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4월 2015-04-02   1856

[역사] 도덕성 없는 지도자가 활보하는 사회

도덕성 없는 지도자가
활보하는 사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토머스 칼라일은 19세기 영국 사상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 중 하나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였던 크레인 브린턴(1898~1968)은,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인물로 존 스튜어트 밀(1806~1873)과 더불어 칼라일을 꼽았다. 진화론을 주장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이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귀 기울일 가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칼라일은 당대에 영향력이 컸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어서 그는 철저히 왜곡되고 무관심 속에 외면당했다. 특히 그의 대표 저작 『영웅 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은 흔히 영웅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다는 ‘영웅사관’의 대표 격으로 지목되어 비난받곤 했다.

사실 ‘영웅’이라는 말 자체가 전사戰士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기 때문에, 영웅 숭배는 자칫 ‘군인 영웅에 대한 맹목적 복종’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칼라일이 『영웅 숭배론』에서 영웅으로 꼽은 11명 중 군인은 나폴레옹과 크롬웰뿐이다. 영웅으로 꼽힌 그 밖의 인물들, 즉 루터, 단테, 셰익스피어, 루소 등은 군인과는 거리가 멀다. 칼라일의 ‘영웅’을 군사적 영웅으로 단순화해서 해석한다면 필경 칼라일의 의도를 왜곡하기 십상이다.

 

영웅은 진실한 인간을 의미
칼라일의 영웅은 도덕성을 지닌 진실한 인간을 의미했고, 그는 ‘숭배’를 ‘존경’과 같은 의미로 섞어 썼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칼라일이 말한 ‘숭배’는 상급자에 대한 수동적·맹목적 복종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 존경이었다. 철학자 니체가 『권력의지』에서 초인과 범인凡人의 특징을 ‘의지’와 ‘무無의지’로 보고 둘을 ‘상반’된 속성을 지닌 인물로 파악한 데 반해, 칼라일은 영웅과 추종자의 차이가 단지 도덕성과 통찰력의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영웅은 일방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오직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로 자발적 결단을 내릴 때만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다. 지도자의 도덕적 카리스마만이 지지 세력을 확보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칼라일은 2000년 전 초대 그리스도교를 이상적 영웅 숭배 형태로 간주하고 예수를 ‘모든 위인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봤다. 영웅과 추종자의 관계는 정치적 지배·예속 관계가 아니었다. 고결한 영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지닌 ‘수많은 작은 영웅’이 있어야만 했다. 영웅의 도덕성을 알아볼 품성과 안목을 지닌 자만이 그를 존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백성에 그 왕’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칼라일이 꿈꾼 세상은 ‘영웅들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러나 당대의 비할 데 없는 커다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들어 그의 사상은 철저히 왜곡 당했다. 『영웅 숭배론』의 제목을 직역하면 『역사에서의 영웅, 영웅 숭배 및 영웅정신』이 된다. 언어 감각이 있는 독자라면 대뜸 짐작했겠지만, 이 제목에는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말에서도 그렇지만, 영어에서도 ‘영웅’이라는 말에는 정치적·군사적 함의가 있다. 게다가 여기에 ‘숭배’라는 말까지 덧붙여지면 그것은 대뜸 20세기 전반기를 휩쓸었던 나치즘과 파시즘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칼라일이 말한 ‘영웅 숭배’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 약 20년 동안 서유럽에서 ‘총통(히틀러) 숭배’와 동일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형성된 칼라일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이렇다 할 ‘결정적인’ 수정 없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실로 왜곡의 답습이 아닐 수 없다.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
황금만능주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오늘의 세태에서 “거짓말 위에는 벽돌집 한 채도 지을 수 없다”고 철저한 도덕성을 강조한 칼라일이 외면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칼라일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지도층의 거짓말과 도덕적 불감증은 우리 국민의 내면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그 백성에 그 지도자’라는 말이다. 개개인의 도덕적 자각을 통해 수많은 작은 영웅들이 탄생하지 않는 한, 반듯한 지도자의 등장도 국가의 품격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취임 이후 최우선 과제로 부정부패와 고질적 적폐를 척결하기 위해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엄단할 것”이라고 한다. 총리 인준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병역 특혜, 부적절한 언론관 등으로 갖가지 사회적 논란을 빚었던 이 총리가 ‘부패 척결’을 외친 것이다. 그것도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서. 일각에서 강도가 도둑을 잡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일리 있는 비판이다. 더러운 걸레로 닦는다고 깨끗해질 리 없으니 말이다. ‘부패해도 좋으니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유권자들의 안이한 도덕성이 낳은 우리 시대의 괴물이다.

 

박상익
<나의 서양사편력 1·2>, <번역은 반역인가>, <밀턴 평전> 등의 저서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서양사를 우리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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