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338

[통인뉴스] 도망치는 대통령, 행동하는 시민들

도망치는 대통령,
행동하는 시민들

 

“노란 리본을 달자. 세월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유동림 행정감시팀 간사

 

돌아온 4월 16일, 추모는 없었다. 대통령은 침묵했고 가족들은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 분향소를 닫았다. 팽목항에서 나홀로 담화를 발표한 대통령은 도망치듯 외유를 떠났다. 가족들이 그토록 요구하던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세월호 인양 선언’은 담화문에서 찾을 수 없었다. 1년 전, 침묵한 채 배 밖으로 탈출했던 선장의 모습이 그날 팽목항에 있었다. 
4월 첫 날, 정부의 대답이 있었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사고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지급기준을 발표한 것이다. 억대에 이르는 금액이 뉴스를 휩쓸었다. 가족들이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 대해 반발하고 강력히 규탄하던 시점이었다. 배·보상을 원한 적도 요구한 적도 없었던 가족들은 몸서리치며 분노했다. 생명을 돈으로 능욕하는 잔인하고 무례한 정부에 치를 떨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의 행동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4월 10일, 유가족 48명의 삭발은 진심을 보여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진실을 밝히고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수습하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1년째 변함없는 그 외침을 잊지말아달라는 몸부림이었다. “아빠들은 엄마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머리 깎는다. 너희들은 웃어 아빠가 엄마가 끝까지 밝혀낼게. 끝까지 이 자리 지킬게.” 미안한 엄마·아빠가 될지언정 부끄러운 엄마·아빠는 되지 않겠다고, 머리 깎은 엄마·아빠가 힘주어 말했다.
가족들의 호소에 응답한 건 시민들이었다.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 4월부터 진행한 ‘416시간 시민긴급행동’에 4.16의 약속을 잊지 않은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안산에서 출발해 광화문까지 이어진 이틀간의 시민·가족 도보 행진도 그 중 하나였다. 행진 첫날인 4월 4일 가족들은 안산 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영정을 빼들어 걸음을 뗐다. 상복을 입고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영정을 받쳐 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에 가족들은 통곡했고, 옆에 선 시민들도 숨죽여 흐느꼈다. 가족들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달라는 호소에 주위를 에워싼 기자들도 숙연해졌다. 가족들이 앞장서자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행진이 시작되자 동참하는 시민들은 점점 불어났다. 유모차를 끌고나온 엄마,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선생님, 연인과 친구들이 행렬을 끝없이 이었다. 4.16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 노란 배, 노란 손수건 등이 곳곳에 있었다. 행진 길목에서 기다렸던 시민들은 응원 피켓을 들고 행렬을 맞았다. 누군가는 간식이나 우비를 챙겨와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서글픈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했다. 행진은 그 자체로 세월호라는 이름의 가족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광명 장애인복지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가족들과 시민들은 4월 5일 여의도를 거쳐 오후 5시께 최종 목적지인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이틀간 행진에 참여한 가족과 시민은 3천 여 명에 달했다. ‘더이상 4.16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하나의 다짐이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노란 물결을 만들었다.

 

노란 물결은 끝나지 않았다

시민들의 동참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시행령을 폐기하라며 항의서한을 제출할 때도 2만 7,822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4월 6일 가족들이 직접 서한을 들고 세종시의 해양수산부를 방문했으나, 이유 없는 경찰의 통제에 가로막혀 건물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시한에 쫓겨 서한과 시민명단은 팩스로 제출했다.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기 위해 제작한 4월3일 신문전면광고에는 1,069명의 시민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되새기고자 제작한 4월 16일 신문 전면광고에는 1,685명의 시민이 힘을 실어주었다. 4월17일 광장에서는 4,160명의 시민이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기도 했다. 도전은 성공하여 ‘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예정이지만, 우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 1년, 대한민국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시민들은 더 크고 단단하게 하나가 되고 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세월호 참사에 대응하기 위해 800여개 단체가 구성한 범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도 4.16을 기억하고 행동하려는 전국의 시민들과 함께 ‘416연대(가족이 시민, 단체와 함께 꾸린 4.16참사에 대응한 ‘통합적 상설단체’)’를 새로 꾸렸다.
4.16 이후의 삶은 우리의 몫이다. 혼자서는 슬프고 아프지만 함께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노란리본을 다시 꺼내 달자. 세월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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