을 따를 때 얻어질 것이고, 따뜻한 마음과 삶은 사랑, 지혜, 공감 등의 감정적 덕목을 따를 때 생길 것이다. 그래서 바른 느낌을 주는 삶이 따뜻한 마음을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바르지 않은 잘못된 삶도 따뜻한 삶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인 황동규의 생각 변화는 지금껏 이성을 윗길에 놓고 세계를 해석해 왔다가 이제는 감정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도 황동규의 이런 생각들에 동감하면서 역설적 위안을 느낀다. 사실 이성적 덕목만으로 해석하고 만든 세계는 기계처럼 메마르고 냉랭한 세상일 뿐이고 감정적 덕목들이 함께할 때 이성이 만든 세계는 한층 더 지혜롭게 빛날 것이고 온전한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사회를 좋게 바꿔보겠다는 시민운동에 있어서도 사회를 바꿀 이성적 설계와 실천만으로는 멀리 갈 수 없다. 사랑과 공감이라는 덕목이 함께 할 때 그 운동은 멀리 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우리의 활동좌표인 ‘행복한 참여, 따뜻한 연대’의 ‘따뜻한’은 20년 참여연대의 성숙함과 지혜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다니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인생사에서 우연의 작용을 인정함. 산밑에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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